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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제4차 중동전쟁 이래 관련국들은 최고조의 긴장에 휩싸였다. 28일(현지시간) 이스라엘군이 레바논 무장단체 헤즈볼라의 수장 하산 나스랄라(64)를 “제거했다”며 전날 헤즈볼라 지휘부 회의 장소인 레바논 베이루트 남부 다히예 공습 결과를 발표했다. ‘나스랄라 제거’는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수장 이스마일 하니예가 이란 수도 테헤란 방문 중 피살된 지 약 두 달 만이다.
7월 말 ‘하니예 암살’이 몇 년간 추진된 것이었고 최근 헤즈볼라 대원 개개인 수천 명을 겨냥한 ‘삐삐·무전기 테러’는 15년 전부터 준비된 것이었음이 알려지면서, 이스라엘 측의 정당성이나 명분을 따지는 것과 별개로 그 정보력과 작전력에 전 세계가 경악했다. 헤즈볼라는 “순교자의 길”을 따른 “보복”을 천명했으나 삐삐테러로 대원이 다수 죽거나 다친 데다 지도자마저 잃은 마당에 유의미한 반격을 즉각 실행하긴 어려워 보인다.
살해된 나스랄라는 1992년부터 32년간 레바논의 친이란 시아파 무장단체 헤즈볼라를 이끌어 온 인물이다. 이스라엘군은 성명에서 “다수의 이스라엘 민간인과 군인을 살해하고 수천 건의 테러를 계획·실행한 책임이 있다”며 ‘새 질서’로 명명된 이번 작전을 통해 그를 몇 년간 실시간 추적했다고 말했다.
레바논 의회를 구성하는 일개 정파인 헤즈볼라는 이란의 지원 아래 정규군보다 우월한 화력을 지닌 반이스라엘·반미 집단이다. 민병대 시절이던 1982년(1985년 정식 결성) 이래 “이스라엘과 미국에 죽음을”이란 구호를 내걸고 몸집을 키웠다. 한편 헤즈볼라보다 사정이 훨씬 열악하면서 한층 필사적인 존재들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무장정파 하마스다. 서안지구 쪽 서방친화적인 팔레스타인과도 사이가 안 좋다.
1947년 이스라엘 건국 당시 현지에서 아랍어를 쓰며 살던 기존 주민들이 현재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이다. 스스로를 시리아의 일부로 여겼을 뿐 별개의 정체성이 없었기에 일찌감치 국가를 형성하진 못했다. 이후 꾸준히 유입한 유대인과 갈등하게 된 이들은 이른바 6일 전쟁(3차 중동전쟁) 이후 점차 이스라엘의 압도적 지배 하에 놓이게 됐다.
지난 몇십년 동안 이스라엘을 상대로 크고 작은 테러를 벌이다 지난해 10월7일 결정적 기습을 감행한 게 하마스이며 헤즈볼라가 지원 사격 차 이스라엘 북부를 공격하고 나섰다. 이에 당초 ‘인질 구출’이던 이스라엘 측 전쟁 목표에 헤즈볼라 근거지인 레바논 남부(이스라엘 북부) 접경지대 주민의 안전 귀환이 추가된다. 이스라엘군은 나스랄라 사망에 따른 헤즈볼라의 변화를 기대한다면서도 23일부터 군사작전 ‘북쪽의 화살’을 강행 중이다.
헤르지 할레비 이스라엘군 참모총장이 (하산 나스랄라 제거를 위한) 공격은 “매우 오래 준비해 정확한 시간에 정밀하게 실행됐다”며 “메시지는 단순하다. 이스라엘 시민을 위협한 자, 누구든 찾아내겠다는 것”이라고 못박았다. 헤즈볼라도 성명을 냈다 “나스랄라 사무총장이 순교자 동지들과 함께하게 됐다. 팔레스타인을 돕고 레바논 땅과 사람들을 지키고자 적과의 성스러운 전쟁을 계속하겠다”지만 충분한 실행력을 가질지는 미지수다.
이란의 아야톨라(최고지도자)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가 “나스랄라의 피는 복수 없이 끝나지 않을 것”이라며 5일간의 애도 기간을 선포했다. 또 “이 지역의 운명은 헤즈볼라 저항군에 의해 결정될 것” “역내 모든 저항 세력이 헤즈볼라를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마스는 “지도자가 순교하면 더 용감하고 강력한 결의의 새 세대의 지도자가 그를 계승할 것”, 후티 또한 “모든 지원 전선에서 지하드(성전) 정신이 더욱 강해질 것”이라는 입장이다.
이렇게 이들 이른바 ‘저항의 축’(헤즈볼라·하마스·후티)과 그 맹주인 이란의 강력 규탄에도 이스라엘 공격 의지가 꺾일 조짐은 안 보인다. 반세기 넘게 이어진 저강도 전쟁이 이참에 끝나길 원하는 이스라엘사람들의 열망이 반영된 것일 수 있다. 강경파 벤야민 네타냐후에 대한 강한 반감의 한편으로 일정한 지지가 공존하는 배경이다.
28일(현지시간) 이스라엘 매체 와이넷이 전날 이스라엘군 F-15I 편대가 나스랄라 등이 머무르던 다히예의 주거용 건물을 벙커버스터 폭탄 등으로 공격했다고 보도했다. 오전 베이루트 남부와 레바논 동부 베카밸리 등지 공습에 이어 오후 베이루트 다히예 타격 때 헤즈볼라 정보 당국의 고위급 인사 하산 칼릴 야신, 남부전선 사령관 알리 카르키 등이 죽었다.
미 뉴욕타임스(NYT)는 폭탄 80개 이상이 사용돼 나스랄라를 비롯해 지휘부 일부가 사망한 사실을 전했으며, 이란 국영 IRNA통신에선 자국의 압바스 닐포루샨 이란혁명수비대(IRGC) 작전부사령관이 함께 희생된 것에 충격을 표했다. 헤즈볼라 미사일 발사대와 무기고 및 무기생산시설 등 140곳 이상 추가 타격을 당한 가운데 요아브 갈란트 국방장관은 레바논 주민 상대가 아님을 거듭 강조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나다브 쇼샤니 이스라엘군 대변인은 로켓 수만 발을 보유한 헤즈볼라의 반격을 예상하며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말했다. 과연 헤즈볼라는 28일 나스랄라 사망 사실 발표 후 이스라엘 중심도시 텔아비브와 요르단강 서안을 향해 미사일 약 90발을 발사했다. 이날 오후엔 후티 반군이 쏜 것으로 추정되는 탄도미사일이 예멘으로부터 날아와 이스라엘 중부에 공습 경보가 발령되기도 했다.
AFP통신은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이 “극적인 갈등 고조에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으며 이탈리아·프랑스·독일은 당사자들 간 대화로 사태를 해결할 것을 촉구했다고 전했다. 미국의 조 바이든 대통령 역시 “외교적 수단을 통해 가자지구와 레바논에서 진행 중인 갈등을 완화해야 한다”는 성명을 냈다. 다만 나스랄라 죽음에 대해선 “희생된 수천 명에 대한 정의의 실현” “정의로운 조치”라며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과 함께 이스라엘 정당방위 지지를 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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