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살바도르의 자칭 “가장 멋진 독재자”, 1981년생 나이브 부켈레 대통령은 미국 차기 정부와 여러 모로 동조적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이 언론과 사법 리스크에 시달릴 때 응원 메시지를 냈으며 비트코인을 국가 법정통화로 삼은 지구촌 최초의 인물이기도 하다. 암호화폐 친화적인 엘살바도르에 세계 최대 스테이블코인(테더·USDT) 발행사인 테더(Tether)홀딩스가 둥지를 튼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또 한 번 화제의 중심에 섰다.
좌파 포퓰리즘과 군부독재 사이를 오락가락해 온 중남미의 악순환을 부켈레 영도 아래 엘살바도르 사람들이 벗어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스테이블코인이란 미 달러나 유로 등에 교환가치가 고정되도록 설계된 가상화폐를 말한다. 주로 미 달러·채권 등 현금 등가 자산으로 구성된 준비금을 사용하는 테더가 스테이블코인 선두 업체로 꼽힌다. ‘전략적 비트코인 준비금’(SBR)이라는 이름으로 국가 예산을 들여 비트코인을 사들이도록 한 부켈레 대통령이 이날 자신의 엑스(X)에 테더 CEO 게시글을 공유하며 “집에 온 것을 환영한다”고 반겼다.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등록된 상태인 테더가 엘살바도르에서 디지털 자산 서비스 제공자 자격(라이선스)을 확보한 후 법인 소재지를 이전할 예정이라고 13일(현지시간) 로이터·블룸버그통신 등이 전했다. 이탈리아 출신으로 알려진 파올로 아르도이노 테더 최고경영자(CEO)는 “협업 촉진과 신흥 시장 집중 및 선택 강화를 위한 자연스러운 발전적 결정”이라며 자신을 포함한 경영진 역시 엘살바도르에 주거지를 마련할 입장을 보였다고 로이터가 보도했다.
대통령 직속 현지 비트코인 사무소(ONBTC)에 따르면 엘살바도르 정부는 현재 6026.18 비트코인을 보유 중이다. 수도 산살바도르 시간 13일 낮 12시40분 기준 약 5억5499만9415 달러(약 8152억9000만 원)에 해당하며 투자 손익을 실시간 분석하는 사설 웹사이트 나이브트래커를 보면 미실현 매도 이익이 100%를 넘는다. 제도적 정비가 필요한 측면은 분명히 있으나 암호화폐 운용을 통해 엘살바도르의 운명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지 눈길이 쏠린다.
작년 10월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소식통을 인용해 뉴욕남부지검이 테더의 국제 제재 및 자금세탁방지의무 위반 의혹을 수사 중이라고 보도했으며, USDT도 제3자에 의해 마약거래·테러·해킹 등에 쓰이거나 자금세탁에 사용되지 못하도록 감시가 필요하다. 다만 미 차기 정부에선 조 바이든 정부처럼 위험시하며 규제하기보다 제도적 개선을 통해 가상화례의 순기능을 적극 살리려는 방향성이 뚜렷해 보인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첫 상무부 장관에 지명된 하워드 러트닉 정권 인수팀 공동위원장의 투자 회사가 테더와의 협력 관계를 강화하려 한다는 관측도 나왔다. 트럼프의 당초 부정적이었던 가상화폐관(觀)을 바꾼 게 바로 억만장자 금융 자산가인 러트닉 후보자였다고 알려져 있다. 이런 흐름에 올라탄 지도자가 부켈레 엘살바도르 대통령인 셈이다.
부켈레는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지만 일찍 사업에 뛰어들어 자국 내 야마하모터 제품 판매·유통 회사를 운영해 본 터라 분배·평등 정의보다 자유 시장경제에 친숙하다. 2012년 ‘파라분도 마르티 국민해방전선’(FMLN) 소속으로 소도시 누에보 쿠스카틀란의 시장에 당선돼 정치인생을 시작했다. 2015년 선거를 통해 산살바도르 시장이 되더니 취임 1년 만에 범죄율을 16%나 낮춰 본격적인 유명세를 탔다.
또한 산살바도르 시장 시절 부켈레는 거리 곳곳에 가로등을 설치하고 도서관과 공원 등을 확충해 공공시설을 정비와 주거환경 개선에도 힘쓰며 유력한 대권 주자가 된다. 2017년 당의 명예를 훼손하고 여성당원을 모욕했다는 이유로 FMLN에서 출당 당했으나 ‘새로운 생각’(NI)이라는 신당을 창당했다. 2018년 총선 및 지방선거에서 FMLN이 참패, 총선 승리한 ‘국가공화연합’(ARENA)이 수도(水道) 민영화 법안을 통과시켜 혼란을 부른 가운데 입지를 다졌다.
2019년 대선에서 지지율 40~50%로 1위를 달린 부켈레는 단독 과반득표를 달성해 30년 역사의 양당제를 무너뜨린다. 대통령이 되자 군대까지 동원해 ‘MS-13’ ‘18번가 갱’ 등 자국 내 조직폭력단 소탕에 나섰다. 치안 개선에 큰 성과를 보이면서 인권탄압을 비난하는 국내외 여론이 잦아들었다. 이전 정부 역시 강경책을 구사한 적 있었지만 범죄 감소에 부켈레정부처럼 효과를 내진 못했다. 2022년 12월16일 부켈레 대통령 트위터(현 엑스)에 “(엘살바도르 역사상) 살인 사건이 한 건도 안 일어난 첫 날”을 자축한 문구가 올라 왔다.
심지어 부켈레는 여론조사 지지율 90%의 인기를 등에 업고 현행 헌법마저 넘어섰다. 헌법엔 대통령 단임제가 명시돼 있으나 대법원의 해석에 힘입어 작년 2월 연임에 도전해 대승을 거뒀다. 갱단 토벌과 집권 초기 2020년 당시 일 평균 2000건 이상이던 살인사건 수가 2023년 154건으로 줄어드는 등 눈부신 업적 때문이다. 그해 6월 국회의원과 지방자치단체장 정원 축소 법안의 대통령 서명에 의해 84개였던 의석이 60개로, 지자체장은 262명에서 44명으로 크게 줄었다. 권위주의 체제 강화라는 비난도 국민적 지지로 다 물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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