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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화살’은 명리학에서 이성에 대한 편력이 강한 사주를 말한다. 이런 사주는 성적으로 방종하고 색기가 충만해 한 명의 이성에게 만족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도화살 중에 으뜸은 ‘월장도화’다. 담을 넘고 국경을 넘어 찾아올 정도의 강력한 도화살을 말한다. 이런 살을 가진 이성을 만나면 가정도 재산도 명예도 헌신짝처럼 내다 버리게 된다.
도화가 우리말로 복사꽃(복숭아꽃)이다. 수줍은 듯 화려한 복숭아꽃이 아름다운 여인을 연상시키는 데서 도화살이라는 말도 나왔다. 벚꽃이 소녀의 수줍은 미소라면 복사꽃은 성숙한 여인의 농익은 웃음을 연상시킨다.
열매인 복숭아는 한술 더 뜬다. 얕게 골이 진 분홍빛 외형은 여성의 아름다운 엉덩이를 닮았다. 과육은 과육대로 여성의 풍만한 가슴에 비유되곤 한다.
교과서에도 실린 이상화의 시 ‘나의 침실로’에는 “먼동이 트기 전으로 수밀도의 네 가슴에 이슬이 맺도록 달려오너라…”는 구절이 나온다. 수밀도(水蜜桃)란 즙이 많고 식감이 부드러우며 향기로운 복숭아 종이다.
부천이 복사골 된 건 선점의 원리
현대에는 ‘매력살’이라고 해서 도화살을 나쁘게만 여기지 않지만 과거에는 복숭아 ‘도’ 자가 들어가면 ‘도색잡지’ ‘도색영화’처럼 성적 방종을 뜻했다.
그런데 도화가 성적 방종과 상관없이 쓰일 때도 있다. 복숭아 산지를 의미할 때다. 과거 복숭아가 나는 고장에는 복숭아꽃인 ‘도화’를 사용했다. 서울 마포구 ‘도화동’과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도화동’이 대표적인 예다. 그리고 경기도에는 복사골 부천이 있다.
산업사회에 접어들면서 서울 도화동과 인천 도화동에서는 복숭아나무를 찾기 어렵게 됐지만 부천에서는 봄이면 ‘여전히’ 복사꽃이 피고 진다. 부천시의 시목·시화·시과는 모두 복숭아다.
시기적으로 복사꽃은 벚꽃이 지나간 뒤에 등판한다. 작은 키의 나무가 소담한 꽃송이를 오종종 매달고 있는 것이 언뜻 매화를 연상시키지만 둘은 꽃잎으로 구분이 가능하다. 매화꽃잎은 둥글고 복숭아꽃잎은 끝이 뾰족하며 안쪽에서부터 붉은색이 그라데이션 되면서 올라온다. 한편 이 둘과 비슷한 벚꽃잎에는 홈이 파여 있다.
또 매화가 꽃대 없이 가지에 달라붙듯 피어난다면 복숭아꽃은 꽃대가 짧게 나오면서 그 끝에서 두 송이가 매달리듯 마주 핀다. 벚꽃은 꽃대가 길게 나와 여러 송이가 매달리듯 핀다.
부천이 복사골로 불리게 된 것은 선점의 원리 덕이다. 1902년 부천 지역에서 우리나라 최초로 복숭아 재배가 시작됐다.
사실 부천에는 아주 오래전부터 성주산을 중심으로 야생 복숭아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소사구 심곡본동의 소사농원은 1902년부터 개복숭아나무·돌복숭아라고도 불리는 야생 복숭아나무를 걷어내고 지금의 개량 복숭아를 심기 시작했다.
복숭아나무는 20~30℃로 온난하며 남향이고 배수에 유리한 완경사지가 성장에 유리한데 부천은 더할 수 없이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소사농원이 개량 복숭아나무를 심는 것을 보고 이듬해 다케하라 인천역 역장이 따라 심더니 다른 일본인도 너도나도 심기 시작했다.
당시 일본인은 조선총독부를 등에 업고 우리 국토를 마구잡이로 수탈해 자기들 구미에 맞는 작물을 재배했는데 그들 눈에 들어온 게 부천의 복숭아나무였다. 그들은 자기들이 눈독을 들인 땅에 전기를 넣지 않는 방법으로 일부러 땅값을 떨어뜨린 뒤 그 땅을 사들이는 방법을 쓰곤 했다.
일제시대인 1925년부터는 복숭아나무 재배 면적이 크게 늘어 소사 복숭아는 수원의 딸기·안양의 포도와 함께 경기도 3대 과일로 꼽혔다.
당시 생산된 품종만 조생수밀도·천진·기영·유행조생종·사용·소림·상해중생종·백도·명일·금도만생종 등 10여 종에 이르렀다. 이렇게 생산된 복숭아는 ‘소사 명산’이라는 이름으로 서울과 인천으로 출하되었고, 멀리는 평양과 신의주를 거쳐 만주까지 팔려 가기도 했다.
사실 도화동이 속한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지역도 일제시대인 1914년 부천군이 새로 만들어지면서 경기도 부천군 다주면과 경기도 부천군 문학면에 편입되었던 곳이다. 당시 이곳은 복숭아 재배가 활발해 이미 도화동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1936년 인천부 행정 구역이 확장됨에 따라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지역은 다시 인천부로 편입되었고 복숭아가 나지 않는 지금까지 그 이름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1960년대 들어 복숭아 2000t 수확
1930년대 부천에서는 15만3000㎡(45만 평)의 땅에서 연간 30만 관이 넘는 복숭아가 생산됐다. 1960년대에는 복숭아 재배 면적이 180만㎡로 늘어났으며 한 해 생산량도 2000t을 넘어섰다. 이 시기 초등학교 교과서에 ‘소사 복숭아’가 소개됐다.
그러나 1970년을 정점으로 부천에서는 점점 복숭아나무가 사라지게 됐다. 1980년대 초 소사공단·송내공단을 건설하면서 복숭아나무를 모두 뽑아 버린 탓이었다. 경제적 가치로 따지면 공단이 상급일지 모르지만 그 바람에 부천은 복사골 이미지를 잃고 평범한 위성도시로 전락하고 말았다.
2002년부터 4월 중에 지역 축제로 열고 있는 ‘부천춘덕산복숭아꽃축제’는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복사골’이라는 소중한 타이틀을 되찾아오기 위해 부천시가 벌인 사업이다.
한때는 과수원으로 돈을 벌었고 한때는 공단 건설로 돈을 벌었던 시가 뒤늦게나마 도시 이미지의 중요성을 깨달은 것은 퍽 다행한 일이다.
춘덕산복숭아꽃축제는 해를 거듭하면서 원미산진달래축제·도당산벚꽃축제와 함께 부천을 대표하는 꽃축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꽃축제가 열리는 춘덕산에는 일본 오카야마시에서 기증받은 복숭아 묘목과 부천 토종 복숭아나무가 함께 자라고 있다.
부천시와 자매결연을 맺고 있는 일본 오카야마시 역시 매년 모모타로(복숭아 동자) 축제가 열린다. 모모타로 축제는 옛날 시냇가에서 아낙들이 빨래를 하는데 커다란 복숭아가 떠내려오기에 쪼개어 열어보니 그곳에서 모모타로 상이 나왔던 데서 기인한다.
신묘한 능력의 모모타로 상은 나쁜 도깨비들을 복숭아에 넣어 멀리 던져버려 마을의 근심을 덜어주었다고 한다.
복숭아꽃 축제장을 찾아가려면 역곡역에서 내려야 한다. 역에서 춘덕산 복숭아꽃동산까지는 마을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도보로 이동할 경우 20분가량 걸린다.
복숭아꽃 과원을 둘러본 뒤에는 과원 입구에서부터 까치울역까지 봄꽃으로 물든 길을 산책하면 좋다. 특히 까치울역 1번 출구 부근 부천생태공원 부천무릉도원수목원에서는 30일까지 봄꽃전시회를 통해 튤립정원을 일반에 공개한다.
또 4번 출구 앞 카페거리에는 봄꽃 관람 뒤 식도락을 즐기기 좋은 식당과 카페가 모여있으며 3번 출구 인근 베르네천에도 1km가량 산책로가 조성돼 있어 꽃양귀비와 튤립 등 다양한 봄꽃과 물소리를 즐기며 걷기에 그만이다.
과거 부천은 시냇물이 흐르는 기름진 땅이었다. 부천시 오정동 하수종말처리장 뒤편을 ‘방죽들’이라 부르는데 아주 오래전 이곳에는 큰물을 막는 제방이 있었음을 시사하는 명칭이다. 이 제방은 인천 계양산 아래서부터 김포공항이 있는 공항동을 따라 이어진다.
지금 부천은 인공하천이지만 상동신도시에 ‘시민의 강’을 건설해 아파트단지 사이로 물줄기를 흘려보내고 있고, 수도권 제1순환도로변에는 호수식물원을 조성했다. 서울의 위성도시였던 부천은 지금 꽃피는 새 우는 친환경 도시 이미지를 만들어 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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