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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이 한 달도 안 남았다. 내달 20일 공식 출범할 트럼프2기 행정부에서 두드러지는 점 가운데 하나가 인도계 엘리트들의 약진이다. 니키 헤일리(52·전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지사, 전 유엔대사) 이력에서 보듯 인도계는 일찍부터 미국 내 인구 대비 출중한 사회적 위상을 자랑해 왔으며 그럴 만한 몇 가지 이유가 있긴 하다. 그러나 이번 인도계 엘리트의 대거 고위 공직 진출은 격화일로인 미·중 경쟁 속에 중국계 미국인을 중용하기 어려운 시대적 흐름 영향이 커 보인다.
NBC에선 22일(현지시간) “인도계 미국인 공화당 스타들이 새롭게 탄생한 한 해”라는 제목의 기사로 이런 현상의 배경을 분석했다. 트럼프2기 행정부에서 가장 요직에 등용된 인물로 차기 연방수사국(FBI) 국장 지명자 캐시 파텔(44)이 있다. 인도계 이민 2세인 파텔은 변호사 자격증 소지자이며 공판검사와 연방 하원 정보위원회 선임 고문 등을 거쳐 트럼프1기 때 국가정보국(DNI) 부국장,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대테러 선임 국장 등 안보 분야 요직을 역임했다.
FBI는 테러와 사이버범죄, 화이트칼라 범죄, 부패, 민권 침해 등 수사를 맡아 온 미 최고의 수사기관이다. 그 수장인 FBI 국장의 권한도 막강할 수밖에 없다. 이런 요직에 백인 아닌 인도계가 발탁된 것 자체가 이례적이다. 파텔이 그동안 트럼프의 굳건한 신임을 얻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FBI를 48년간 이끈 초대 국장 존 에드거 후버의 경우 대통령조차 눈치를 볼 만큼 실질적 권력을 행사했다. 이후 FBI 국장에 임기(10년)가 생기긴 했으나 대통령과의 합(合)과 적절한 거리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트럼프 측근 중 또 다른 인도계 대표 인사로 비벡 라마스와미(39)가 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와 함께 정부효율부(DOGE) 공동 수장에 지명돼 이미 화제를 불렀다. 라마스와미 역시 이민 2세이며 하버드대 생물학 전공을 살려 바이오테크 회사를 창업한 기업가다. 최연소 출마자로 나선 공화당 대통령 경선에서 주목받은 후 탈락하자 트럼프 선거를 적극 도우며 측근으로 꼽히게 됐다.
이 외에 차기 법무부 시민권 담당 차관보로 지명된 하르밋 딜런(55) 변호사와 국립보건원(NIH) 원장으로 지명된 제이 바타차리아 스탠퍼드대 교수(56)가 있다. 두 사람 모두 인도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건너온 이민 1~1.5 세대들이다. 이미 많이 알려진 JD 밴스 부통령 당선인의 부인 우샤도 인도계이며 남편과 예일대 로스쿨 동문인 만큼 평범한 가정주부는 아니다. 아직 세 자녀 양육에 바쁜 입장이지만 훗날 얼마든 공직에 진출할 가능성이 있다.
인도계는 미국 인구의 2% 미만이나 고수입·고학력 최상위 5%를 차지하며 주류 사회 진입 수준이 비백인계 이민자 가운데 가장 출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체로 영어 장벽에 고전하는 기타 아시아계 이민자들보다 언어능력이 뛰어나다는 게 대표적인 강점이다. 인도가 교육열이 높고 영어권이라고는 하지만 워낙 다언어 사회인데다 학력·계층에 따라 영어능력 편차 또한 극심하다. 다만 동서양 중앙에 위치한 인도 아대륙 언어들이 양쪽의 언어적 특징을 동시에 가졌기에 인도 출신들은 어떤 언어든 비교적 쉽게 통달한다.
이날 NBC 보도에선 인도계 미국인은 전체 아시아계 중 민주당 지지 성향이 가장 강한 집단이며 그동안 공화당을 지지하는 보수 성향 유권자의 비중도 꾸준히 늘었다고 지적됐다. 아시아·태평양계미국인(AAPI) 데이터에 따르면 2016년 대선 직후 인도계 미국인의 77%가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 후보에게 투표했다고 답했으나, 올해 9월엔 인도계 미국인 69%가 민주당 해리스 후보 투표할 계획이라는 응답 결과를 보였다. 인도계의 민주당 지지층이 약 10%나 줄어든 것이다.
AAPI 데이터 설립자인 카틱 라마크리슈난은 트럼프가 첫 임기 때부터 중국과 무역전쟁을 벌였으며 향후 더 격렬해질 것이라는 현실을 인도계 약진의 국제정치학적 요인으로 짚었다. “미·중 간 긴장 고조 속에 중국계 미국인이 중요한 공직을 맡기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인도계 인재가 풍부한 점도 물론 빼놓을 수 없다. 18∼34세 인도계 미국인들, 라마스와미·파텔처럼 미국 출생자뿐 아니라 (인도에서 태어나) 최근 귀화한 젊은 남성들도 트럼프 지지층에 속하며 정보·통신 기술 분야 종사자들이 많다고 한다.
트럼프는 그동안 중국을 견제하면서 인도나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에 대해 우호적인 입장을 여러 차례 드러낸 바 있다. 2019년 9월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방미 중인 모디 총리의 손을 잡고 텍사스주 휴스턴에서 열린 인도계 대규모 집회에 참석했다. 또 2020년 2월 트럼프 당시 대통령이 인도를 방문했을 때는 대대적인 환영 행사에서 모디 총리에 대해 “위대한 리더이며 모두가 그를 좋아한다”고 치켜세웠다. 더구나 러시아가 중국과 밀착하게 만든 우크라이나전쟁이 인도의 지정학적 가치를 증대시켰다.
부통령 당선인 부인 우샤나 라마스와미처럼 애당초 카스트 상류층 가문 출신이라 특유의 보수적 성향이 공화당에 잘 들어맞을 인도계가 있다는 해석, 1960∼70년대 인도 출신 이민 1세대의 자녀들이 고학력 화이트칼라로 성장해 자연스레 기반을 공화당에서 찾은 것이라는 분석 등이 있다. 역사·문화 면에서 중국의 자부심과 대국 의식을 상대화시킬 유일한 나라가 인도라는 점도 인도계 미국인의 성공 못지 않게 유의미하다. 불교와 산스크리트어 등 고대 인도 및 서역과의 교류 없이 중화문명의 성립은 상상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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