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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 아이돌의 인기가 심상찮다. 2024년 12월 멜론이 공식 발표한 ‘한 해 동안 가장 사랑받은 콘텐츠’에서 5인조 버추얼 보이그룹 플레이브의 ‘ASTERUM: 134-1’이 8억5936만 조회로 2024년의 ‘가장 많이 들은 앨범’에 선정됐다.
또 미니 3집 ‘Caligo Pt.1’은 올 2월 발매 2시간20분 만에 멜론 누적 앨범 스트리밍 수 100만을 달성하며 달성 시점 기준 역대 2위의 기록을 세웠다.
이 앨범으로 플레이브는 다음 날 오후 누적 앨범 스트리밍 1000만 회를 기록하며 멜론 역대 최초로 24시간 내 1000만 회 이상 스트리밍 앨범에 등극했다. 1시간 최대 스트리밍도 51만8700회로 역대 1위다. 발매 일주일이 지난 시점에는 멜론 누적 스트리밍 20억 회를 달성하며 빌리언스 클럽 실버 클럽으로 승급했다.
미니 2집 ‘아스테룸: 134-1’은 일주일 만에 57만 장 가까이 팔렸고, 수록곡 모두 음원차트 상위권에 진입했다. 타이틀곡 ‘웨이 포 러브’는 발매 24시간 만에 600만 음원 스트리밍을 달성했다.
설마 했던 오프라인 공연도 이루어졌다. 플레이브의 첫 번째 오프라인 팬 콘서트 ‘헬로, 아스테룸!’이 작년 4월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개최됐다. 티켓 가격도 어마무시했다. 선(先)예매 10만8000원·일반 예매 12만1000원이었다. 전석 매진은 당연한 거고 선예매 오픈 때는 동시 접속자가 7만 명에 달했다.
2023년 데뷔한 플레이브는 소위 ‘본체’로 불리는 실연자가 장비를 착용하고 노래와 안무를 소화하면 2차원 캐릭터가 이를 따라 움직이는 방식을 따른다. 노출되는 모습은 영락없는 애니메이션이지만 사실은 사람이 뒤에서 춤추고 노래하니 100% 가상은 아닌 셈이다. 실제로 그룹 플레이브의 구성원은 작사·작곡·안무에 있어 넘사벽의 실력자들이다.
현재 플레이브 외에도 이세계아이돌·스텔라이브 같은 가상 아이돌이 활발한 활동을 펼치는 중이다.
사실 이들 전에도 우리에게는 ‘아담’이 있었다. 1998년 데뷔한 ‘국내 1호 사이버 가수’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아담의 등장은 세간에서 큰 화제몰이를 했지만 주류 문화권에는 편입되지 못한 채 조용히 소멸했다. 아담은 실패한 것을 어떻게 플레이브는 이루었을까.
플레이브를 지금의 자리로 이끈 것은 숏폼이다. 릴스·쇼츠·틱톡를 통해 플레이브의 공연 영상을 최초로 접한 이들은 스스로 이 신선한 그룹의 노래를 찾아 듣기 시작했다.
일찍부터 게임 캐릭터 등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젊은 층에게는 사실 사람과 캐릭터를 구별하는 일이 무의미했다. 여기에 청량감 있는 록 기반의 음악에 라이브를 통한 즉각적인 소통은 팬심을 사로잡는 데 한몫했다.
숏폼 덕도 있지만 결정적으로 플레이브는 기획력의 승리라고 할 수 있다. 아담은 못 가졌지만 플레이브가 갖고 있는 게 있다. 바로 ‘세계관’ 스토리텔링이다.
세계관이란 만화나 소설·영화에서 펼쳐지는 그들만의 삶-공간을 지칭한다. 대표적으로 마블 스튜디오가 제작한 히어로 영화 시리즈의 ‘MCU’가 있다.
언뜻 SF 장르나 히어로 물이 창안한 발명품처럼 보이지만 과거에도 제우스·포세이돈·아프로디테 등 신들이 살고 있는 그리스 로마 신화의 세계관이 있었다.
플레이브는 가상세계 카엘룸(Caelum)에 살던 이들로 지구의 개발자에 의해 아스테룸(Asterum)이라는 중간계로 오게 되었다는 설정을 따른다. 그들은 중간계에 머물며 테라(Terra·지구)의 팬들과 소통한다. 즉 그들은 지구인 공동체가 아니다.
멤버 하민의 경우 ‘유일하게 인간과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소년’으로 설정돼 있다. 그는 컴퓨터에서 스스로 태어나 개발자에게 발견된 케이스로, 말하자면 뒤늦게 카엘룸에 정착한 이주민이다. 노골적인 거짓말은 거짓말이 아니라 콘셉트다.
플레이브의 뒤를 이어 가상 걸그룹 ‘이세계 아이돌’이 5월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가상 아이돌 처음으로 오프라인 행사를 갖는다. K팝 걸그룹 전체를 놓고 봐도 블랙핑크에 이은 두 번째 사례다.
이세계 아이돌의 패러블 엔터테인먼트는 지난달 또 다른 가상 걸그룹 ‘아이리제’를 데뷔시켰다. 그 밖에도 7인조 가상 보이그룹 ‘스킨즈’와 4인조 가상 걸그룹 ‘아이시아’가 올해 중 데뷔를 목표로 하고 있다.
SM엔터테인먼트의 첫 가상 아티스트 나이비스는 ‘서울디자인 2024’ 홍보대사로 선정됐고 에스파의 단독 콘서트에서는 신곡 ‘센서티브'(Sensitive)’를 선보였다.
가상 아이돌은 학폭이나 연애 이슈 관련 사생활 논란이 없어 소속사 측에서도 멤버 관리가 쉽다는 장점이 있다.
이제 가상 아이돌은 누가 뭐래도 K팝의 정식 일원이다. 그러나 눈을 마주치지 않으면 소통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기성세대에게는 이들이 여전히 낯설게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이래저래 젊은 사람들과의 거리가 안드로메다가 돼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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