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나라와 일본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바로 ‘빨리빨리’와 ‘천천히’ 문화다. 주민센터에서 증명서를 발급받거나 인터넷을 설치할 때 한국 사람이 일본에 가서 처음 느끼는 것은 일을 너무 천천히 해서 답답하다는 점이다.
빨리빨리 문화에 젖어있는 우리나라 사람이 조금 늦더라도 일을 정확하게 처리하자는 일본의 사고방식을 이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인가. 일본의 제품 불량률은 거의 0에 가깝다. 대충대충 만들어 불량률이 세계 최대인 중국과는 하늘과 땅 차이다. 우리나라는 일본과 중국의 중간 쯤 될까.
한국과 일본의 교통문화에서도 이러한 경향은 극명하게 엇갈린다. 오죽했으면 일전에 MBC TV가 일요일마다 방영한 ‘이경규가 간다’라는 프로그램에서 양국의 정지선 준수 문화를 사실적으로 비교하며 우리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켰을까.

일본 골목길을 걷다보면 도로에 흰 페인트로 ‘토마레(止,と)まれ)’라는 표시를 한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토마레는 ‘멈추라’는 뜻이다. 작은 골목이라도 분기점에 이르거나 큰 도로가 나오는 곳에는 반드시 이 글자가 바닥에 적혀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보행자가 있을 수 있으니 일단 멈추고 주위를 살펴보라는 일종의 신호다.
특히 눈길을 끄는 점은 아무도 보지 않을 것 같은 골목에서도 운전자가 이 표시를 그냥 무시한 채 속도를 내고 지나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토마레라는 표시를 보고도 일단 멈추지 않고 지나가다가 교통경찰관에게 적발되면 벌금을 물게 된다.
일본은 무조건 보행자 위주다. 그래서인지 보행자 천국이라고 말한다. 일본 운전자는 토마레가 적혀있는 곳에 이르면 일단 차를 한번 세웠다가 주위를 둘러보고 가속 페달을 밟는다. 이것은 철칙이다.
일본 운전자는 신호를 잘 지킨다. 사람이 다니지 않는 심야에도 횡단보도 신호등에 빨간 불이 켜져 있으면 일단 멈춘다. 신호가 바뀌면 최우선으로 지켜야 한다는 그들의 철저한 준법정신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런 운전 습관으로 골목에서 도로의 반대편 차선으로 들어가야 할 때도 자연스럽게 양보를 받을 수 있다. 굳이 틈을 봐서 억지로 밀어 넣지 않아도 상대편이 이쪽 사정을 보고 알아서 손짓을 해주거나 간격을 벌려준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나라처럼 교차로에서 서로 먼저 가겠다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볼썽사나운 일은 일본에서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뒤 차량이 앞 차량과 간격을 생각하고 신호를 본 뒤 어차피 따라붙어봤자 길을 막을 게 뻔한 상황이라면 횡단보도 앞에서 더 이상 차를 전진시키지 않는다.
일본에서 오랫동안 운전해본 사람이라면 일본이 교통 선진국인 이유를 크게 여덟 가지 꼽는다.
첫째, 깜빡이를 켜면 절대적으로 양보해준다. 일본의 깜빡이 양보는 상상을 초월한다. 꽤 빠른 속도로 달려오다가도 깜빡이를 켜는 순간 속도를 확 줄여 양보해준다.
둘째, 양보를 받고 나면 예외 없이 비상 깜빡이나 목례로 고마움을 나타낸다. 그거 안하면 무슨 병이라도 걸릴 것처럼 반드시 양보해준 상대방에게 고마움을 표시한다.
셋째, 신호 없는 교차로에서 우회전(한국의 좌회전에 해당) 하기 위해 기다릴 경우 정면에서 마주 오는 차량이 속도를 줄이면서 상향등을 켜준다. 자기가 서 줄테니 먼저 가라는 신호다.
우리는 상대방이 앞에서 늦게 갈 때 빨리 가라고 상향등을 켜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남을 배려하는 일본인의 사고방식은 우리와 차원이 다르다.
넷째, 일본 운전자는 정지선에 칼같이 맞춰 선다. 일본 골목길에는 토마레 표시가 돼 있는 곳이 많은데 표시선 앞에 딱 멈춰선 뒤 주위를 2~3초 살펴본 후에야 움직인다. 철저한 보행자 우선이기 때문이다. 물론 일단 멈춤 안 하다가 교통경찰관에게 걸리면 상당한 과태료를 물어야 한다.
다섯째, 반사경이 많은데, 기가 막히게 운전자 위주로 정확하게 배치돼 있다는 것이다. 운전을 하다보면 사각이라는 게 있다. 일본에서는 이를 고려해 골목길에 반사경이 많이 설치돼 있다. 사각까지 고려해 운전자 보행자 모두를 생각하는 교통문화가 눈에 띈다.
여섯째, 웬만해서는 경적을 울리지 않는다. 일본인은 경적을 울리는 것에 죄의식을 갖고 있는 것 같다고 여겨질 정도로 정말로 위험하거나 주의를 줘야 할 상황이 아니면 경적을 울리지 않는다. 운전자 상호 간에서 일어날 수 있는 스트레스를 미연에 방지하자는 의도다.
일곱째, 자로 잰 듯이 주차한다. 그리고 최대한 구역 중앙에 주차하려 힘쓴다. 그게 될 때까지 몇 번이고 후진과 전진을 반복한다. 다음에 주차하는 사람이 주차에 곤란을 겪지 않도록 미리 배려하기 위함이다.
여덟째, 가장 충격적인 것. 법규 위반하다 교통경찰에 걸리면 경찰에 미안하다고 사과한다. 우리나라 운전자처럼 절대로 ‘좀 봐주세요’라고 토를 달지 않는다. 교통법규를 어겼으니 스스로 할 말이 없다는 뜻이다.
교통은 흐름이다. 내가 남보다 빨리 가려면 속도를 올려야 하고 무리하면 사고로 이어진다. 아무리 빨리 가려고 용을 써도 길어봐야 몇 분이다. 그것보다 배려하는 마음으로 교통사고가 나지 않도록 여유롭게 운전하는 게 좋지 않을까.
일본에서 교통사고가 잘 일어나지 않는 것은 한마디로 교통 법규를 잘 지키고 서로 배려하는 운전문화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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