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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한식당에서 식사가 나오기까지 그 짧은 시간에 책을 읽고 있는 젊은 부인을 보았다. 평소에 한국과 일본의 독서량 차이를 늘 의식하던 차였기에 다가가서 물었다. “독서를 많이 하시나 봐요.” “아니에요.” “1년에 몇 권 정도 읽으세요.” “음… 약 800권요.” (입이 딱 벌어졌다) “주로 무슨 책을 읽으시나요.” “저는 소설을 많이 읽지요.” “어릴 때부터요” “네 부모님이 집 거실에 TV를 놓지 않으셨어요. (웃음) 즐거움은 오로지 책을 보는 것뿐이었어요.” “그럼 지금 자녀분에게도 그렇게 하고 계시는가요.” “네 저도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참 좋은 습관이라고 생각하며 부모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독서 선진국으로 출판사의 매출을 보면 내 조국 대한민국과의 현격한 차이를 실감하게 된다. 한국의 출판사 1위 매출은 약 300억 원이나 일본 최대 출판사인 고단샤(講談社)의 매출은 무려 3조 원이라고 하니 기가 죽고 만다. 2017년 발표된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국가별 성인 1인당 독서량을 보자. 미국 6.6권·일본 6.1권·프랑스 5.9권을 비롯해 그 외 독일·영국 등이 상위에 랭크되어 있다. 역시 선진국들이다. 우리나라 대한민국은? 조사기관마다 편차가 있지만 대략 0.8권으로 166위다.
일본의 지식 산업은 메이지 시대로부터 시작되었다. 당시 서양에 파견한 ‘이와쿠라 사절단’이 배우고 실천한 것들은 위대한 지식 혁명으로 이것이 일본의 근대화를 이끌었다. 일본의 지식 공유 힘은 한국보다 무려 150년이나 앞선 것이다. 상업을 통한 번영은 이보다 훨씬 더 앞섰다.
독서에 관한 명언 가운데 “독서를 많이 한 사람이 다 성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성공한 사람은 다 독서광이다”는 것이 있다. 이 명언은 개인뿐만 아니라 국가에도 당연히 적용된다. 일본은 세계적 독서 선진국이지만 한국은 후진국 수준이다.
1868년 일본은 메이지 시대가 열리고, 3년 후 선진국이 되기를 작심하고 깃발을 올렸다. 일본 정부는 1871년 이와쿠라 사절단 총 108명(정부 요직 포함한 사절 46명·유학생 43명)을 약 2년간 유럽과 미국에 파견했다. 10년 뒤 조선도 ‘신사유람단’이라는 이름으로 시동을 걸었다. 조선의 신사유람단은 1881년 어윤중·홍영식 등 62명의 인원으로 일본으로 건너가 약 3개월 동안 도쿄와 오사카 등지의 선진 문물을 시찰했다. 청나라 쪽으로는 무기 제조 방법 등을 배우기 위해 영선사만 파견하는 데 그쳤다. 하지만 10년이라는 시간 격차가 일본의 근대사 150년을 넘사벽(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아무리 노력해도 따라잡을 수 없는 상대)으로 만들지는 않았다. 문제는 지식 공유에서 비롯된 차이였다.
메이지 유신 이전 에도막부(江戶幕府·1603년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수립한 무가 정권)도 1860년대에 미국과 유럽에 1·2차 파견 사절단을 보냈다. 이때 후쿠자와 유키치가 사절단으로 다녀와서 1866년에 쓴 ‘서양사정(西洋事情)’은 초판이 자그마치 그 시대에 15만 부나 팔렸다. 지금도 한국 작가의 책이 15만 부 팔리는 경우가 많지 않음을 볼 때 당시 일본에선 엄청난 지식 공유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와쿠라 사절단에게 맡겨진 임무는 △서양과 맺은 불평등조약 재협상 △서양의 모든 현대화 된 법과 교육·경제구조 정보를 수집해 일본 근대화를 촉진시키는 일이었다.
일본은 이와쿠라 사절단의 효과에 힘입어 44년간의 메이지 시대를 통해 아시아 1등 국가로 등극했다. 이 변화를 상징하는 건 이와쿠라 사절단을 이끈 이와쿠라의 출발 전 모습과 귀국 후의 모습 만큼이었다. 이와쿠라는 일본 문화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출발할 때는 일본식 상투와 기모노 차림으로 배에 올랐다. 그러나 미국에 유학하고 있던 아들 이와쿠라 도모사다 등에게서 “미개 국가로 멸시받는다”고 설득당해 시카고에서 삭발하고 이후엔 양복을 차려입었다.
일본은 이와쿠라 사절단을 2년이라는 긴 기간 세계로 파견했고, 그 보고서를 책으로 펴내 사회에 폭넓게 공유했다. 한편 조선은 일본이 세계에서 받아들인 선진문명을 배우기 위해서 노력했음은 평가할 일이겠지만 조선이 파견했던 신사유람단과 일본의 이와쿠라 사절단은 크게 달랐다. 신사유람단은 일본 방문 기간이 3개월로 짧기도 했지만 다녀와서 견문과 지식을 책으로 발간해서 사회에 폭넓게 공유하지 않았다. 그 귀한 보고서는 지극히 한정된 지식인만의 것이었다.
조선은 그때까지만 해도 양반계급이 지식을 독점하고 있었다. 지식 공유에 이렇게 큰 벽이 있었기 때문에 조선에선 산업혁명이 일어나지 않았다. 일본은 더 앞선 에도시대에 벌써 지식의 폭발이 한차례 있었다. 당시에 에도(도쿄)에는 벌써 600곳의 책 대여점이 있었으나 조선의 한양에는 그런 게 전무했다.
저술가 유홍준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한·일 관계에서 일본은 과거사의 콤플렉스가, 한국은 근대사의 콤플렉스가 있다”고 명쾌하게 정리해 주었다. 우리는 고대사에 속하는 시절 문명이 앞섰던 자부심만으로는 미래를 준비할 수 없다. 근대사의 콤플렉스인 150년간의 격차는 다름 아닌 독서와 지식 공유의 격차이다. 이제 디지털 시대를 맞아 일본을 앞서가기 시작한 우리가 인공지능(AI) 시대도 앞서가기 위해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바로, 힘은 ‘독서를 통한 지식 공유’에서 비롯된다는 점이다.
◇필자
•재일동포 시인
•일본 문화‧역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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