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카이 VIEW] 방폐장 설치 안제까지 지역주민 반대 탓만 할 텐가

이 시간 주요기사

뉴스 > 데스크칼럼

김준구 산업경제부장·부국장 기자페이지 + 입력 2024-06-27 00:02:40

‘누구 집 앞마당에 우물을 파지?’ 한 30대 젊은 작가가 쓴 동화 제목이다. 숲속 마을 어느 곳에다 새 우물을 팔 것인지를 놓고 동물들 간의 갈등과 이기심·위선 등을 표현한 책이다. 얼핏 제목만 봐선 자기 집 앞마당에 우물 파는 것을 원하는 건지 싫어하는 건지 명확지 않다. 다만 흔히 말하는 ‘지역이기주의’를 동물을 통해 함축적으로 표현했을 것이란 짐작은 할 수 있다.

지역이기주의를 말할 때 보통 님비(NIMBY)나 핌피(PIMFY)로 표현한다. ‘내 뒷마당에는 안 된다(Not In My BackYard)’는 뜻의 님비는 많은 주민이 혐오하는 시설이 자신이 거주하는 지역에 들어서는 것을 반대하는 사회적 현상이다. 소각장이나 화장터뿐 아니라 장애인이나 노숙자 시설 등이 이 범주에 속한다.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더라도 자신이 속한 지역에만은 용납할 수 없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일부 환경단체들이 주장하는 어디에든 아무것도 짓지 말라는 ‘바나나 신드롬’과는 차이가 있다.

이와 반대되는 개념이 ‘제발 내 앞마당에 설치해 달라(Please In My Front Yard)’는 핌피(PIMFY)다. 공공기관이나 대형 병원·전철역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집 주변에 이런 시설이 들어선다는 것은 집값과 땅값이 폭등할 것이란 기대와 희망을 함축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지역 주민들이 유치를 위해 버선발로 뛰어나가 반기는 시설들이기도 하다. 이 또한 지역이기주의의 한 개념으로 꼽힌다.

지역이기주의를 극단적으로 보여 줬던 게 7~8년쯤 전 서울 강서구의 특수학교 신설을 반대하는 주민토론회였다. 신설을 반대하는 주민들을 향해 장애인 학부모들이 울면서 단체로 무릎을 꿇고 지지를 호소했던 장면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렇다고 주민들만 이기적이라며 몰아세울 수도 없었다. 이 지역 국회의원이 선거 공약으로 해당 부지에 국립한방병원 설립을 내거는 통에 주민들 기대만 부풀게 했기 때문이다.

40년 넘게 이어져 온 지역이기주의 탓에 국가 정책이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우리나라는 원자력발전소를 가동한 지 46년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원전에서 발생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 부지조차 확보를 못 하고 있다. 원전을 가동하고 남은 사용후핵연료 등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은 각 원전 내에 마련돼 있는 ‘스펜트 풀(spent pool)’이란 장소에 저장하고 있다. 현재까지는 전국 원전마다 각자 보관해 오고 있지만 이들 대부분이 포화상태라 처분 부지 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박근혜·문재인정부에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관련 절차와 일정을 제시한 만큼 이제는 기본계획을 이행하기 위한 법제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올해 초 한국원자력학회도 ‘고준위 방폐물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이들은 “고준위 방폐장 설치는 정파적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미래를 결정하는 중대사”라며 “아무 조건 없이 고준위 방폐물 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강서구 특수학교 사례와 마찬가지로 고준위 방폐장 설치 문제도 유치를 반대하는 지역주민들 탓으로만 돌리는 건 무리다. 더욱이 이런 현상이 잘못됐다고 몰아세울 수도 없다. 나와 상관없는 지역이라면 님비 현상을 나쁘게 볼 수도 있겠지만, 우리 집 앞에 이런 시설이 들어선다면 어떻겠는가. 님비 현상은 또 다른 측면에서 보면 그만큼 민주주의가 성숙했다는 것을 보여 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시민의 권리의식과 참여의식이 높아지면서 생겨난 민주주의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성인군자를 빼고 대부분의 인간은 자기중심적이거나 이기적이다. 보통 남의 이익보다는 자신의 이익을 중시하고, 자기가 손해를 보기보다는 남에게 손해를 입히는 쪽을 택한다. 모두가 손해는 감수하려 하지 않고 이익만 보려다 보니 갈등이 생긴다. 지역주민들로선 삶의 터전이 걸린 문제이다 보니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당연하다. 충돌하는 이해관계를 적절하게 조율하는 것이 정부와 정치권의 역할이다. 이들이 제 역할을 못 하면 인간의 이기심이 사회 질서를 흔드는 것을 막을 수 없게 된다.

문제는 해당 시설들이 범국가적으로 전체 국민에게 꼭 필요한 시설이란 점이다. 이런 이유로 지역주민과의 유기적인 의사소통을 통해 민주적 해결 방법을 찾는 게 중요하다. 시설 유치에 따른 정부의 재정적 지원과 지역 발전의 청사진을 제시하는 것도 중요하다. 시설 유치에 대한 반대급부로 충분한 재정적 보상을 담아 지자체별 공개 신청을 받는 것도 좋은 방법일 수 있다. 주민투표를 거치도록 해 지원을 한 지자체에 명분을 확보해 주는 것도 필요하다,

지역이기주의 현상은 정부와 정치권에서 가장 해결하기 힘든 이슈 중 하나다. 그렇다고 꼭 필요한 시설을 지역 민심이 무서워 마냥 미룰 수도 없는 노릇이다. 정부와 정치권에선 당장 발등의 불이 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 부지부터 선정하길 바란다. 부지를 선정했다고 해도 공사 마무리까지 또 한참의 시간이 필요하니 서둘러야 한다. 눈앞의 현실을 마냥 미룬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다.

김준구 산업경제부장·부국장 jkkim@skyedaily.com 기자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