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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세기 전 전쟁영화가 그렇게 매력 넘칠 줄은 미처 몰랐다. 영화사에 남는 명작이란 명성 속에 1971년 아카데미상을 6개나 거머쥐었던 왕년의 작품 ‘패튼대전차군단’ 말이다. 그런데도 요즘 케이블TV에서는 이 작품을 시청해 본 일이 없다. 전쟁광으로 악명 높았던 패튼 장군이니만치 문약(文弱)에 빠져 헐렁하게 사는 우리 시대와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일까.
‘빠삐용’을 연출했던 프랭클린 샤프너가 연출한 이 작품은 러닝타임이 3시간에 가깝다. 그래서 EBS 일요시네마는 11일과 18일 2주 연속 편성을 했는데 그럼에도 흡인력이 대단했다. 오죽했으면 내 경우 소파 옆에 5년 전 출간된 책 ‘패튼’(앨런 액스로드 지음·플래닛미디어)을 올려놓은 채 영화와 번갈아가며 봤다. 왜 그렇게 흥미로웠을까.
전쟁영화하면 떠오르는 작품은 무엇인가. 반전 구호가 확산되었던 월남전 이후 등장한 ‘지옥의 묵시록’(1979), ‘플래툰’(1986), ‘7월4일생’(1989) 등일까. 이들 작품은 전쟁은 끔찍하다며 전쟁의 잔악상·비극만을 부각시켰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그중 멀쩡한 게 ‘라이언 일병 구하기’(1998)이지만 스케일이 너무 작다. 전쟁 흐름의 큰 그림과 진정한 영웅이 보이지 않는 탓이다.
‘패튼대전차군단’은 다르다. 이 작품의 포인트는 화려한 전쟁 신 같은 게 아니다. 영화 처음부터 끝까지 추락과 승리를 반복하는 독불장군 패튼의 역정을 보여 주는 스토리가 포인트다. 이 작품은 그래서 전쟁영화라기보다는 전기영화다. 즉 ‘패튼대전차군단’은 전쟁이 영웅 탄생의 무대라는 개념에 충실한 작품이다. 영화엔 안 나오지만 히틀러도 패튼의 존재를 잘 알았고 ‘카우보이 장군’이라고 불렀다. 그런 패튼은 입이 한번 터졌다 하면 늘 폭탄급이었다.
그가 생각 없이 터뜨린 말 한마디에 미국 여론이 비등하고 당시 동맹국 소련과의 외교 분쟁도 벌어진다. 패튼은 행동도 거칠었다. 외상 하나 없이 야전병원에 누워 빈둥대는 병사를 보고 성질 급한 패튼이 그만 손찌검을 해 버린 것이다. 장군이 저지른 구타 사건에 지금의 해병대 채상병사건에 못지않게 미국 전체가 와글댔다. 패튼은 끝내 보직 해임까지 당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그렇게 휘청대던 패튼이 3군사령관으로 전격 투입되면서 히틀러의 군대를 폭풍처럼 몰아붙이는 영화 후반은 실로 통쾌무비하다. 이 모든 게 실화라서 영화 보는 내내 가슴이 쿵쾅댄다. 사실 전사(戰史)로 본 제2차세계대전은 간단하다. 태평양의 명장 맥아더와 유럽의 영웅 패튼이 조국에, 인류에 위대한 승리를 안겨 준 것으로 요약된다. 이제야 이 영화의 스케일이 짐작되시는가.
등장인물도 모두 영웅의 반열이다. 패튼은 영국의 몽고메리 장군과는 견원지간이었다. 그와 티격태격하는 게 이 영화의 양념이다. 그리고 패튼과 또 달리 진정한 소통의 리더십을 보여 줬던 연합군 총사령관 아이젠하워의 존재도 영화에 무게를 실어 준다. 하지만 진짜 사나이는 패튼이다. 그런 논란 속의 패튼, 사고뭉치 패튼을 미국도 쉬 포용할 수 없었다.
훗날 이 영화가 개봉됐을 때 찬반 여론 속에 닉슨 대통령은 열광적 옹호 발언을 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지금 미 육사 교정에 패튼 동상이 떡하니 세워진 것도 역시 미국이니까 가능한 일이 아니었을까. 패튼도 멋지지만 어쨌거나 이런 영화를 만든 게 미국의 힘이다. 패튼은 20세기에 환생한 중세의 기사였다. 그런 영웅을 그려낸 이 영화는 말하자면 ‘서양판 호연지기’를 보여 준다.
모두가 잘아지고 남자다움이 실종된 시대에 우리 가슴을 뛰게 만든다. 장군이 새가슴 월급쟁이가 되고, 군대는 보이스카웃으로 추락한 우리 시대에 주는 울림도 크다. 글쎄다. 내가 만일 교장이라면 육사생도들에게 틈나는 대로 이 영화를 반복해 틀어 주고 싶다. 동시에 더불어민주당의 얼간이 의원들을 다 끌어모아 ‘패튼대전차군단’ 집단 관람을 의무화했으면 한다.
시도 때도 없이 “평화와 통일이 밥이다”고 외치는 당대표 이재명부터 무릎 꿇린 채 이 영화를 보게 할 생각이다. 명색이 4성 장군 출신이라면서 대한민국 군대에 대한 지식과 정보의 수준이 백치에 가까운 김병주 따위는 말할 것도 없다. 하긴 해병대 장군을 모욕한 최악의 인간 정청래·박지원은 이 영화를 볼 자격도 없다.
오늘 털어놓자. “다시 태어난다면 군인이 되고 싶다”고 얼마 전 누구에게 말한 바 있다. 그건 이유가 있다. 혹시 당신은 군대·전쟁이란 거칠고 비인간적인 것이며 이른바 문민(文民) 통제가 필수라고 믿는가. 그건 단견이다. 지난 반세기 넘게 큰 전쟁이 없었던 탓에 생겨난 미신이다. ‘전쟁 본능’이란 책을 쓴 마틴 판 크레펠트에 따르면 역사에서 전쟁 없이 성장한 문명·종교·민족은 하나도 없다.
얼마 전까지 유럽 사회의 기사도·일본의 무사도는 가장 높은 사회적 가치였다. 그리스의 호메로스가 쓴 ‘일리아드’ 역시 전쟁문학 범주에 속한다. 고대 로마인들은 “평화를 원하면 전쟁을 대비하라”고 말했는데, 좋고 싫음을 떠나 전쟁이 피할 수 없는 인간 조건이었다는 뜻이다. 그런 생각을 되새김질시켜 준 ‘패튼대전차군단’은 올여름 내게는 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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