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란 무엇인가. 역사에 대한 여러 학자의 정의를 봤지만 ‘재일교포의 역사’를 한마디로 압축할 만한 말은 못 찾았다. 필자에게 묻는다면 재일교포의 역사란 ‘아픔’ ‘조국 대한민국을 향한 충성’이라고 답할 것이다. 8월마다 가슴이 아려 온다. 패전에 통곡하는 사람들 속에서 해방을 맞은 분들과 그 후예 모두 오랜 세월 감정 표현이 어려웠다.
제79회 광복절 행사가 8월15일 도쿄도 이타바시(板橋) 구립문화회관에서 열렸다. 해방 당시를 기억하는 세대가 줄어드는 가운데 매년 도쿄의 광복절 행사에 기쁘게 참석해 왔다. 1945년 8월15일을 일본 땅에서 맞으며 한반도 출신자들은 수십 년간 멸칭화된 ‘조센징’이란 호칭에서 벗어난 날로 여겼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후 기대와 동떨어진 역사가 진행됐기에 재일교포에게는 더욱 각별한 8·15다.
재일교포들의 8·15 기념식 행사란 오래토록 참았던 설움이 터져나오는 날, 태극기를 보며 한층 울컥해지는 날이다. 특유의 설움과 기쁨이 교차하는, 그 누구도 가늠하기 힘들 해방의 의미를 가슴에 안고 살아온 것이다. 1945년 해방 후 10월 재일교포들은 ‘재일조선인련맹’을 결성했다. 이런저런 갈등과 시행착오를 거쳐 1946년 10월3일 비로소 한국 정부의 인준을 받아 ‘재일본조선거류민단’이란 명칭으로 정식 발족됐다.
유명한 정치학자 한나 아렌트(1906~1975)는 독일에서 태어나 성장해 홀로코스트 시대를 거쳐 살아남은 유대인이다. 그는 “고개 숙여선 안 된다! 저항해야 한다!”는 가정교육을 받으며 컸다고 회고한 바 있다. 재일교포의 환경과 대조적이다. 유대인은 정치·사회적 발언권은 약했으나 재력가·지식인이 많아 실질적 영향력을 발휘하며 품위 있는 삶을 살 수 있었다.
반면 해방 전 일본에 사는 한반도 출신 사람들은 자신의 명패를 감히 내걸지 못했다. 자식들에게 ‘고개 숙이지 말라’고 하는 대신 오로지 차별을 견디며 살아갈 것을 가르쳐야 했다. 일본은 개항 이래 서양을 배워 성장했으나 쇼와(昭和·일왕 히로히토가 재위한 1926년 12월25일∼1989년 1월7일) 시대 들어 전쟁이 국가 발전에 불가피한 것으로 몰아갔다. 일본인도 힘들었지만 재일교포의 삶은 더했다.
광복 3년 만에 대한민국이 수립됐으나 2년도 채 안 돼 6·25전쟁이 터졌다. 교포들 가슴은 또 무너졌지만 6·25전쟁의 후방기지 격인 일본엔 엄청난 경제 특수가 일었다. 패전으로 초토화된 일본이 짧은 시간 내 부흥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1960~80년대 대한민국 산업화란 일본 자본과 기술의 투자, 한국 정부의 바람직한 기획과 주도, 한국인들의 성실함과 야망이 더해져 이뤄진 성공의 역사다. 서로 윈윈했다.
그러나 일본인에게 한반도나 재일교포는 불편한 역사를 떠올리게 하는 존재, 가난하고 우울하며 자존심이 유별난 존재로 각인되었다. 자연히 경계의 대상이었고 일본에서 태어나 자란 교포 2세·3세들조차 자신의 집안 배경을 감춘 채 살아야만 했다. 평소엔 ‘사회적 통용을 위한 이름(通名)’이라며 일본식 성명을 썼다.
이들은 21세기 들어 K드라마·K팝이 일본인의 마음을 휘어잡자 그제야 자신의 출신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한 재일교포 소녀의 사연이 역사적 장면처럼 머릿속을 스친다. 드라마 ‘겨울연가’가 일본 전국을 강타해 한류의 쓰나미가 일던 시절, 스마트폰이 나오기 전 PC망에서 활발하게 소통하던 시기였다. 그녀가 채팅 중 자신이 재일교포임을 밝히자 일본 소녀들로부터 “와~ 부럽다” 등 환호가 쏟아졌다고 한다.
그런 얘기를 전해 들으며 저절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격세지감이 이는 순간이었다. 이제 적어도 60대 이하 일본인들의 한국·한국인에 대한 태도나 시각으로 마음 상할 일은 거의 없다. 요즘은 일본 내 대부분의 편의점에서 김치와 도시락용 김을 판다. 아예 냉장고에 비축해 두고 먹는 일본인도 많다.
올해 도쿄의 광복절 행사에선 ‘과거의 역사를 되풀이 말자’는 민단 간부들 연설과 윤석열 대통령의 축사를 접한 후 ‘민단 결의문’을 함께 외쳤다. 일본 각 정당 인사들의 축사는 발전적 한·일 관계에 초점을 맞춘 게 대부분이었고, 최근 ‘영주권자의 세금 미납 및 연체 지속 시 영주권 허가 취소 가능’도 화제에 올랐다. 가장 큰 박수를 받은 외빈은 재일교포의 인권 수호를 강조한 일본공산당 고이케 아키라 서기국장이었다.
2부는 늘 그렇듯 축제 분위기였다. 가수 태진아를 초청해 1시간가량 함께 흥겹게 놀았으며 한국 식품 선물과 고가의 상품 추첨도 있었다. 재일교포의 역사란 무엇일까. 다시 묻는다면 지난 세기 이래 일본 땅에서 한국인으로 살아온 과정의 희로애락 전부라고 답하겠다. ‘재일교포박물관’ 건립을 꿈꿔 온 필자로선 이 박물관을 채우게 될 모든 것이 재일교포의 역사라고 사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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