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문의 영화세상] 대한극장과 함께 사라진 도심 극장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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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문 필진페이지 + 입력 2024-10-10 06:31:20

대한극장의 폐관은 충무로 시대의 한국영화가 완전히 세대 교체됐다는 신호다. 1958년 야심차게 등장한 대한극장은 충무로 초입에 버티고 선 영화 궁전이나 다름없었다.

대한극장(1958~2024)을 기점으로 을지로 부근에 스카라극장(1935~2005)이 있었고 조금 더 아래로는 명보극장(1957~2005)이 자리 잡았다. 을지로 4가 쯤에는 국도극장(1913~1999)이 버티고 있었고. 을지로 2가 부근에 을지극장(파라마운트극장·1959~1973)이 있었다.

종로 거리 주변으로 세기극장(1958~1979)과 그 극장을 인수하고 새롭게 단장한 서울극장(1979~2021)·단성사(1907~2001)·피카디리(1960~2001·철거 후 재건축)가 포진하고 있었다.

광화문 네거리 주변으로는 국제극장(1957~1985)과 아카데미극장(1958~1968)이 있었다. 아카데미극장은 ‘맨발의 청춘’으로 대박을 쳤지만 국제·국도·을지극장 등이 한국영화 전문관으로 기세를 올리자 일찌감치 문을 닫았다. 당시 아카데미극장을 운영하던 방우영 조선일보 사장은 신문 사업으로는 성공했지만 영화 사업에서는 대세를 어쩌지 못했다. ‘아카데미극장’의 이름은 우미관이 1971년부터 1982년 폐업 때까지 사용했으나 지금은 건물 흔적만 남은 채 극장도 이름도 사라졌다.

요즘은 같은 극장에서 여러 개의 스크린을 동시 운용하는 복합상영관이 대세지만 이와 같은 멀티상영관이 생기기 전에는 개봉관들이 각각 서로 다른 영화를 상영했다. 한 영화를 보고 나서 다른 영화를 보려면 다른 극장으로 자리를 옮겨야 했다. 광화문 네거리의 국제극장과 종로2가의 허리우드극장, 종로3가의 단성사·피카디리 그리고 퇴계로의 대한극장까지 이어지는 ‘개봉관’ 벨트는 영화팬들에는 그야말로 꿈의 거리였다.

▲ 전성기 시절의 대한극장(왼쪽 위)과 ‘벤허’의 70mm 상영 때의 광고(왼쪽 아래)와 재건축 중인 대한극장(가운데)의 모습. 오른쪽 사진은 영업종료를 알리는 대한극장 홈페이지. 필자 제공

1980년대에 그나마 남아 있던 피카디리·단성사·서울극장 등의 고민은 미국 직배 영화들을 상영하는가 마는가의 문제를 두고 여론의 눈치를 살피는 일이었다. 그러던 중 강남의 씨네하우스(대표 정진우)가 직배 영화를 상영하자 태흥영화사(대표 이태원)가 운영하던 단성사는 20세기폭스사의 영화를, 서울극장(대표 곽정환)은 UIP 배급 영화를 받아들였다.

이태원·곽정환 사장은 미국영화 직배 반대 운동에 열심이었지만 이익을 위해서는 신의를 내팽개치는 일을 주저 없이 해 버렸다. 어차피 직배는 대세이고 극장 운영은 점점 어려워지는 판에 흥행성 좋은 직배 영화를 언제까지나 모른 척할 수 없다는 것이 태도를 바꾼 이유였다.

1960~70년대는 개봉관뿐만 아니라 곳곳에 재개봉관과 두 편의 영화를 한꺼번에 상영하는 3번관(동시상영관)이 산재해 있었다. 당시에는 수입쿼터라는 것이 있어 영화제작사가 연간 1편씩밖에 수입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1년에 상영되는 외국영화라야 20~30편을 넘지 않았다. 개봉관·재개봉관·3번관을 찾아다니면 모든 영화를 감상할 수 있었다. 덕분에 외국영화는 엄선되어 수입된 탓에 나름대로 평판이 좋았다. 반면 한국영화는 제작 편수는 많았지만 수작과 태작이 뒤섞이는 바람에 싸잡아 비난에 휩싸였다.

오랫동안 한국영화는 조잡한 저질문화의 상징처럼 통했지만 1985년 영화법 개정으로 외국영화의 직접 배급이 가능하게 되자 외국영화들의 직배가 대세가 되었고 삼성·대우·금강·제일제당 같은 대기업들이 비디오나 영화 사업에 뛰어들었다. 한국영화 제작의 메카처럼 통하던 충무로는 종로·강남 등으로 흩어지고 상영 방식도 전국 동시 개봉으로 바뀌자 기존 전통 개봉관들이 폐업하거나 멀티플렉스로의 재건축을 서둘렀다.

하지만 유명 극장 체인점이 지닌 편의성과 안락함을 알아 버린 관객들은 굳이 종로나 퇴계로까지 나갈 필요가 없었다. 영화가 최고의 오락이던 시절은 지나가고 체인 극장들은 웬만한 동네마다 생겨나 전국 동시 개봉 체계로 바뀐 탓에 가까운 동네에서도 관람이 가능했다. OTT로 영화를 보는 소비자가 늘어난 것도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대한극장의 폐업은 도심 극장시대가 완전히 끝났다는 방증이다. 아쉽기는 하지만 관객의 취향도 바뀌고 영화 상영 방식도 변한 데 따른 대세의 물결이다. 그나마 그때를 기억하는 사람도 함께 사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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