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문형의 만사만감(萬事萬感)] 당신은 초식동물입니까, 육식동물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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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문형 필진페이지 + 입력 2024-10-11 06:31:00

자연은 겉보기엔 평화로워 보인다. 아프리카의 초원은 풀과 나무와 웅덩이가 적당히 배열되어 있고 그 사이를 원숭이와 코끼리·얼룩말이 휘젓고 다닌다. ‘캡슐’에 들어 있는 인간이란 동물도 있다. 뚜껑이 열린 차에 인간들이 삼삼오오 타고서 사파리 관광이란 걸 하니까. 꽤 오래 전 케냐와 탄자니아 여행을 한 적이 있는데 자연의 초원 속에서 그런 생각을 했다. 여기에 있는 동물들은 우리를 무엇이라고 인식할까. 바퀴 달린 사파리차도 동물의 일종으로 볼까.

한국에선 한여름이었지만 아프리카는 우기라서 우리나라 추석 날씨 정도 되었다. 기대가 컸던 세렝게티 초원은 풀도 얼마 없고 먼지만 풀풀 날리는 땅이었다. 원숭이가 하릴없이 돌아다니는 평화로운 장면을 몇 컷 찍으며 안으로 들어가면서 우리는 사자를 간절히 찾았다. 최상위 포식자 사자는 그 시간에 세렝게티로 들어간 모든 관광차들의 욕망이었다. 그렇다 보니 운전대를 잡은 가이드 사이에 무전이 빈번했다. 온통 사자의 행방을 찾는 용건이었다.

절반 쯤 들어가다가 실망스러운 소식을 접했다. 탄자니아 기후가 가물어서 초식동물이 거의 다 남부로 이동했고 사자 또한 먹잇감을 쫓아 이동했다는 얘기였다. 야생의 자연엔 국경이 없으니 동물들은 자유롭다. ‘어쩔 수 없지. 예쁜 기린이라도 보면 좋을 텐데….’ 먼지를 마시며 계속 들어가다가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멀지 않은 곳에 사자의 무리가 있다고 가이드가 웃으며 말했다. 이 희소식은 공원 안 가이드들에게 삽시간에 퍼졌고 5분 쯤 뒤에 우리 차는 대열에 합류할 수 있었다. 10여 마리 정도 되는 사자들이 식사 중이었다. 수사자는 떠났고 암사자와 아기사자들이 상물림된 음식을 먹고 있었다. 그 주위에 빙 둘러 사파리 차량이 10대 이상 서 있었다. 남의 식탁을 구경하려고 이렇게 많은 구경꾼이 모였다니! 사자들은 흔히 있는 일인 양 아무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

잠시 머물다가 모두 해산했지만 인상에 남는 장면이었다. 며칠씩 초원에 들어와도 사자 꼬리도 못 보는 경우가 허다한데 우리는 운이 좋은 편이라고 가이드가 씩 웃었다.

동물의 세상에는 분명한 법칙들이 있다. 포식자와 피식자가 딱 정해져 있어서 우리는 그걸 먹이사슬이라고 부른다. 특정한 종이 지나치게 번성하는 것도 생태계의 질서를 깨는 것이므로 먹이사슬에는 순기능이 있다고 배웠다.

인간의 세상에도 먹는 자와 먹히는 자가 있다. 그럼 누가 초식동물이고 육식동물일까. 포식자는 누구이고 피식자는 누구일까. 요즘 범죄 사건을 다루는 프로그램이 많고 범죄심리학도 발달하고 있다. 전문가의 울타리 안에 들어 있던 사건들이 일반인에게 공개되고 있다. 자연이 겉보기에 평온한 것처럼 인간사회도 안온해 보인다. 하지만 지금 이 시간에도 곳곳에서 범죄가 일어난다. 모든 사건이 해체되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미제 사건도 꽤 많을 것이다.

인간 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의 핵심적 문제는 상대의 ‘정체’를 알 수 없음이다. 그 혹은 그녀가 초식동물인지 육식동물인지 파악하기 힘든 것이 문제다. 이런 점에서 인간 사회의 ‘먹이사슬’은 꼬여 있다. 누가 사자이고 누가 하이에나인지, 누가 양젤이고 누가 기린인지 가늠할 수 없다. 하지만 초식동물, 즉 먹잇감은 정해져 있다. 물리적 힘이 약한 개체이다. (또는 정신적으로 취약한 경우도 해당된다.) 그렇다 보니 사건의 피해자는 거의 다 여성이나 노인이나 아이다. 특히 여성은 성적 자원 때문에 나이 불문하고 다양한 사건에, 더욱이 강력 사건에 고스란히 노출되어 있다.

사파리 관광에서 볼품없이 생긴 사자를 찾는 건 단지 한 가지 이유, 최상위 포식자이기 때문이다. 남의 생명을 뺏는다고 육식동물 사자를 욕할 순 없다. 그들은 야채를 먹고 생명을 지탱할 수 없으므로. 하지만 인간은 다르다. 인간 사회의 살육은 불필요하고 잔인한 것이다. 특히 동종에게 행해지는 일이라는 점에서 공분을 사는 일이다. 동종인 인간을 자신의 욕망이나 쾌락을 위해 무참하게 희생시키는 자를 어떻게 ‘대우’해야 할까.

유인원 사회를 들여다보면 알파 수컷이 폭군일 경우 여럿이 힘을 모아 내쫓는 일이 종종 있다. 대신 도덕적이고 공정하며 무리를 온화하게 이끄는 알파로 교체한다. 가끔 몇몇 수컷들이 복수심에 무리에서 쫓겨난 알파를 무참히 살해하기도 한다. 잔인하지만 그 심정은 이해가 간다. 인간 사회는 사적인 응징을 허락하지 않는데, 그러려면 법의 적용이 공정하고 확실해야 한다. 놀라운 것은 한국 법정이 유독 ‘가해자’의 인권에 관심이 많다는 점이다. 사회에서 영구히 격리시켜야 마땅한 잔혹한 범죄자를 어떻게든 감싸고 호의적으로 배려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보호받은 범죄자들이 출소하면 새로운 희생자가 늘어난다. 분통이 터진다. 초식동물은 육식동물을 어떻게든 알아채 피하는 방법밖에 없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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