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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 사계절 식물을 감상할 수 있는 온실은 많지만 국립생태원은 식물원 그 이상이다. 충남 서천군에 자리한 국립생태원은 수목원이면서 온실이면서 동물원이다.
이런 등식이 가능한 것은 생태원이라는 장소가 지구 생태를 총망라한 곳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국립’이 주는 무게감까지. 국립생태원은 갑자기 기온이 떨어져 적응 안 되는 12월에 떠나기 좋은 따뜻한 여행지이기도 하다.
일제의 수탈 기지였던 장항역
국립생태원은 서울에서 기차로 3시간, 서천 장항역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에 있다.
장항은 금강을 사이에 두고 군산항과 마주하고 있다. 지난날 중국의 문물을 받아들이고 한반도의 문화를 일본에 수출하던 무역의 첨병 기지였지만 일제강점기 호남에서 생산된 쌀과 물자를 일본으로 빼돌리던 수탈의 통로로 사용됐다.
일제는 원활한 수탈을 위해 1931년 장항선을 개통했고 1936년에는 장항제련소를 준공했다. 1938년에는 장항항이 문을 열었다. 당시 장항제련소에 다닌다고 하면 최고의 신랑감으로 쳤다. 이처럼 번성하던 곳이었으나 1980년에 이르러 그 영광도 막을 내리게 된다. 환경오염이 사회 문제로 불거지면서 울산으로 제련 기능이 이관해 간 것이다.
성장동력을 잃은 장항은 쇠퇴의 길을 걸었다. 인구도 점점 줄어들었다. 그러던 1989년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군산과 장항을 아우르는 ‘군장국가산업단지’ 조성 계획이 발표된 것이다. 장항을 중국과의 최전선 무역기지로 개발한다는 계획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한껏 고무되었지만 IMF 금융위기가 닥치면서 산업단지의 사업성에 의문이 제기됐다. 여기에 다시 환경문제가 발목을 잡았다. 산업단지를 건설하려면 갯벌을 메워야 했는데 장항 갯벌은 한국의 주요 철새도래지였던 것이다.
주민과 환경단체 사이의 대립이 첨예해지면서 정부는 2007년 군장국가산업단지를 내륙산단으로 변경하고 대신 그 자리에 국립해양생물자원관과 국립생태원을 유치하는 대안을 내놓았다. 2013년 장항읍 마서면에 총면적 99만 8000㎡의 국립생태원이 들어서게 된 내막이다.
4500장의 유리로 지은 집
생태원의 얼굴은 유리 온실 ‘에코리움’이다. 이 거대한 건축물을 건설하기 위해 갯벌을 전부 들어내고 양질의 흙을 부어 토대를 다지는 작업이 선행되었다. 4500장의 유리로 지은 에코리움에는 ‘작은 지구’라는 별명이 붙어 있다. 기후대별 5개의 생태전시관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에코리움은 여러 면에서 기념비적인 건축물이다. 온실에 ‘창틀난방 시스템’을 활용한 이야기는 유명하다. 창틀난방이란 스틸로 만든 수직창틀에 40∼45도의 온수를 공급하여 복사열을 얻는 방법이다. 이렇게 하면 잎이 마르는 부작용 없이 식물 생육에 최적의 환경이 만들어진다. 또한 여름에는 순환수를 통해 냉방효과까지 얻을 수 있다.
열대관은 여름에는 35°C 이하로 유지되고 겨울에는 22°C를 넘어선다. 들어서면 초록 이파리 너머로 새소리·폭포 소리가 방문객을 반긴다. 상쾌한 기분도 잠시, 후텁지근한 공기 때문에 겉옷을 벗어들게 된다.
이곳 최고의 볼거리는 담수어의 제왕 ‘피라루크’다. 5m까지 자란다고 알려졌는데 현재 무분별한 포획으로 개체 수가 많이 줄어든 상황이다. 이 물고기에는 하나의 전설이 내려 온다.
아마존 부족장의 아들 ‘피라루쿠’는 힘이 너무 강해 신의 노여움을 사게 됐다. 번개를 내리쳐도 피라루쿠가 끄떡도 하지 않자 신은 그를 물고기로 만들어 육지에서 쫓아버렸다.
하지만 그 힘이 어디 가겠는가. 피라루크에 의해 종종 낚싯배가 뒤집히는 일이 있다고 한다. 피라루크는 반드시 아크릴 수조에 가두어 기르는데 물고기의 단단한 머리가 유리 수조를 박살내 버리기 때문이다. 피라루크는 민물계의 포식자로 소문난 피라냐까지 한입에 삼켜 통째로 으깨버릴 만큼 천하무적이다.
재밌는 것은 피라루크는 물고기면서 물 밖으로 머리를 내밀어 산소호흡을 한다. 폐가 있는 것은 아니고 부레가 폐의 역할을 대신한다.
사막관은 척박한 환경의 사막 생태계를 전시한다. 이곳에 전시된 선인장 다수는 국제적인 거래가 엄격하게 규제된 멸종위기종(CITES)이다. 그 외에 사막여우·방울뱀·독도뱀·검은꼬리프레리독과 같은 독특한 사막 동물이 서식한다.
생김새가 귀여운 검은꼬리프레리독(Black-tailed prairie dog)은 쥐목 다람쥐과의 동물이지만 이름에 개를 뜻하는 dog가 붙는다. 프레리독은 위험이 닥치면 벌떡 일어서서 경계의 신호를 보내는데 이때 개 짖는 소리를 낸다.
사막관은 습도가 낮고 여름 35°C 이하, 겨울 8~16°C 이상으로 유지되므로 아주 따뜻하게 느껴진다. 관절염이 있다면 이곳을 자주 찾는 것도 도움이 될 듯하다.
지중해관은 유럽·남아프리카·캘리포니아 연안·오스트레일리아 등 지중해성 기후의 생태를 재현한다. 지중해성 기후는 육지 면적의 약 1.7%에 불할 정도로 협소하지만 이곳에 전 세계 식물종의 약 25%가 집중되어 있다. 사람에게 살기 좋은 환경이 식물의 생장에도 적합하다는 의미다.
이곳의 가장 큰 볼거리는 아름드리 올리브나무다. 이만큼 자라기까지 몇 천년의 세월을 지나온 나무를 생각하면 그 묵묵함과 한결같음에 마음이 숙연해진다. 지중해관은 여름 35°C 이하·겨울 10°C 이상의 온도로 유지된다.
제사 지내는 동물 ‘수달’
온대관은 사계절이 뚜렷한 한반도의 기후 환경과 생태계를 재현한 공간이다. 온대관은 내부 공간 외에 야외 구역인 외부 계곡과 산악 지대로 구성되어 있다. 이곳의 스타는 야외 구역에 있는 수달이다. 수달은 1급수에서만 서식하기에 수질 상태의 척도로 쓰인다.
수달은 성체가 되어도 유아 때 모습을 간직한 귀여운 얼굴이 매력이다. 집에서 기를 시 대소변도 가릴 만큼 머리가 좋지만 천연기념물이기 때문에 반려동물로 삼는 것은 허락되지 않고 있다.
수달은 사냥감을 바로 먹지 않고 물가에 늘어놓는 습성이 있다. 그 모습 때문에 옛사람들은 수달을 제사 지내는 동물이라고 생각했다. 온대관은 여름에는 상온으로, 겨울에는 0°C 이상으로 유지된다.
극지관에서는 한반도의 지붕 개마고원부터 침엽수림이 발달한 타이가 숲과 툰드라 지역을 살펴볼 수 있다. 이곳은 계절에 관계 없이 10°C 이하로 유지되므로 에코리움에서 가장 시원한 곳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겨울보다 여름에 인기가 많다.
극지관에서 볼 수 있는 펭귄들은 일본 나고야시에서 기증받은 것이다. 에코리움 극지관은 남극을 재현하면서 세종기지의 느낌을 살리고자 일본 ‘나고야항 수족관’에 젠투 펭귄과 친스트랩 펭귄을 분양해 줄 것을 요청했다. 이들 펭귄이 사는 곳이 세종기지 부근이었기 때문이다.
나고야시 측은 기꺼이 젠투 펭귄 6마리와 친스트랩 펭귄 5마리의 반출을 허락했다. 나고야시가 세계적으로도 희귀종인 이들 펭귄을 내준 것은 한국 국립생태원의 역할을 인정하고 격려하는 의미가 크다.
그밖에 국립생태원 외곽에는 ‘제인구달길’ ‘다윈·그랜트길’ ‘소로우길’ 같은 생태학자의 이름을 딴 산책로가 자리 잡고 있다. 상대적으로 한산하므로 호젓하니 산책을 즐기기 좋은 곳이다.
겨울철 보양을 책임지는 물메기탕
충남 서천 홍원항은 사계절 내내 다양한 수산물로써 방문객의 입맛을 유혹한다. 한바탕 전어 바람이 몰아치고 나면 조용히 물메기 계절이 돌아온다.
11월부터 3월까지 즐길 수 있는 이 생선은, 과거에는 못났다 하여 잡히는 대로 바다에 휙 던져졌는데 이때 ‘텀벙’하는 소리가 나므로 물텀벙이라는 별명을 얻었다고 한다.
물메기는 빨리 자라는 만큼 몸태가 야물딱지지 못하고 흐물흐물하지만 지방이 적고 단백질·칼슘·비타민B가 풍부해 해장음식으로 제격이다. 또한 껍질과 뼈에 든 점액 성분은 관절과 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씹는 건지 마시는 건지 모르게 목구멍을 부드럽게 타고 넘어가는 물메기의 육질은 일반 생선과 느낌이 아주 다르다. 물메기탕은 홍원항 일대 식당에서 맛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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