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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런던증시에서 상장사 이탈 규모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대라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15일(현지시간) 추정 보도했다. 런던증권거래소그룹(LSEG)에 따르면 올해 런던증시에서 상장 폐지되거나 다른 곳으로 옮긴 기업이 88개인 반면 신규 상장은 18곳에 그쳤다. 기업공개(IPO)가 줄고 사모펀드의 상장사 인수는 늘면서 2009년 이후 15년 만에 상장사 숫자 순감 ‘최다’, 신규 상장 ‘최소’를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7월 출범한 노동당 정부의 규제완화 등 자본 유인 노력도 ‘대탈출’을 막지 못했다.
기업 친화적인 곳에 돈이 몰리고 투자가 이뤄지기 마련이다. ‘자본 이탈’이란 한마디로 기업하기 어려운 곳이라고 판단됐다는 뜻이다. 지난 수십년 복지 위주의 사회민주주의를 내세운 정당들이 지배하면서 영국 등 유럽 주요국들엔 기업하기 어려운 풍토가 자리잡았다. 세금뿐만 아니라 ESG(환경·사회적책임·지배구조)와 DEI(다양성·평등성·포용성) 등 규제는 갈수록 다채롭고 촘촘해졌다. 주식시장에 기댄 미국과 달리, 담보를 잡혀 심사 끝에 은행 대출을 받아야 하는 자본 조달 방식 또한 옛날 그대로다.
무엇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서유럽의 부흥과 번영을 지탱한 두 축이 사라진 게 결정적이다. 우크라이나전쟁으로 인해 값싼 러시아산 에너지가 끊켜 타격이 큰 마당에 방위비 부담까지 크게 늘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를 사실상 짊어져 온 것이나 다름 없던 미국의 기존 역할을 더 이상 기대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시가총액 230억 파운드(약 41조7000억 원)의 장비 렌털기업 애슈테드가 이달 런던증시에서 뉴욕증시로 이전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2020년 이래 런던증시의 대표 주가지수인 파이낸셜타임스 스톡익스체인지(FTSE) 100 지수 기업 중 해외 증시로 가기 위해 런던 증시를 떠나는 여섯 번째 기업이다. 이들 6개 기업의 시가총액을 합치면 13일 기준 2800억 파운드(507조 원), FTSE 100 기업 전체 시총의 14%에 달한다.
시총 390억 파운드(70조7000억 원)의 도박업체 플러터와 440억 파운드(79조7000억 원)의 건축자재업체 CRH가 지난 1년 반 사이 뉴욕증시로 옮겼다. 다양한 투자자나 유동성 향상에 대한 기대 때문이라고 한다. 에너지·광업 등 기존 경제부문 중심인 FTSE 100 지수가 올해 약 8% 오른 데 비해 빅테크 기업이 급성장 중인 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 지수는 27%나 상승했다. 영업이익의 98%가 미국에서 나오는 애슈테드처럼 증시 이전의 주요 배경이 북미 사업 성장세인 경우도 있다.
작년 미 동종업계 상장사 대비 평가가치·매출 비중·북미 주주 비율 등을 바탕으로 한 FT 분석은 대형 상장사 18개가 런던증시를 빠져나갈 가능성을 내다봤다. 그 중 광산업체 리오틴토·브리티시아메리칸타바코(BAT)엔 각각 호주·미국 증시로 주력 증시를 옮기라는 투자자들 압박이 가해지고 있다. 골드만삭스 13일자 보고서에선 “점점 더 많은 영국 기업이 미국으로 상장 이전을 고려 중”이라며 “영국과 미국의 평가가치 격차가 점점 더 벌어진다”고 지적됐다. FTSE 100 기업 중 한 곳의 최고경영자는 애슈테드 이전 발표 후 “아주 슬픈 일”이라며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의 ‘미국 우선주의’가 런던 상장 폐지나 이전을 가속화할 것 같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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