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路 동서고금 <39> 영장·영장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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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명신 필진페이지 + 입력 2025-01-10 06:30:27

영장(令狀)이라는 말은 인간의 신체·소유의 자유가 확립되면서 용어로 자리잡았다. 체포하거나 압수·수색할 때 반드시 법관의 사전 허가를 얻은 영장을 제시하도록 한 것을 영장주의라 한다. 영미법에서 유래한 이들 개념(warrant·writ)을 19세기 일본인들이 ‘영장’(문서로 된 명령)으로 번역했으며 일본 식민지였던 우리나라·대만에서도 쓰게 되었다.

반면 중국에선 영장 외에 통지서·명령장·서면명령 등의 표현을 두루 쓴다. 그것의 민감성을 분명히 인식할 기회, 즉 시민사회를 거치지 못했기에 딱 떨어진 한 단어로 통용되는 역사적 과정을 거치지 못한 것이다. 한국의 경우 징집영장 이외의 사법적 영장이 대체로 낯설었던 사람들까지 이번 탄핵 정국 덕분에 많은 것을 알게 됐다. 대통령 관저 주위를 연일 평범한 시민들이 밤새 지키는 이유다.

중화권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그날밤 몇 시간 사태 정도로 계엄이면 우리 중국은 상시 계엄인 셈”이라고 깨달음을 표출한 댓글이 달리는 가운데, 한국인들 사이에선 계엄 불가피성에 대한 공감도가 높아졌다. 대통령의 헌법적 고유 권한 행사를 다짜고짜 내란죄로 규정·동조한 여야 정치권, 해당 죄목 수사권도 없으면서 대통령 체포에 나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사법부 특정 세력과의 교감 속에 영장이 발부된 사실, 심지어 영장 판사가 법률의 예외적 적용을 언급하며 국가보안 시설인 대통령 관저 진입을 허락한 것 등이 얼마나 부당하고 초법적·위헌적인지 인지한 것이다.

영장이란 긴 세월 우여곡절 끝에 얻어진 문명사의 자산이다. 1215년 영국 대헌장(마그나 카르타) 선포 때 특권층에 한정됐던 ‘인신의 임의구속 금지’가 명예혁명의 성과인 ‘권리장전’(1689) 선포 이후 모두에게 보장된다. 압수·수색 영장 역사도 사연이 많다. 수색 장소·대상을 특정하지 않은 ‘일반영장’ 문제가 1763년 영국 언론인·하원의원 존 와이크 사건을 계기로 불거졌다. 와이크는 조지3세를 비판한 익명 기사의 주인공임이 밝혀져 선동적 문서비방죄로 유죄판결을 받자 자택을 압수수색한 집행관리자들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국무대신) 수색영장을 집행한 것이니 적법’ ‘영장 자체가 무효’ 주장이 맞섰으며 와이크 측은 수색 장소·대상을 특정한 영장이어야만 한다는 논리로 소송에서 이겼다. 치안판사가 발부한 것이어야 한다는 원칙이 정립된 것은 1765년의 일이며 훗날 미국 수정헌법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1791년 미 수정헌법 10개 조항 채택 당시 제4조는 ‘일반영장 금지’ ‘중립적·독립적 치안판사가 발부한 영장일 것’을 명시하며, 영장 발부에 ‘합리성’ ‘상당한 이유’와 압수수색 대상 및 내용이 막연해선 안 된다는 ‘특정성’을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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