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문형의 만사만감(萬事萬感)] 인간이 때론 실리보다 평판에 집중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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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렵채집민의 뿔닭 잡기와 기린 사냥의 비밀

최문형 필진페이지 + 입력 2025-01-10 06:30:34

문화인류학자들은 수렵채집사회에 관심이 많다. 진화의 역사 속에서 이 시기가 차지하는 비율이 90% 이상이기 때문이다. 현대인들의 공동체 관습이나 의례·개개인의 사고방식이나 행동을 이해하려면 시공간 이동을 하는 것이 유리하다. 머릿속에서 우리가 거추장스럽게 입은 대부분의 옷을 벗고 최소한의 가릴 것만 착용한 후 숲속 허름한 가옥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이다.

물론 주변에는 각종 동물이 도사리고 있다. 그중에는 우리의 생명을 노리는 놈들도 물론 있다. 야생의 환경에서 인류의 조상이 어떻게 지냈는지를 유추하는 것이 쉽지는 않은지라 학자들은 실제로 수렵채집사회로 들어간다.

아프리카 탄자니아의 사바나 지역에 거주하는 하드자족의 생활 또한 궁금증 많은 학자들의 연구 대상이 되었다. 그들은 농업에 종사하기도 하지만 아직까지 사냥을 하고 채소나 과일·벌꿀을 채집하는 전통적 생활에 더 많이 의존한다. 여성들은 쿵족 여성들처럼 덩이줄기나 과일을 채집하거나 사냥하러 나간 남자들이 알려 주는 야생 벌집의 꿀을 모은다. 반면 남자들은 쿵족과는 달리 활과 화살을 들고 큰 짐승을 잡으러 떠난다. 운 좋게 기린 한 마리를 잡아 오기도 하는데 덩치 큰 기린 고기는 한 가족이 먹을 수 없는 양이므로 이웃에게 나누어 주어야 한다. 뜨거운 아프리카 기후에서 고기를 저장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하드자족이 사는 지역에는 뿔닭이 많았다. 덫만 놓으면 뿔닭이 잘 잡혀서 큰 고기는 아니지만 한 가족이 배를 불리기에는 충분했다. 가장이 굳이 몇 달이 걸리는 사냥길에 오르지 않아도 되는 안정적인 단백질 공급원이었다. 하지만 하드자족 남자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익으로 치면 큰 동물 사냥은 그다지 득볼 것이 없다. 기린 같은 큰 동물을 잡아 온다 해도 고기의 거의 전부는 이웃에게 돌아간다. 오히려 집 안에서 느긋하게 기다리면 이웃 남자가 사냥해 온 고기를 먹을 수 있다.

그럼에도 남자들은 기를 쓰고 길고 긴 사냥길에 올랐다. 획득한 고기의 분배 과정은 사냥꾼에게는 매우 불공정하다. 기린을 사냥한 사람이 먼저 자기 몫의 고기를 충분히 가져가고 나면 부족의 이웃이 알아서 나머지 고기를 베어 간다. 사냥한 사람은 나머지 고기의 배분에 대해 아무 관여를 하지 않는다. 고기는 그렇게 공동의 소유가 된다.

그렇다면 사냥꾼에게 돌아오는 것은 무엇일까. 사냥을 잘하는 하드자족 남자는 많은 고기 대신 사회적 보상을 받게 된다. 그의 훌륭한 사냥 솜씨는 다른 남자들의 부러움을 사고 무엇보다도 많은 여성의 존경과 찬탄을 한 몸에 누린다. 훌륭한 사냥꾼일수록 혼외관계를 가질 확률이 높아진다. 그는 엄청난 양의 고기를 좋은 평판과 유전자의 확장으로 돌려받는다.

수렵채집사회의 사람들이 어리석다고 생각하면 오판이다. 그들의 뇌는 현대인의 뇌와 그리 다르지 않다. 사냥과 음식 나누기는 아사할 위험을 감소시키고 모두에게 이득이 된다. 수렵채집민이 농경인에 비해 일하는 시간이 훨씬 적고 무언가를 남겨서 쌓아 두는 일, 즉 재산과 부에 큰 관심이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평등주의 사회에서 지나친 축재는 나눔 행위를 거부하는 것이 된다. 따라서 개인적 축재를 자제하고 이웃과 나눔으로써 모두에게 도움이 되도록 행동하는 것이다. 그들은 각자의 욕망에 따라 필요한 만큼 일하지만 남들로부터 질시받는 위험을 줄이기 위해 절제할 줄 안다.

밴쿠버섬의 콰키우틀 부족은 한 술 더 뜬다. 그들은 물고기·해달 가죽·카누·담요 같은 상대에게 귀한 것들을 선물하기를 즐긴다. 이것들은 매우 소중한 재산이다. 극단으로 치달으면 이웃이 보는 앞에서 자신의 재산을 불태우기도 한다. 한 파티에서 집주인이 값비싼 담요와 카누에 불을 붙였는데 손님 한 사람이 불을 끄려고 하자 집주인은 경쟁적으로 불길 위에 양초와 생선기름을 퍼부었다.

손님들은 타오르는 불길로 살갗이 부르트는 고통을 겪으며 아무 일 없는 것처럼 앉아 있어야 했다. 그것이 집주인을 대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파티 주최자는 집을 홀랑 불태움으로써 이웃에 대한 자신의 헌신을 입증하기도 한다. 허세적인 호의 베풀기의 일종인 이 ‘포틀래치’ 관습은 뉴기니를 비롯한 세계 여러 지역에서 발견되었으며 북서부 태평양 연안 아메리카 인디언 사이에서 19세기까지 전해 왔다고 한다.

포틀래치를 통해 사람들은 손상되기 쉬운 재화를 태워서 영속적인 ‘평판’을 획득한다. 기린 고기 나누기와 포틀래치 관습은 호의에 보답하려는 불가항력의 유혹이 인간에게 존재한다는 사실에 기반한다. 현대인인 우리 또한 거저 주어지는 선물에 주의해야 한다. 무절제하고 관대한 선물은 무서운 무기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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