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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통령 집무실의 소소한 변화도 정권 교체의 한 상징이다. 20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과 함께 백악관 오벌오피스에 뉴딜정책의 주역이자 유일한 4선 대통령인 프랭클린 루스벨트(1882~1945) 대신 제7대 대통령 앤드루 잭슨(1726~1845)의 초상화가 걸렸다. 4년 만의 귀환이다. 다만 미 해군사관학교에서 대여해 온 첫 임기 때 것과 다른, 백악관 소장품의 하나라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전했다.
집무실 새 단장은 보통 취임식 당일 오전 몇 시간 동안 이뤄진다. 이날도 조 바이든이 현직 대통령으로서 백악관 건물 안에 있고 트럼프 취임식이 진행되는 동안 마무리됐다. 집무실에 다시 등장한 것은 잭슨 전 대통령 초상화뿐만이 아니다. 2021년 바이든 취임시 대통령 집무실에서 사라졌던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의 흉상, 다이어트 콜라 애호가 트럼프를 위한 책상 위 ‘콜라 (요청) 버튼’, 로널드 레이건 시절 것이라는 대통령 전용책상 밑 카펫도 되돌아왔다.
워싱턴포스트(WP)가 “역대 대통령들이 추구하는 가치와 행정부의 정책목표를 상징한 예술품·유물을 골라 집무실을 개인화하는 경향이 있다”며 “새 대통령 취임 때마다 새로 꾸며진 집무실은 정권교체를 상기시킨다”고 논평했다. 트럼프1기 취임 첫 해인 2017년 4월 그는 폭스TV ‘폭스 앤 프렌즈’ 진행자들에게 집무실을 안내하면서 “사람들이 나와 잭슨 대통령 사이에 많은 공통점을 느낀다고들 한다”고 소개한 바 있다.
동부 출신 귀족 후예 내지 엘리트였던 이전 대통령들과 달리 잭슨은 스코틀랜드·아일랜드 이민자의 아들이며 서부 개척민 출신의 부자이자 ‘평민을 업은 대통령’ ‘워싱턴DC의 기존 질서를 뒤집은 이단아’였다. 미 대통령사(史) 전문가 리처드 노튼 스미스에 따르면 “미국 정치란 잊혀진(무시된) 자들의 충성을 얻는 것”으로 “1930년대 (뉴딜정책의) 루즈벨트, 1960년대 리처드 닉슨이 그렇게 했지만 이들보다 앞서 앤드류 잭슨이 있었다”고 짚었다. 21세기엔 트럼프가 이런 흐름을 주도한다. 사실상 서민·중산층 부흥 프로젝트인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의 내용이 바로 그것이다.
19세기 중반엔 연방정부에 대항해 각 주의 권리·권한을 신장하는 게 민주주의였으며 그 선봉에 잭슨이 있었다. 그의 주장은 국민주권주의 및 주권(州權)론으로 요약된다. 트럼프 첫 임기 초기 WP는 트럼프가 잭슨을 자신의 영웅이라고 말했다며 탄신250주년을 기념하러 잭슨의 고향 테네시까지 간 것을 보도하기도 했다. 당시부터 ‘백인 노동계층의 좌절과 분노를 대변한 부호’였다는 트럼프와 잭슨의 유사점이 자주 언급됐다.
잭슨은 ‘보통 사람들의 시대’ 슬로건을 내걸고 엘리트층에 맞서 중·하류층의 지지를 받으며 이들이 정치·사회적 발언권을 강화시키도록 도운 첫 대통령이다. 실제 그의 취임식에 노동계층 사람들이 대거 몰렸다. 국회의사당 계단에서 취임식을 마친 후 펜실베이니아 애브뉴를 거쳐 백악관까지 수천 관중과 도보로 이동하는 관행이 이때 생겼는데, 최초 퍼레이드에선 사람들이 너무 많아 엄청난 혼란을 빚었다.
잭슨은 독립전쟁의 영웅이자 20달러 지폐의 인물이기도 하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잭슨을 지폐에서 빼고 여성 노예폐지론자·인권운동가 해리엇 터브먼(1822~1913)을 넣으려 하자 트럼프가 “온전히 정치적올바름(PC)”이라고 꼬집었다. 레이건 등 집무실에 잭슨 초상화를 건 대통령이 여럿 있었지만 트럼프가 유독 잭슨에 애정을 드러냈다. 근년 잭슨을 인종주의자로 몰아 트럼프의 반(反)이민정책 기조와 연결짓는 국내외 주류 언론 논조란 트럼프 악마화의 연장으로 판단된다. ‘미 대통령들 중 평가가 가장 엇갈리는 잭슨’ 식 언급도 중요한 측면을 놓치게 만들기 쉽다.
지난 20여년 ‘비판적 인종이론’이 득세해 ‘원주민 강제이주 정책’ 관련해 부정적 기술이 늘어나면서 잭슨의 현 이미지가 형성됐다. 비판적 인종이론 영향이 적었던 2003년 미국사연구 제17집 논문(‘앤드류 잭슨의 국민중심주의와 주권州權론’ 양홍석) 등을 보면 긍정적 측면이 훨씬 우세하다. 트럼프가 그를 흠모하는 이유도 자명해 보인다. 원주민 정책 또한 당대적 관점에서 우선 살펴야 할 것이다. 논문에 따르면 잭슨이 성공한 농장주이긴 했으나 인종주의자는 아니었으며 원주민 정책 역시 당시 이주민과의 평화 공존을 위한 방안으로 진행됐고 받아들여졌다.
지구촌 어느 나라도 미국과의 관계에 무심할 수 없으며 대미외교를 위해 미국사 이해는 그 첫걸음이다. 미 건국 초기 연방주의자당에 맞서 민주공화당이 등장했다가 1828년 잭슨이 탈당해 새로 만든 게 민주당이다. 그래서 민주당 창당일을 ‘잭슨의 날’이라 하지만 현 민주당은 잭슨과 거리를 두려 애쓴다. 흑인노예를 보유한 농장주 잭슨이 민주당, 노예해방운동을 이끈 에이브라함 링컨은 공화당 소속이었듯 양당의 기조와 체질은 크게 변해 있다. 이젠 트럼프의 공화당이 서민·중산층을 위한 정당이다.
19세기까지만 해도 동·서보다 북부(양키)·남부(딕시) 성향차가 컸다. 오늘날 공화당이 지배적인 텍사스 등 남부 주들은 옛날에 대다수 민주당 지역이었으며 민주당이 소수자·약자 배려를 내세운 입장을 가지게 된 지는 100년 남짓이다. 대선 후보 지명이 비밀간부회의에 가까운 당대회(caucus)에서 이뤄지다 국민전당대회(national convention)를 통하게 된 것, 부패·비리를 막고자 ‘직책 순환’을 시행한 것도 잭슨이다.
이런 1830년대 개혁을 흔히 ‘잭슨 민주주의’로 부르지만 오늘날엔 잭슨에게서 ‘자유 우파 공화주의’를 발견하는 사람들이 많다. 잭슨은 정치 분야에서 국민의 목소리를 충족시키기 위해 연방에 대한 주의 권리를 지키는 것이 필수불가결한 전제 조건이라고 생각했다. 잭슨의 임기를 거치며 연방의 권한이 약해졌고 주 권력은 강화돼 오늘날 같은 미국이 된 것이다. 각 주가 너무 강해진 것도 문제이긴 하지만 그 시절엔 ‘자립적인 주 중심의 공화국 공동체 건설’이 시대정신이며 잭슨의 신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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