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벌써 넉 달이다. 캄캄한 어둠이 밤이나 낮이나 그칠 줄 모르고 뒤덮었다. 어둠의 지배, 부정의 향연, 거짓 네트워크의 축제였다. 빛은 과연 살아있는지, 어디에 숨었는지, 무엇을 기다리는지 알 수 없는 긴 시간이었다.
진실이 어둠에 가려 고통스러운 나날들이었다. 그날 밤, 나는 계엄령 포고 소식을 접하고 곧바로 국회의사당 앞으로 달려갔다. 사실을, 진실을 알고 싶었다. 담장 따라 경찰 차량들이 서 있었다. 정문 앞에는 사람들이 있었다. 방송사 취재 차량도, 유튜버들도 왔다. 총을 든 군인들, 장갑차나 탱크는 없었다. 어떤 사람들은 국회에 신분증을 내밀고 들어갈 수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약 3백 명 미만의 군인들만이 국회의사당에 진입해 있었다. 한 입으로 여러 말하는 국정원 과 특전사의 높은 분들 말과는 달리 빈 총만 휴대한 군인들이었다. 군인들은 국회보다 선거관리위원회 산하 시설들에 더 많이 투입되었다. 이는 부정선거를 밝히려는 계엄의 목적을 내비치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사실들은 MBC, JTBC 등이 홍수같이 쏟아내는 ‘가짜뉴스’들에 뒤덮여 버렸다.
진실이 거짓에 가려졌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했는데, 어둠이 빛을 짓밟고 섰다. 나는 이 모든 찬란한 거짓을 하나라도 놓쳐서는 안 될 것 같았다. 시간을 들여 뉴스와 유튜브를 대조했다. 광화문 앞과 동화면세점 앞 세종로를 직접 찾아갔다. 한남동 관저 앞과 서울구치소 앞에서 죄인 아닌 죄인이 되어, 어둠이 빛을 이긴 우스꽝스럽고도 참담한 현실을 두 눈 똑똑히 뜨고 지켜보았다. 광장과 거리에 흘러넘치는 안타까움·분노·사랑으로 처절한 외로움을 보상받았다.
‘지금·이곳’에는 거대한 네트워크가 작동하고 있었다. 대통령에 맞서 반기를 들고, 전광석화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인 검찰·경찰·공수처는 괴물의 삼지창이었다. 두 손 맞잡은 거대 야당과 어떤 ‘여당’은 괴물의 주된 서식처였다. 괴물의 바람에 맞게 모든 뉴스들을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처럼 잘라내고 늘이는 언론들은 괴물의 가위손이었다. 무수한 깃발들을 들고 나타난 단체들은 괴물의 머리칼, 유토피아적 구호로 디스토피아적 현실을 가린 허무한 이념이었다.
이 모든 것은 이 사회를 그물처럼 엮어 한 방향으로 끌고 가는 괴물의 존재를 드러냈다. 평소 같으면 단지 스멀거리는 그림자만을, 휘감기는 망토 자락의 회오리 바람만을 남겼을 괴물이 절체절명의 ‘순간’이기에 수면 위로 그 무서운 형상을 나타냈다. 물 밑에서, 그늘 속에서, 오래도록 커 온, 때를 기다린 괴물 네트워크의 형상은 무서웠다. 저항하는 이들의 좌표를 찍고, 지목하고, 미치광이로, ‘극우’로 몰아가고, SNS를 검열하고, 다른 목소리 내는 신문에 재갈을 물리고, 유튜브 채널들의 생사를 결정하고, 사법적 처단의 공포를 선사하는 괴물의 가공할 힘! 바야흐로 종이칼과 방탄복의 ‘신공포정치’ ‘신전체주의’가 목전에 바싹 다가섰다.
잊어버릴 수 없는 또 다른 장면들. 선결제 쿠폰들을 들고 시민들을 광장으로 불러내던 사이렌(siren)들. ‘휘감는 자, 옴짝달싹 못하게 얽어매는 자’들. 감미로운 목소리로 시민들을 자기들 사는 한반도, 그 남쪽 ‘섬’으로 유혹하는 자들, 광대의·코미디언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자들. 그러면서 태평양 너머 아메리카를 오가는 자유와 풍요를 탐내는 자들. 그네들은 지금 다 어디로 갔는가?
펜을 쥔 이들은 무기력하고 가장 늦고 착란증에마저 걸려 있었다. 가장 늦게 도달하면서 가장 먼저 가는 줄 아는 이들. 검은 펜을 들고 붉은 펜을, 흰 펜을, 파란 펜을, ‘레인보우빛’ 펜을 든 것으로 아는 이들. 그 ‘요원’ 님의 지렁이 메모 같은, 알 수 없는 ‘횡설수설’을 적어놓은 펜들.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데, 칼을 쥐고 흔드는 자들의 네트워크의 깃발이 ‘되기’를 꿈꾸는 이들. 펜이 칼이 되기를 꿈꾸며 좌표를 찍고 지목하는 이들.
들뢰즈의 ‘되기’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가장 먼 왼쪽으로 가며 가장 먼 오른쪽으로 간다고 비난하는 이들. 음모보다 음모론이 코로나 델타 바이러스보다 무서운 이들. 투표함에서 쏟아져 나온 빳빳한 신권 지폐 다발보다 벽돌보다 ‘줄줄이 사탕’보다 음모론이 호환보다 무서운 이들.
삶은 참 신비롭다. 어떻게 이 모든 어둠 속에서 빛이 솟아날 수 있었을까. 이 모든 것은 운명이었던가. 받아들일 수 있는 또 하나의 역사적 우연이었던가. 그의 헌신과 희생뿐이었던가? 광장과 거리의 뜨거운 사람들의 땀과 피, 그것‘뿐’이었던가.
빛을 위한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빛이 어둠을 이길 수 있음을 알았으므로 이제 또 이 삶을 살아갈 수 있다. 고통스럽고, 두려운, 처절하도록 외로운 이 삶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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