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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친구와 산책을 하며 담소를 나누던 볼테르는 정면에서 걸어오는 신부에게 인사를 건네려 고개를 들었다. 교회에 대한 볼테르의 반감을 알고 있던 친구는 깜짝 놀라 “자네 신과 화해했나?”라고 물었다. “오, 아닐세! 우리는 서로 인사는 하지만 말은 하지 않는다네!” 볼테르의 대답이었다. 이 일화는 볼테르와 종교 사이의 모호한 관계를 드러내 준다.
볼테르가 죽기 직전 머문 곳은 파리 친구 빌레트 후작의 집이었다. 페르네이에서 몹시도 바쁜 삶을 살던 볼테르는 그의 마지막 비극 ‘이렌(Irène)’ 공연을 보러 상경했다. 이 연극은 성공적이었고 군중의 환호와 갈채가 쏟아졌다. 하지만 그 영광이 채 가시기도 전 노 철학자는 저승사자의 부름을 받아야 했다. 1778년 5월30일, 그의 나이 83세였다.
파리의 어느 교회도 그의 번거로운 시신을 원치 않았다. 빌레트는 친구의 장례식을 어떻게 치러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결국 그는 볼테르의 조카 미노 신부를 불러 상의해야 했다. 조카는 파리의 교구 사제가 삼촌의 장례식을 우아하게 치르는 대신 동네 웅덩이에 그의 유해를 던져 썩게 할 것이라 판단했다. 따라서 그는 수도사들이 종교 의식을 베풀어 삼촌의 장례식을 치러 줄 만한 곳을 찾아야 했다. 그래서 결국 자신이 수도원장으로 있는 트로이 근처의 셀리에르 수도원으로 삼촌을 모시기로 결정했다. 이는 볼테르가 죽기 며칠 전에 소원한 것이기도 했다.
다행히 볼테르가 죽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빌레트 후작과 미노 신부는 예기치 않은 여행을 떠나게 됐다고 측근들을 속이고 볼테르의 시신을 마차에 실어 나르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셀리에르 수도원까지 이동하기 위해서는 볼테르의 유해를 방부처리 해야 했다. 이 작업을 진행하기 위해 미노 신부는 친척이자 의사인 미투아르를 긴급히 호출했다.
미노는 미투아르에게 삼촌의 뇌를 추출해 달라고 부탁했다. 추출된 볼테르의 뇌는 알코올에 소독돼 봉합됐다. 볼테르의 심장도 도려내 같은 작업이 진행됐다. 이 끔찍한 추출 작업이 완료된 후 작은 띠로 볼테르의 몸을 둘러싸 미라로 만들고, 이 작업이 끝나자 의심을 사지 않도록 가발을 씌워 마차에 조심스럽게 앉혔다.
한밤중 마차는 파리를 떠나 전속력으로 질주했다. 다음 날인 6월1일 이들은 셀리에르 수도원에 도착했다. 이 수도원의 몇몇 수도사들은 볼테르를 품위 있게 묻기로 미노 신부와 합의했다. 그러나 장례식 날 갑자기 하늘이 흐려지고 천둥이 울리고 바람이 교회로 달려들어 문을 열어젖혔다. 촛불이 모두 꺼지며 볼테르의 시신이 바닥에 굴러떨어졌고 불덩이가 수도원 주변의 잔디를 가로질러 달렸다. 이 질풍노도의 시간이 지나자 수도사들은 노 철학자의 시신을 숙연히 들어 올려 지위에 걸맞은 장례식을 치렀다. 종교적 장례식에 대한 교회 당국의 반대 때문에 볼테르의 죽음은 철저히 비밀로 유지됐다.
볼테르가 극비리에 묻힌 곳은 세상의 끝자락에 위치했다. 그곳으로 이어지는 돌길의 맨 처음에 있는 표지판엔 그곳으로 모험을 떠나려는 불행한 사람들에게 미리 경고라도 하듯 엄중한 문구가 쓰여 있다. ‘Voie sans issue(막다른 골목).’
로밀리와 콩플랑 쉬르 센의 중간에 위치한 셀리에르 수도원은 1167년에 설립됐다. 이곳은 1778년 볼테르의 유해를 맞이하면서 유명해졌다. 많은 방문객이 이 위인을 기리기 위해 그의 묘역을 방문했다. 그러나 1790년, 혁명이 일어나고 수도원이 매각되자 프랑스 의회는 그 이듬해 볼테르의 유해를 팡테옹으로 옮길 때까지 로밀리 쉬르 센의 교회로 옮겼다.
그의 유해가 트로이를 거쳐 파리로 이송되는 데는 5일이 걸렸다. 이때 일부 고약한 사람들이 볼테르의 유골에서 발가락과 치아 두 개를 훔쳤다. 하지만 볼테르의 고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1814년 왕당파 광신도 특공대가 그의 무덤에 침입해 시신을 훔쳐갔다. 약 50년 후, 범인 중 한 명이 임종 직전 자백한 덕분에 마침내 시신은 생석회를 묻힌 채 옛 베르시 묘지에 안장됐다.
볼테르의 뇌는 그것을 추출한 의사 미투아르의 가문에서 대대로 보존해 왔지만 1875년 경매에서 팔렸다고 전해진다. 추출된 그의 심장은 약 20년 동안 철학자가 말년을 보낸 페르네이 성의 성소로 개조된 방에 보관됐다. 그후 1864년 파리로 돌아와 국립도서관 리슐리외 부지로 옮겨졌다. 그 이후로 프랑스 국립도서관의 명예의 방에 있는 조각가 우동(Houdon)이 만든 석고상에 보관됐다.
요약하자면, 볼테르의 시신은 미라가 되고, 해골이 되고, 심장은 박탈되고, 발가락과 이빨 두 개가 빠진 채 파리에서 트로이로, 트로이에서 팡테옹으로, 팡테옹에서 베르시로 옮겨졌다. 볼테르의 죽음이 적어도 그의 삶만큼이나 바빴음을 알 수 있다.
분주했던 노 철학자가 13년간 지긋이 영면했던 셀리에르. 이곳은 알프스 쥐라의 와인 재배 집성촌이다. 알프스 근처의 수많은 길과 도로가 이곳을 지나며 아름다운 포도밭 풍경을 선사한다. 또한 셀리에르는 연못과 숲이 펼쳐진 땅으로 이어진다. 촉촉하고 야생적인 이 지역은 산책객들에게 신비롭고 때 묻지 않은 곳으로 알려졌다. 페르네이 성에서 포도밭을 가꿨던 볼테르가 이곳에 묻혔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던 것 같다. 오늘날 아루아의 ‘A’와 볼테르의 ‘V’가 서로 얽혀 있는 묘비만이 볼테르가 이곳을 제2의 고향으로 삼았다는 사실을 증명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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