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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8·15광복 이후 정부 수립, 6·25전쟁과 빛나는 산업화 시기를 거쳐 대한민국은 오늘에 이르렀다. 격동의 한반도, 美CIA 요원으로 그 한복판에서 활약한 마이클 이 박사의 숨 막히는 체험…. 북한 정권의 실체와 광주5·18 등 좌경 친북세력이 주도한 사건들에 관한 증언과 분석, 급변하는 국제정세의 소용돌이 속 한반도의 미래에 관한 그의 이야기들이 값지다. 이에 美연방정부 공무원으로 살아온 40년 세월을 담은 그의 저서 ‘CIA와 대한민국’을 지면에 연재한다.
금가마를 탄 사내
사람의 평생 길흉화복을 점치는 사주 명리학에 금여록이라는 게 있다. 남자의 사주에 금여록이 들어 있으면 인물이 좋고 주위의 부러움을 살 정도로 처복이 있으며 성품이 온화하다고 한다. 게다가 인덕이 있어 공직에 나아가도 크게 출세할 수 있다 하니 길신(吉神) 중의 길신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북한에 이 모든 조건을 갖춘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바로 장성택이다.
장성택은 김일성의 사위이자 북한의 2대 최고지도자 김정일의 매제, 3대 최고지도자 김정은의 고모부였다. 이 특별한 신분은 김경희라는 여자를 만나 결혼함으로써 가지게 된 것이니 그야말로 금가마를 타고 장가를 간 셈이었다.
1946년 함경북도 청진시에서 태어난 그는 아버지가 항일 운동을 한 경력이 인정되어 김일성종합대학 정치경제학부에 입학할 수 있었다. 대학 졸업 후에는 모스크바에서 유학하는 등 엘리트 코스를 밟은 그는 젊은 시절 키가 크고 인물도 좋았다고 한다. 이는 북한에 납치되었던 신상옥·최은희 부부도 이야기한 바 있다. 김경희와는 김일성대학 동급생으로 만났는데 한눈에 장성택에게 반한 김경희가 적극적으로 아버지 김일성과 오빠 김정일을 설득해 결국 결혼에 성공한다.
이후 몇 번의 시련을 극복하고 마약 밀매 등 외화벌이를 담당해 신임을 얻으며 김정일의 최측근이 되어 김정일이 사망한 후에는 김정은은 얼굴 마담 역할을 하고 실제로는 장성택이 정권을 주도할 거라는 소문이 나돌았을 정도로 권력의 핵심에 있는 실세 중의 실세였다.
장성택의 꿈과 오판
2002년 10월26일부터 11월3일까지 8박9일의 일정으로 18명의 북한 경제시찰단이 대한민국을 다녀갔다. 시찰단은 국가계획위원회 위원장 박남기를 단장으로 해서 개혁 성향의 장성택과 화학공업상 박봉주가 끼어 있었다.
당시 이들은 무엇보다 대한민국의 놀라운 경제 발전상을 직접 목격하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북한에도 개방경제 정책을 도입해야 할 필요성을 절감했지만 아무도 감히 그런 생각을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모두 살기 위해 몸을 사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김정일의 시대가 가고 나이 어린 김정은이 권력을 승계하자 서서히 자신들의 꿈을 실현할 기회를 노리기 시작했다.
그런 와중에 장성택이 순진하게 조카에 대한 자신의 영향력만 믿고 ‘수령 경제’의 비중을 내각 중심의 ‘민생경제’로 전환하려는 시도를 한 것이다. 물론 그러한 시도는 아주 조심스럽게 이루어졌다. 먼저 그는 대한민국에 경제시찰단으로 함께 갔던 박봉주를 내각 총리에 앉혔다. 체제에 도전하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 범위 내에서 소위 ‘연식 개혁’을 진행하려고 한 것이다.
그러나 장성택은 이 과정에서 결정적으로 한 가지를 오판했다. 북한에서는 ‘수령 절대주의’와 그를 옹위하는 세력이 존재하는 한 그 어떤 형태의 경제개혁도 불가능하며, 경제개혁 그 자체가 체제에 대한 도전인 것을 계산하지 못한 것이다. 경제개혁은 필연적으로 38호실과 39호실의 비자금으로 조성되는 ‘수령 경제’를 잠식하기 때문이다.
북한이 살아나기 위해선 내각 중심의 경제 활동과 외화벌이가 더 활발해지고 38호실과 39호실의 외화벌이는 축소되어야 한다. 장성택이 좀 더 현명했더라면 경제개혁 이전에 체제의 목을 치는 칼을 먼저 뽑았을 것이다. 우리는 그가 북한의 고르바초프가 되기를 기대하기도 했었다.
장성택에 대한 군부의 경계
북한 정권은 다양한 용도의 비자금을 해외 은행들에 분산 비축해 놓고 관리하고 있었다. 그중 스위스 은행에 예치되어 있는 39호실 비자금은 베른에 있는 북한 대사 이철(본명 이수용)이 1987년부터 2010년까지 장장 23년간 관리해 왔다. 2008년 7월에 김정일이 뇌졸중으로 쓰러지면서 아들 김정은에게 권력 이양을 서두르고 있을 때 이철이 2010년에 평양에 돌아와서 스위스 은행의 39호실 비자금을 후계자 김정은에게 인계하는 과정에서 방만하게 분산된 비자금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마찰이 빚어졌다.
노동당 작전부를 지휘했던 오극렬 계열에서는 회수가 되었지만 중앙당의 장성택 계열이 장악한 부분에선 완전 회수가 불가능했던 것이다. 아마도 그것은 장성택이 자금 관리의 전문성을 갖추고 있었을 뿐 아니라 김경희의 입김도 크게 작용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무서운 김정일 시대는 가고 철없는 김정은의 통치 체제가 출범하면서 ‘돈 냄새’를 더 맡고 싶어 하는 군부와 노동당 일부에서 장성택의 영향력과 비자금 관리의 기득권을 시기질투 하면서 칼을 갈고 있었다.
숙청과 처형
“국가안전보위부 특별군사재판소는 피소자 장성택을 사형에 처하기로 판결하였다. 판결은 즉시 집행되었다.”
2013년 12월13일 새벽 관영 조선중앙방송의 보도 내용이었다. 이 소식은 곧바로 전 세계로 전해지며 모든 사람에게 놀라움과 충격을 안겼다. ‘설마 백두혈통의 일원이 된 가까운 친척, 그것도 손위 어른인 고모부를 죽이기까지 하겠냐’고 생각하던 사람들은 29세의 젊은 조카가 고모부를 사형시킨 잔인한 방법에 대해서도 몸서리를 쳤다. 김정은 집권 2년 만의 일이었다.
장성택이 이런 끔찍한 결말을 맞게 된 데 대해서는 여러 소문이 나돌았지만 김정일이 사망한 후 장성택이 김정은에게 권력이 이양되는 것을 보좌하는 과정에서 절대권력에 가까운 위세를 갖게 된 것이 원인이라는 게 가장 합리적인 추론일 것이다. 3대 최고지도자가 되긴 했지만 김정은은 아직 권력의 기반을 탄탄히 굳히지 못해 불안한 상태였다. 그런 김정은에게 “대안으로 김정남이 있다”는 장성택과 후진타오 중국 주석과의 밀담 내용이 전해졌으니 결말은 뻔한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스탠딩 오더
김정은은 장성택이 그토록 반대했음에도 2012년 12월 장거리유도탄 발사 시험을 했고 2013년 2월12일에는 3차 핵실험을 단행했다. 그러는 한편 이복형 김정남을 제거하기 위한 암살계획을 지시하고 수시로 김정남의 동향을 파악했다. 이른바 ‘스탠딩 오더(Standing Order·명령권자가 직접 취소하지 않는 한 계속 유지되는 절대권력자의 명령)’가 바로 그것이다.
사실 김정은은 김정남을 두려워하거나 위험인물로 생각하진 않았다. 그보다는 그의 배후를 두려워한 것이다. 김정남 자신은 정권에 대한 욕심이 없을 뿐 아니라 국내에 배후조직도, 자금도 없는 무능한 인간이었다. 그러나 장성택 처형 이후 중국과 북한의 관계는 옛날 같지 않게 되었고 북한에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중국이 ‘김정남’이란 카드를 만지작거린 것은 사실이다.
김정남 피살 사건
2017년 2월13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김정일의 장남 김정남이 피살되었다는 뉴스가 전해졌다. 이 사건으로 전 세계의 이목이 다시 한 번 북한으로 쏠렸다. 세계 각국의 언론은 그날이 가뜩이나 북한에 적극적이고 강도 높은 대응을 표방한 트럼프정부의 출범 직후, 미국을 겨냥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의 직전 단계라고 믿어지는 북극성 2호를 발사한(2017년 2월12일) 바로 다음 날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이 사건이 북한 소행이 아니라는 의견도 일부 있었지만 필자의 판단으로는 절대로 북한 김정은의 지시에 의한 것이었다. 북한이 아닌 다른 집단이나 개인이 저지른 범행이었다면 살인 무기를 사용했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김정남은 독극물에 의해 살해당했으며 이것은 전형적인 북한의 방식이다. 말레이시아 정부에서도 수사를 마무리하며 사건에 연루된 피의자 네 명이 모두 북한 국적을 갖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정리= 박혜수 편집위원
프로필
△ 美 연방정부 40년 근속
(DIA(Defense Intelligence Agency·국방정보국) 16년·CIA(중앙정보국) 24년)
△ 1976년 미국 외무고시 합격
△ 미국 조지워싱턴대학 정치학 박사
△ 美 국무성 동아시아 문제 수석연구원
△ 美 국무성 외교연수원 교수
△ 주한 미국대사관 정무관
△ CIA 한·미 안보협력 조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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