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路 동서고금 <25> 기모노·와후쿠·고후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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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명신 필진페이지 + 입력 2024-10-04 06:30:30

기모노(着物)는 일본어 동사 기루(입다)에서 유래한 명사다. 현지 전통의상을 아울러 일컫는 단어이며 ‘후리소데(振袖)’를 제일 먼저 떠올리게 된다. 소데(소매)가 발굼치에 닿을 만큼 길고 허리장식인 오비(帶)로 멋을 낸 미혼 여성의 드레스업이다. 소데·오비를 간소화한 것도 있으나 이 역시 전문가 아니면 혼자서 못 입는다. 일본엔 기모노 입혀 주는 자격증이 따로 있을 정도다.

‘하카마’란 바지 ‘고(袴)’자 표기에서 알 수 있듯 원래 남성용 의상이었으나 근대 들어 여학교 교복이 되면서 남녀공용으로 발전했다. 남녀용에 약간의 차이가 있어, 오늘날 여대생 졸업식 복장이나 결혼식 때 신랑복이 되기도 한다. 열두 겹짜리 여성 대례복인 ‘쥬니히토에(十二單衣)’는 이제 드라마 내지 왕실 행사 때 아니면 보기 힘들다. 이들 일본 전통 의상을 ‘와후쿠(和服)’로 통칭할 수 있다. ‘和’엔 일본인들의 정체성이 담겼다.

한자 ‘和’가 등장한 것은 7세기 말 이후다. 비칭 어감이 강한 기존의 ‘倭(왜)’ 대신 비슷한 발음의 좋은 글자를 취한 것이다. 와후(和風·일본풍), 와규(和牛·최고급으로 치는 일본산 쇠고기), 와카시(和菓子·전통 디저트) 등등 현대 생활어에까지 두루 들어 있다. 다만 和·倭가 외자로 쓰일 때 독법은 ‘야마토’다. 大和·大倭, 심지어 日本이라 쓰고 ‘야마토’로 읽을 수 있다. 이는 우리말의 ‘겨레’ 쯤에 해당한다. 일개 부족명이 훗날 민족의 동의어가 된 ‘겨레’처럼 ‘야마토’는 일본적인 것의 원형을 뜻한다.

‘야마토’의 옛 발음이 5세기 중국 사서에 ‘邪馬臺(야마태)’로 기록돼 있다. 일본의 인명·지명엔 일본인조차 발음기호(후리가나) 없으면 잘못 읽거나 까막눈 상태를 겪어야 할 경우가 적지 않다. 이두(吏讀)식·음독·훈독이 다 동원되는 특유의 한자 활용법 때문이다. 예를 들어 단군신화 속 ‘곰’의 옛 발음인 고유명사 ‘고마’가 있다. 일본의 동네·신사 이름에 흔한 ‘고마’를 한자로는 ‘高麗’(고려)라고 쓴다. 고마를 의역한 것이다.

한편 와후쿠의 별칭이 고후쿠(吳服)다. 고후쿠는 오나라 직조술로 짠 옷감을 뜻하다가 일본의 고급 전통의상을 가리키게 됐다. 일본과 대륙의 본격적 교류는 백제 멸망 이후지만, 삼국지연의 위·촉·오 중 가장 풍요로운 땅인 오나라(오늘날 상하이를 포함한 양자강 주변)가 오랫동안 중국 대륙의 대명사였다. 그나저나 한복을 한푸로 우기는 중국인들이 있는데 ‘오나라옷’인 고후쿠에 대해선 잠잠하다. 한반도와 일본 열도에 대한 중국인들의 심층 심리가 이토록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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