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창옥의 열사일침(烈士一鍼)] ‘한국을 위한 노아의 방주’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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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창옥 필진페이지 + 입력 2024-11-04 06:30:10

뜨겁게 달궈진 솥뚜껑에 두툼한 삼겹살이 노릇노릇 익어 가자 파란 눈의 외국인들은 입맛을 다시며 흥분했다. 알바생이 다 익었다는 신호를 하자 이미 한 손에 들고 있던 각종 양념을 듬뿍 넣은 쌈에다 두툼한 고기를 쌓아 허겁지겁 먹는다. 코리아 바비큐 맛을 본 얼굴은 환희로 가득했고 한 손으로 엄지척을 하고 인생 한 컷을 찍는다. 2023년 외국인 방문객은 총 1100만 명이다. 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삼겹살과 소갈비였다.

지옥이 따로 없었다. 판자로 벽을 덧댄 어두침침한 공간에 습기와 견딜 수 없는 악취가 진동했다. 햇빛도 들어오지 않는 그곳에 소와 돼지·염소 수백 마리가 싸 놓은 배설물은 지옥을 방불케했다. 20명의 노동자는 50일 동안 온몸에 땀과 똥을 뒤집어써 가며 묵묵히 배설물을 치웠다.

1954년 캘리포니아 오클랜드공항 비행기에 특별한 손님들이 태워졌다. 토끼 500마리와 150만 마리의 꿀벌이었다. 6·25전쟁 중 득실거리는 빈대·벼룩·파리·모기·나방 등 해충을 박멸하기 위해 미군은 비행기로 살충제 DDT를 무차별로 뿌렸다. 덕분에 해충은 사라졌지만 동시에 나비와 꿀벌까지 사라지자 식물과 꽃의 암수 교배를 위한 화분(화분)을 옮기지 못해 과일과 작물이 열매를 맺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을 파악한 교배종 전문가들의 조언을 들은 미국 정부가 꿀벌 150만 마리 수송 작전을 펼친 것이다. 당시의 비행기는 비행거리 2000~3000㎞의 중형 프로펠러기로 미국에서 한국까지 오는 동안 몇몇 중간 기착지를 경유해야 했다. 특히 비행기의 일반 고도는 8000~9000피트인데 꿀벌은 인간과 달라 컨디션을 최상으로 유지하기 위해선 절반 고도인 3000~4000피트로 비행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조종사는 3박4일 폭우와 눈·얼음 등의 악천후를 뚫고 비행해야 했다.

태평양 횡단 수송선에는 20대 청년인 전투 병력과 탱크·장갑차 등 무기와 전쟁물자가 가득했다. 또 다른 수송선에는 멋진 카우보이 모자를 쓴 목동들이 타고 있었다. 이들은 젖소·황소·돼지·염소와 함께 태워졌다. 미국 아칸소주 비영리단체인 헤퍼(Heifer International)가 지원한 가축들을 돌보기 위해 텍사스 카우보이들이 승선한 것이다.

7주간의 긴 항해동안 집채만 한 파도와 멀미에 시달리는 가축들을 돌보고, 끼니 때마다 무거운 귀리·건초더미와 물을 쉴새없이 퍼 나르고 병든 동물을 끊임없이 돌봤다. 무엇보다 수백 마리 가축이 쏟아 내는 배설물이 가득한 화물칸은 카우보이들에겐 지옥이었다.

이렇게 1952년부터 1976년까지 24년 동안 총 44회에 걸쳐 300여 명의 카우보이가 3200마리의 가축을 머나먼 한국으로 실어 날랐다. 일명 ‘한국을 위한 노아의 방주(Operation of Noahs Ark for Korea)’ 프로젝트였다.

1964년 경기도 장호원의 읍사무소 서기였던 최은영 씨는 다니던 교회를 통해 홀스타인 얼룩소 한 마리를 받았다. 고향은 6·25전쟁으로 초토화됐고 동네에서는 가축을 찾아볼 수 없었다. 소를 잘 키웠는지 2년 후 헤퍼로부터 저지 품종의 황토색 젖소 한 마리를 더 받은 그녀는 경기도 최초의 목장을 시작했다. 목장은 번창했고 7남매 중 다섯은 대학까지 졸업했다.

6·25전쟁 이후 헤퍼가 진행한 ‘노아의 방주’ 작전은 1952년부터 24년 동안 강남고속버스터미털을 준공하고 경기고등학교가 이전한 1976년까지 병아리로 부화할 수 있는 유정란 21만6000개·돼지 331마리·암소 222마리를 시작으로 총 3200마리를 수송했다. 이는 전쟁으로 황폐해진 한국의 농촌을 살리는 한 줄기 희망의 빛이었다.

한강의 기적은 그렇게 시작됐다. 가축과 종란(種卵)·꿀벌을 통해 한국의 농축산업은 눈부시게 발전했고 특히 가축은 세계 최대 빈곤국에서 탈출하는 데 결정적인 도움이 되었다. 유엔의 참전·미국의 희생·헤퍼의 도움 등 트리플 헬퍼 덕분에 우리나라는 1세대 농가를 구축했고 대한민국의 축산산업은 눈부시게 발전했다.

한 외국인 유튜버가 말한다. “거대한 시스템이 체계적이고 깨끗하고 안전하고 질서정연하고 미래지향적이면서도 기능적이며 거기다 존중과 배려와 정직과 규율이 있는 한국은 이 세상의 미래다.”

선선한 아침 나절, 비를 쫄닥 맞은 라면박스들이 널부러져 있다. 그 옆으로 빈 소주병들이 쓰러져 있고 언제 씻었는지도 모를 털북숭이 노인 두 명이 함께 널부러져 있다. 영등포 쪽방촌에는 유일하게 다섯 살 아이가 있다. 친구가 있을 리 없는 다훈이를 보러 쪽방촌에 갔다. 과자 사 먹으라고 돈을 쥐어 주자 쏜살같이 엄마에게 되돌려준다. 뭔가 할 말이 많아 보이는 엄마는 본 척도 하지 않는데 할머니는 고맙다고 연신 허리를 구부린다. 쪽방촌을 나오는데 라면 쪼가리를 먹고 있는 허름한 인생 한 명이 의심의 눈초리로 나를 노려본다.

필자는 70년 전 대한민국의 현실이 이랬을 것 같아 굉음을 울리며 여의도 광장을 질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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