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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이 이번 주 당론으로 발의하는 ‘반도체특별법’은 국가 차원에서 반도체 산업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방안들을 포함하고 있다. 하지만 그 중심에는 중요한 사항이 빠져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바로 연구개발(R&D) 인력에 대한 ‘주 52시간 근무 규제’의 예외 조항이 포함되지 않은 것이다. ‘주 52시간 근무제’ 강제 조항은 반도체 업계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로, 기술개발과 혁신의 발목을 잡고 있는 주범으로 지목된다. 이 예외 조항이 빠진 ‘반도체특별법’은 사실상 헛 구호에 그칠 공산이 크다.
문재인정부의 주요 정책인 ‘주 52시간 근무제’는 노동자 보호 정책의 일환으로 도입됐다. 하지만 이 규제가 반도체와 같은 첨단기술산업에 종사하는 고소득 연구개발 인력에게는 오히려 장애물이 되고 있다. 특히 인공지능(AI) 반도체나 차세대 반도체 기술개발이 경쟁을 벌이는 이 시점에, 시간 제약을 받으며 연구를 진행하는 것은 그 자체로 심각한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
최근 몇 년간 대만 TSMC나 미국 엔비디아와 같은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은 연구개발을 24시간·주 7일 내내 가동하며 필요에 따라 근무 시간을 유연하게 조정하고 있다. 이들은 주말이나 심야 시간대에도 불을 밝히고 기술개발을 지속한다. 반면 한국의 반도체 기업들은 ‘주 52시간 근무제’의 족쇄에 묶여 밤샘 근무가 제한되고, 긴급한 상황에서도 연구개발 인력이 자리를 비워야만 한다.
정부와 여당이 추진하고 있는 반도체특별법의 주요 내용은 직접 보조금 지급·세액 공제·산업 지원 등의 항목이다. 그러나 이러한 지원책들이 효과를 보려면 무엇보다도 연구개발 인력의 시간 제약을 풀어 주는 것이 필수적이다.
고동진 국민의힘 의원은 “반도체 업계는 연구개발 집중 기간에 주 52시간제를 적용하면 실제로 강제로 퇴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고 지적하며 “연구개발 인력에 대한 근로시간 유연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야당의 반대와 노동계의 반발을 우려해 반도체특별법 발의 내용에서 ‘주 52시간 예외’ 조항을 지레 포기하는 모양새다.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는 기술 패권을 쥐기 위한 치열한 경쟁이 펼쳐지고 있다. 특히 AI 반도체와 같은 차세대 기술이 핵심인 지금, 연구개발 인력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기술 혁신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으며, 그 과정에서의 집중과 유연성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연구개발 인력이 효율적인 작업 환경을 요구하고 있는 이유다. 한국 반도체 산업이 위기를 극복하려면 우수한 인재들이 주 52시간 규제라는 제약에서 벗어나 더욱 자유롭고 창의적으로 기술을 개발할 수 있어야 한다.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해외에서는 이미 고소득 전문직 및 연구개발 인력에 대해 근로시간 규제 예외를 두고 있다. 미국의 ‘화이트칼라 이그젬션(White-collar Exemption)’ 제도는 고소득 전문직 근로자에게 주간 노동시간 규제의 예외를 인정하고 있다. 일본의 고도 전문직 제도도 비슷한 방식으로 연구개발 인력에게 유연한 근로시간을 부여하고 있다. 한국도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려면 이 같은 유연한 근로시간 제도 도입이 필수적이다.
반도체는 단순히 하나의 산업을 넘어 국가 경제의 기반이 되는 중요한 자원이다. 정부와 여당은 이번 반도체특별법을 추진함에 있어, 연구개발 인력의 주 52시간 예외 조항을 포함시키도록 야당을 설득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화이트칼라 이그젬션’ 제도 도입도 적극 추진할 수 있어야 한다. 연구개발 인력이 뛰지 못하도록 발목을 잡는 ‘주 52시간’ 족쇄를 풀어준 후에야 반도체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도약이 가능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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