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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요희의 작가노트] 을사년의 영웅 한규설
임요희 필진페이지 + 입력 2025-01-21 06:30:44
 
▲ 임요희 시인·소설가
올해는 을사년(乙巳年)이다. 이는 육십갑자식 구분법으로 60년마다 동일한 이름의 해가 돌아오는 데 따른 것이다. 여기에 오방색을 적용하니 푸른 뱀띠 해가 되었다.
 
을사늑약이 맺어진 120년 전 을사년(1905)도 푸른 뱀의 해였다. ‘을사늑약은 일제가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한 불평등조약으로 사람들은 을씨년스럽다는 말로 그 해를 기억하고 있다.
 
이 말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08년 이해조의 빈상설(鬢上雪)’이라는 소설에서였다. 축첩 제도의 폐단을 드러내는 이 소설에서는 쓸쓸하고 스산한 분위기를 을사년스럽다고 표현하고 있다.
 
1920년 조선어 대사전에 처음으로 이 말이 등재된 이후 1938년에는 음운변화를 일으켜 을씨년스럽다로 고정되었다. 일제 때 생겨난 단어인지라 북한에도 같은 말이 있다고 한다. 뜻은 약간 달라서 기분 나쁘거나 소름 돋는 기분을 뜻한다고.
 
1905년 을사늑약 체결에 가담한 다섯 대신을 을사오적이라고 부른다. 이들은 고종 황제의 위임 없이 자의적으로 조약에 서명하는 범죄를 저질렀다. 을사늑약은 국제법상 무효일 수밖에 없다.
 
나라를 일제에 넘긴 을사오적은 이완용 학부대신(교육부 장관) 이지용 내부대신(행정안전부 장관) 박제순 외부대신(외교부 장관) 이근택 군부대신(국방부 장관) 권중현 농상공부대신(농림축산식품부·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다.
 
물론 여기서도 짚고 넘어갈 부분은 있다.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박제순은 외세가 국정에 간섭하는 것에 반대해 세 번이나 사직했으나 고종이 자꾸 부르는 바람에 할 수 없이 다시 출사해 한규설 대감과 둘이 끝까지 을사조약에 반대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마지막에 어명이라는 말에 할 수 없이 도장을 찍었다고. 그리고 그의 손자 박승유는 전 재산을 독립운동에 내놓고 광복군으로도 활동했다는 기록이 있다.
 
을사조약에 서명은 하지 않았지만 고종을 협박하거나 친일파로 살았던 3인을 을사삼흉이라고 부른다. 이재극 궁내부대신(대통령비서실장) 민영기 탁지부대신(기획재정부 장관) 이하영 법부대신(법무부 장관)이 그들이다.
 
대부분의 각료가 나라를 팔아먹는 데 가담하는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이 불공정한 체결에 끝까지 반대하던 이가 있었다. 한규설 참정대신(부총리·국무총리 대행)이 그 주인공이다. 한규설은 을사늑약 체결 당시 반대 의견을 피력하다가 체결 이후 참정대신에서 해임되었다.
 
▲ 푸른 뱀은 다산과 풍요를 뜻하지만 역사적으로 을사년에는 좋지 않은 일이 많이 일어났다. 일러스트 임유이 기자
 
푸른 뱀은 다산과 풍요를 뜻하지만 역사적으로 을사년에는 좋지 않은 일이 많이 일어났다. 2025년 을사년 새해도 마찬가지다. 대통령 탄핵 심판으로 나라가 어수선하다. 그러나 뱀이 허물을 벗고 새 몸을 갖는다는 점에서 이런 진통은 어쩌면 을사년의 운명인지도 모른다.
 
우리 민족의 DNA에는 1905년 을사년의 트라우마가 새겨져 있다. 모두가 한곳을 가리킬 때 그곳을 바라보는 게 가장 위험하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안다. 잘 이겨 낼 것이다.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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