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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을 말하면 ‘내란’이란 딱지가 붙고, 팩트를 말하면 ‘왜곡’이라는 프레임이 돌아온다. 대한민국은 지금 거대한 프레임에 갇힌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 있다. 누군가의 과오는 정당화되고, 누군가의 진실은 조롱받는다. 이제 국민의 피로감은 극도에 달해 있다. 정의와 사실보다는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는 법을 아는, 목소리 큰 자의 말이 진실이 되는 사회. 이쯤 되면 묻고 싶어진다. “대한민국은 과연 ‘성숙한 국가’인가?”
그 물음은 자연스레 한 인물을 떠올리게 한다. 100년 전 조선을 바라보며 깊은 한숨을 쉬던, 그리고 “조선은 준비되지 않은 민족”이라 가차 없이 진단했던 사람. 바로 윤치호다.
그는 식민지 지배의 책임을 남에게 돌리지 않았다. “힘없는 민족의 독립은 허상”이라며 조선이 망한 이유가 ‘외세의 침탈’이 아니라 ‘자기 무능’에 있다고 진단했다. 무질서, 감정주의, 실력 없음. 이 세 가지를 그는 조선을 뒤덮은 3대 병폐로 지목했다.
그로부터 한 세기가 지났다. 윤치호가 오늘의 대한민국 땅을 다시 밟는다면, 그는 잠시 고개를 끄덕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어느 정도는 해냈구나. 내가 말했던 실력양성, 최소한 절반은 도달했군.” 하지만 이어서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나머지 절반은 여전히 미지수로구나.”
왜일까? 3·1운동에 대해 이성보다는 감정에 치우친 민족주의라고 비판했던 윤치호의 눈에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사건 역시 비이성적 분노와 정치적 편가르기가 빚어낸 결과로 비쳐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언제부터인가 정책보다 프레임, 능력보다 이미지, 진실보다 거짓 서사가 ‘진보’라는 이름 아래 현실을 대신하고 있다.
“조선인은 10%의 이성과 90%의 감정으로 살아간다”는 윤치호의 말이 떠올려지는 시대다. 과도한 복지와 포퓰리즘으로 망한 베네수엘라·아르헨티나 등의 사례는 냉정한 정치적 판단은 뒤로하고 눈앞에서 벌어지는 화려한 말잔치에 중독된 국민이 내린 어리석은 선택의 결과가 어떤지를 보여준다.
“공공정신, 신용, 성실의 함양 없이 얻은 부와 권력은 모래성과 같다.” 지금 저들은 대선을 앞두고 표밭 위에서 모래성을 쌓으려 하는 게 아닌가. 진실을 외면하고, 선동에 취하고, 감정에 매몰되어 있다면 우리는 아직도 ‘준비되지 않은 민족’이라는 손가락질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박선옥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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