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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릿글>
2025년, 대한민국은 변화의 기로에 서 있다. 경제 둔화, 정치 불신, 외교안보 불확실성, 낡은 헌정 체제, 심화하는 사회 갈등. 정권교체 여부를 떠나, 다음 대통령은 이 복합 위기를 풀어낼 해답을 내놓아야 한다. ‘다음 대통령의 과제’ 시리즈는 이를 다섯 가지 주제로 나누어 살펴본다. ① 경제 ② 정치③ 사회 ④ 외교안보 ⑤ 개헌
다음 대통령이 반드시 마주할 또 하나의 과제는 정치개혁이다. 경제가 시스템의 문제라면, 정치는 리더십과 제도의 결합이다. 정치가 바뀌지 않으면 개혁은 껍데기가 되고, 개혁이 실패하면 민심은 분열된다.
누구든 다음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이라면, 당선 이후 무엇을 바꿀 것인지부터 미리 답해야 한다. 정치개혁은 선택이 아니라, 통치의 정당성과 지속가능성을 위한 최소한의 과제다. 국회·정당·권력구조·투명성·소통이라는 다섯 가지 축을 넘어서는 개혁 청사진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성공한 대통령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첫 번째 과제는 국회 구조 개혁이다.
지금의 국회는 실질적 책임은 없으면서도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는 구조다. 법안은 정쟁 속에 표류하고, 청문회는 인사검증이 아니라 정파적 이슈몰이로 변질되었으며, 국정감사는 고성과 퍼포먼스의 무대가 되었다.
특히 2020년 총선을 거치며 도입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위성정당 난립이라는 부작용을 초래했다. 정당 지지율과 의석 비율 간 괴리를 해소하겠다던 취지는 무색해졌고, 거대 양당 체제가 더 공고해지는 결과를 낳았다. 이는 제도 실험이 아니라 사실상 실패로 귀결되고 있다.
국회 구조 개혁은 국회의원 정수 조정에서 출발해야 한다. ‘국회의원 수를 줄이자’는 국민 여론은 높지만, 단순 감축만이 능사는 아니다. 인구 대비 대표성, 국정감시 기능, 입법 품질을 고려해 "책임 있는 정당정치"를 가능하게 하는 선거제도 개편이 필요하다. 헌법 개정 없이도 선거법 개정과 정치관계법 정비를 통해 충분히 추진할 수 있다.
또한 국회의원의 특권 구조를 개혁해야 한다. 불체포특권 남용, 국회 윤리심사 미비, 특권적 보좌진 운용 문제 등은 국민적 불신의 근원이 되고 있다. 대통령은 집권 여당의 1호 당원이자 야당 대표와의 협상 파트너이므로, 이 과제에 소극적일 수 없다.
특히 통치구조 논의와 연계해 ‘소선거구제 중심 안정적 양당제’ 방향성을 명확히 해야 한다. 다당제 실험이 정국 불안만을 가져온다면,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 홍준표 후보가 제시한 상하 양원제 도입 역시 갈등 완화 장치로 적극 검토할 수 있다. 대안 없는 비례대표제 확대는 오히려 민주주의의 신뢰를 무너뜨린다.
두 번째 과제는 정당 구조 개혁이다.
한국의 정당은 여전히 지역 기반, 계파 이익, 그리고 국고 보조금에 기대는 폐쇄적 구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공천은 계파 장악 수단으로 전락했고, 정치 신인의 진입 장벽은 높으며, 내부 민주주의는 선언적 수준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정당 민주화’는 과거에도 수차례 외쳤지만, 실질적 변화로 이어진 적은 드물었다. 정당 개혁은 단순한 시스템 문제가 아니라, 리더의 결단과 비전이 좌우하는 문제다.
열린 공천제 도입, 경선 과정의 공정성 확보, 상향식 인재 등용, 정책경쟁 중심의 당 운영은 더 이상 구호로만 남아선 안 된다. 특히 여당 체제에서는 대통령과 당의 관계 설정이 핵심이다. 대통령이 당을 장악해 사당화하거나, 반대로 당과의 관계를 방기하면 결국 국정의 동력은 약화된다.
'당정 분리'를 이상화하는 것도 위험하지만, 대통령과 당이 "건전한 긴장 속 협력"을 유지하는 모델을 찾아야 한다. 정당이 대통령의 이익 집단이 아니라 국민 전체를 대변하는 조직이 될 때, 비로소 정치에 대한 신뢰가 회복될 수 있다.
세 번째 과제는 대통령 권력의 분산이다.
대한민국 정치의 병폐는 ‘제왕적 대통령제’에 깊이 뿌리박혀 있다. 5년 단임제라는 구조는 대통령을 '고립된 권력'으로 만들고, 결국 임기 후반엔 레임덕을 가속시킨다. 정권교체만으로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대통령제 유지론자든 분권형 개헌론자든, 권력 집중과 분산에 대한 진지한 설계 논의가 필요하다. 대통령 직속 기관인 감사원, 검찰, 국정원의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강화하는 것은 가장 시급한 과제다. 감사위원회제 도입, 검찰총장 독립성 보장, 국정원 정보활동의 국회 통제 강화 등이 논의되어야 한다.
또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는 설계 취지를 넘어, 정치적 무기로 변질되지 않도록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권력기관은 통치권의 연장이 아니라 국민의 신뢰 기반이어야 한다.
네 번째 과제는 정치의 투명성과 신뢰 회복이다.
오늘날 정치인은 불신받고, 정당은 외면당하며, 국회는 조롱받고 있다. 정치는 국민의 신뢰 없이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이해충돌방지법을 실효적으로 강화하고, 정치자금의 수입과 지출을 철저히 투명화해야 한다. 로비스트 제도를 도입해 '은밀한 로비'를 '공개된 정치활동'으로 전환시키는 것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미국, 유럽처럼 투명하고 합법적인 로비를 제도화해야, 오히려 비선정치와 검은돈의 위험을 줄일 수 있다.
동시에 정치 혐오를 방치하지 말고, 다양한 배경을 가진 시민들이 정치에 진입할 수 있는 제도적 통로를 열어야 한다. 청년, 여성, 장애인, 이민자 후보 공천 의무제, 정치교육 프로그램 강화 등 적극적 포용 조치가 필요하다.
다섯 번째 과제는 국민과의 소통 방식이다.
정치는 더 이상 일방적인 메시지 전달이 아니라, 국정 방향과 가치를 국민과 '공유'하는 과정이다. 박근혜 정부의 '불통', 문재인 정부의 '독주', 모두 실패의 교훈을 남겼다.
디지털 플랫폼을 통한 실시간 소통 시스템 구축, 다양한 이해관계자와의 정기적인 정책 토론회, 지역·계층별 국정 대토론회 제도화 등이 필요하다. SNS나 유튜브를 통한 일방적 방송이 아니라, 국민 의견을 듣고 반영하는 ‘양방향 대화 정치’를 복원해야 한다. 특히 주요 국정 이슈에 대해 국민과 함께 논의하고 결정하는 "정책 국민투표제" 도입도 중장기 과제로 검토할 수 있다.
정치개혁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다. 그 과정은 대통령 혼자 만들 수 없다. 그러나 대통령이 방향을 틀지 않으면 누구도 움직이지 않는다. 정치개혁을 외친 대통령은 많았지만, 성공한 대통령은 없었다. 그들의 공통점은 '자기 정치'를 우선했거나, 개혁을 권력의 도구로 삼았다는 점이다.
다음 대통령이 자기 정치를 내려놓고, 제도 정치를 복원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대한민국 정치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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