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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음악을 좋아하는 매니아들은 클래식 음악감상의 최종 종착역을 고음악·실내악곡이라고 한다. 처음엔 오케스트라가 메인인 교향곡, 다음엔 협주곡을 좋아하다가 성악곡·실내악곡·고음악으로 변하게 된다.
와인 애호가들은 피노 누아(Pino Noir)를 애호가의 종착역이라고 하는 데 대체로 동의한다. 가격으로만 따져도 세계 최고가 와인은 부르고뉴 피노 누아다. 피노 누아 가격이 매년 비싸지는 이유는 부르고뉴의 피노 누아 생산량은 적은 데 반해 원하는 수요가 많기 때문이다.
피노 누아의 어원은 ‘소나무’을 뜻하는 불어 ‘Pino'와 ’검은색‘을 뜻하는 ’Noir‘가 합쳐져 탄생했다. 피노 누아의 포도송이가 역삼각형으로 촘촘히 붙어 있는 모습이 마치 솔방울을 닮았기 때문이다.
피노 누아(Pinot Noir)는 프랑스 부르고뉴 지방이 원산지로 최고급 레드와인을 만드는 세계 최고의 포도 품종 중 하나로 부르고뉴 와인의 명성을 있게 한 포도 품종이다. 백포도주로 양조될 경우에는 샴페인 양조에 사용한다.
잘 익힌 피노 누아로 만든 와인은 타닌과 신맛이 약하며 빛깔은 맑고 엷은 붉은색을 띤다. 딸기·크랜베리·라즈베리·체리의 향이 가득 느껴지는데 매우 향기롭다. 그리고 숙성이 진행되면 버섯·가죽·시가의 향이 올라오며 복합적이고 농염한 자태를 뽐낸다.
산도가 높고 탄닌이 낮아서 다양한 요리들과 좋은 페어링을 보여주고 있다. 피노 누아는 오리고기·닭고기·돼지고기·버섯요리와 매우 잘 어울리며 한식과도 좋은 매칭을 보여주고 있다. 다양한 요리과 좋은 매칭을 보여주는 가장 큰 이유는 가볍고 탄닌이 부드러우며 과실향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기후에 매우 민감하고 곰팡이·바이러스 등 여러 질병에 매우 취약하기 때문에 피노 누아는 포도밭에서 섬세한 관리가 매우 중요하다. 결정적으로 수확량도 적어 피노 누아로 만든 와인은 저렴하게 공급하기가 매우 힘들다.
피노 누아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와인은 세계에서 가장 비싼 와인 중 하나였던 로마네 꽁티(Romane Conti)로 대표되는 부르고뉴 그랑 크뤼였다. 하지만 2022년 기준으로 세계에서 가장 비싼 와인은 도멘 리로이 뮤지니 그랑크뤼(Domaine Leroy Musigny Grand Cru)다. 두 와인의 공통점은 리로이 여사가 관여한 와인이라는 것이다. 리로이 여사에 관한 이야기는 다음에 소개할 예정이다.
2022년 와인 글로벌 가격비교 플랫폼 ‘와인서처’에 따르면 프랑스에서 생산된 ‘도멘 르루아 뮈지니 그랑크뤼’가 소매가격 기준으로 세계에서 가장 비싸게 팔리는 와인 1위를 차지했다. 이 와인 한 병(750㎖)당 평균 소매가격은 4만1368달러(약 5930만 원)이고 최고가는 10만5906달러(약 1억5181만 원)로 집계됐다.
2022년 초 평균 소매가격은 3만7700달러였는데 9.7% 더 비싸졌다. 연봉 수준에 따라 다르겠지만 1년 동안 열심히 벌어도 1병 사서 마시기가 쉽지 않은 와인 가격이다.
잘 숙성된 피노 누아 와인의 이미지는 섬세하고 귀족적이며 고급스럽다. 만화 ‘신의 물방울’ 덕분에 널리 알려졌다. 코르크를 여는 순간 펼쳐지는 오색창연한 꽃밭·딸기·체리 등 붉은 과일향이 가득하다. 부드러운 탄닌·매끄럽게 이어지는 긴 피니쉬가 매력이다.
하지만 이런 와인들은 점점 만나기 어려워지고 있다. 일단 생산량이 너무 적다. 그랑 크뤼, 프리미어 크뤼는 고사하고 본 로마네나 즈브레 샹베르탱(Gevrey Chambertin) 같은 마을 단위 부르고뉴 와인들도 전부 한정된 지역에서 나오기에 생산량을 무작정 늘릴 수 없는 탓이다.
전형적인 독과점 시장이다. 공급보다 수요가 월등히 많기 때문에 가격이 오르는 것은 당연하다. 마을 단위 이상의 부르고뉴 와인들은 10년 전과 비교하기 무서울 정도로 가격이 올랐다.
명성 높은 도멘의 부르고뉴 피노 누아 가격은 어지간한 마을 단위 와인에 필적한다. 가난한 애호가의 희망이었던 부르고뉴 오뜨 꼬뜨(Bourgogne Hauts-Cotes)의 가치도 점점 오르는 추세다. 피노 누아 애호가의 시름은 깊어만 간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딱히 마땅한 대체 와인이 없다는 데 있다. 피노 누아 애호가들의 부르고뉴 와인에 대한 충성심은 엄청나서 다른 지역의 피노 누아는 거들떠보지 않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피노 누아는 섬세한 품종이기 때문에 토양과 기후·양조방법 등에 큰 영향을 받는다. 한마디로 떼루아에 민감한 품종이다.
피노 누아는 껍질이 얇아 색상이 옅으며 풍미는 가볍고 섬세하다. 그래서 다른 품종에 비해 다양한 스타일로 양조하기 어렵다. 또한 와인의 전체적인 미감이 타닌보다 산미에 좌우된다.
과도하게 익어 신선한 산미가 부족한 피노 누아는 매력 없는 평범한 와인이 되어버린다. 서늘한 기후 조건이 필요한 이유다. 부르고뉴는 이런 조건을 갖춘 유일무이한 산지로 인식됐고 오랜 기간 노하우를 쌓아 그 명성은 더욱 공고해졌다.
하지만 부르고뉴와 비슷한 기후를 지닌 다른 나라에서 만들어진 피노누아가 인기를 끌고 있다. 이 이야기는 다음주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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