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승룡의 와인이야기] 여름 와인 ‘피노 누아’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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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승룡 필진페이지 + 입력 2024-06-27 06:30:40

여름에는 바디감이 묵직하고 알콜 도수가 높은 와인보다 좀 더 가볍고 부드러우면서도 과실향이 풍부한 와인을 찾게 된다. 피노 누아는 여름에 마시기 좋은 레드와인이다. 물론 여름철 요리와도 잘 어울린다.

최근에는 피노 누아가 프랑스 이외의 다른 국가에서도 많이 생산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성공사례가 미국 오레건(Oregon)이다. 오레건에서 피노 누아를 심은 것은 1960년대였다.

1970년대 파리에서 열린 블라인드 테이스팅에서 오레건 피노 누아가 부르고뉴 피노 누아를 누르는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런 점을 눈여겨본 부르고뉴의 유명 생산자들은 일찌감치 오레건에 와이너리를 만들었다.

오레건 기온은 부르고뉴보다 좀 더 서늘하고 맑고 건조한 날씨가 유지되기 때문에 드라이하고 가벼운 풍미와 섬세함이 잘 드러나는 피노 누아 특유의 맛이 살아있는 와인이 생산된다. ‘피노 누아가 오레건에 새로운 거처를 찾았다’고 할 정도로 오레건의 피노 누아에 대한 자부심은 대단해 업계와 애호가의 평가도 상당히 높다.

미국 와인의 중심 캘리포니아에서도 양질의 피노 누아가 생산된다. 전반적으로 부르고뉴에 비해 기온이 높고 일조량이 많아서 색상이 진하고 달콤한 과일 풍미가 더욱 부드럽게 느껴진다. 지역별로 차이가 있지만 흙 내음은 적고 실크처럼 부드러운 타닌을 느낄 수 있고 밸런스가 좋다.

나파 밸리(Napa Valley)의 피노 누아는 달콤한 과일 풍미와 함께 알코올이 높고 힘 있다. 소노마 밸리(Sonoma Valley)는 완숙 과일 풍미와 우아함을 느낄 수 있다. 남쪽의 산타 바바라(Santa Barbara)에서는 신선한 과일 풍미에 산도가 매력적인 피노 누아가 생산된다. 몬터레이(Monterey)는 가장 진지한 스타일로 잔잔하면서도 스케일이 크다.

뉴질랜드도 소비뇽 블랑으로 잘 알려졌지만 서늘한 기후로 인해 최상급 피노 누아를 만드는 산지로 점차 명성을 얻고 있다. 전 세계 와인 산지 중 최남단에 있는 센트럴 오타고(Central Otago)는 큰 일교차를 보이는 전형적인 대륙성 기후로 일조량은 넉넉하고 강수량은 매우 적어 양질의 피노 누아를 재배하기 최적의 산지다. 피노 누아 애호가라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주목해야 할 지역이다.

마틴버로(Martinborough)는 뉴질랜드 최초의 피노 누아 생산지로 올드바인이 많다. 재배 면적은 적지만 풍미의 집중도가 높은 고품질 피노 누아를 생산한다. 말보로(Marlborough) 피노 누아는 비교적 온화하고 밝은 과일 풍미를 느낄 수 있다.

칠레의 피노 누아는 프랑스 부르고뉴의 피노 누아보다 타닌이 조금 더 많고, 자연의 향도 더 많다. 대표적인 생산자 코노 수르(Cono Sur)는 카사블랑카 밸리(Casablanca Valley), 산안토니오 밸리(San Antonio Valley) 등 해안 지역이나 비오비오(Bio Bio) 등 남쪽 서늘한 지역에서 이미 세계적으로 그 품질을 인정받는 친환경 공법을 이용한 양질의 피노 누아를 생산하고 있다. 엔트리급 와인이든 프리미엄 와인이든 칠레의 피노 누아를 맛본다면 가성비와 품질에 깜짝 놀랄 것이다.

▲ 전세계 지역별 최고급 피노누아 와인들. (왼쪽부터)오레곤의 Domaine Drouhin Lauréne Pinot Noir·캘리포니아의 Maggy Hawk Afleet Pinot Noir·나파벨리의 Belle Glos Eulenloch Pinot Noir·뉴질랜드의 Felton Road Block 5 Pinot Noir·칠레의 Tabali Talinay Pinot Noir·아르헨티나의 Domaine Nico Histoire d'A Pinot Noir. 필자제공

아르헨티나 멘도사(Mendoza) 지역은 몇 종류 양질의 피노 누아가 생산된다. 남쪽 파타고니아(Patagonia) 지역은 큰 일교차와 서늘한 기후로 인해 피노 누아 재배에 최적지로 평가되고 있다. 전 세계 어떤 피노 누아와도 비교할 수 없는 지역적 개성이 뚜렷한 새로운 스타일의 피노 누아를 생산하고 있다.

프랑스 내에도 부르고뉴 지역 이외에 알자스(Alsace)·루아르(Loire)·랑그독(Languedoc) 등지에서 개성 있는 피노 누아를 생산한다. 독일이나 오스트리아도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주목할 만한 피노 누아 생산국이다. 이탈리아도 많지는 않지만 북중부를 중심으로 흥미로운 피노 누아를 생산하고 있다.

피노 누아는 생산자들의 끊임없는 노력·사회적 환경과 기후의 변화 등으로 세계 각지에서 수준급 피노 누아 와인들이 생산되고 있다. 물론 부르고뉴는 여전히 훌륭하다. 문제는 가격이 너무 비싸다는 것이다. 하지만 조금만 눈을 돌려본다면 더욱 다채로운 피노 누아의 세계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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