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키루스의 뒤를 이은 페르시아 왕 캄비세스는 잔혹한 성격에 가끔 정신이상 증세를 보이는 자였다. 이집트 원정에 나섰다가 동생 스메르디스가 왕위를 찬탈하는 꿈을 꾸고는 측근 프렉사스페스를 보내 동생을 죽이고 이 사실을 비밀에 부치도록 했다.
그런데 캄비세스가 원정에 나서며 왕가를 돌보라고 남겨 둔 마고(magos·영어 magic의 어원) 사제 파티제이테스는 자신의 동생이 죽은 스메르디스를 닮은 것을 알고 모반을 일으켰다. 그는 자신의 동생을 옥좌에 앉히고는 이집트 원정군은 앞으로 캄비세스가 아니라 키루스의 아들 스메르디스의 명령에 따라야 한다고 통보했다. 이를 듣고 분개한 캄비세스는 급히 귀환하다가 사고로 죽었다.
가짜 왕은 한동안 잘 통치하여 인심을 얻었지만 차츰 그 비밀이 페르시아의 유력자들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7명의 페르시아 의인(義人)이 뭉쳐 마고스 출신 가짜 왕을 죽이고 페르시아의 실정에 어떤 통치 체제가 맞을지 논의했다. 차례가 오자 다레이오스가 말했다.
“지금 제시된 세 가지 체제, 즉 민주제·과두제·독재제가 각기 가장 바람직한 상태에 있다고 할 때, 나는 마지막 것이 다른 둘보다 훨씬 낫다고 단언하오. (…)
과두제에서는 공적을 올리려는 몇몇 사람들 사이에 자칫 개인적으로 격렬한 적대 관계가 생기기 쉽소. 저마다 자신이 수뇌가 되어 자기 의견을 관철하려 하는 나머지 서로 반목하게 되고, 거기에서 내분이 생기고, 내분은 유혈을 부르고 유혈을 거쳐 독재제에 이르게 되오. (…)
한편 민주제의 경우에는 악의 만연을 피하기가 어렵소. 공공의 일에 악이 만연될 경우 악인들 사이에 생기는 것은 적대관계가 아니라 오히려 강력한 유대감인데 그도 그럴 것이 국가에 나쁜 일을 꾸미는 자들은 결탁해서 이를 행하기 때문이오. 이와 같은 사태가 일어나면 결국 누군가 국민의 선두에 서서 악인들을 처치하게 될 것이오. 그 결과 그 자가 국민이 찬미하는 대상이 되어 마침내는 독재자로서 숭배받게 될 것이오.
이런 사례를 보아서도 독재제가 최고의 정치체제라는 것이 분명하지 않소? (…) 우리는 무엇으로부터 자유를 얻는가. 누가 주는가. 민중으로부터인가, 과두제로부터인가 그렇지 않으면 독재제로부터인가. 내 견해는 우리는 단 한 인물에 의해 자유의 몸이 된 것이기 때문에 어디까지나 이 체제를 견지해야 한다는 것, 이 훌륭한 조상 전래의 관습을 파기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오.”(헤로도토스 ‘역사’ 제3권)
키루스 왕이 메디아의 지배에 고통받던 페르시아를 해방시킨 점을 상기시키자 다른 의인들도 페르시아인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는 독재제 형태의 정체가 알맞다고 동의했다. 이런 논의를 거쳐 기원전 522년 다레이오스가 페르시아의 왕위에 올랐다. 바로 다리우스 1세다.
이 놀라운 이야기는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야 하는 인간의 본성과 한계를 되돌아보게 한다. 민주제나 과두제·독재제라는 정체의 구분은 국민의 자유 보장이라는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지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 또 통치의 형태인 정체는 그 공동체의 상황에 따라 언제든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을 인류는 2500여 년 전에도 알고 있었다.
흔히 한국은 산업화와 민주화에 성공하고 선진화로 나아가는 나라라고 주장한다. 잘못된 견해다. 산업화는 생산성이 낮은 농업경제 위주의 가난한 나라를 생산성이 높은 상업경제 위주의 부자 나라로 전환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나 ‘민주화’는 어떤가?
대한민국은 1948년 건국 때 대통령을 의회에서 간접선거로 뽑았다. 그것을 대통령 직선제로 바꾸려 하자 지금 더불어민주당의 전신 한민당이 민주주의를 훼손한다고 반대했다. 그러다가 유신 정권 때 선거인단을 통한 대통령 간선제로 바꾸자 민주당의 선대 대표인 김대중은 직선제가 민주화라고 주장했다. 그들의 소원대로 1987년 개헌으로 대통령 직선제가 다시 도입되었다. 그럼 민주화는 끝났는데 그 이후 온갖 ‘민주화운동’ 했다는 자들은 누구인가.
북한 공산당의 수하 세력인 주사파는 1980년대부터 주요 대학의 학생회를 장악했다. 이들은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를 조직해 반국가적 행사에 학생들을 동원했다. 통일 운동 한답시고 반체제적 행위도 서슴없이 자행했다. 대통령 직선제 개헌 이후에도 파출소 등 국가 시설에 돌을 던졌고 건물에 불을 질러 경찰관을 죽이기도 했다. 그 주범들은 모두 ‘민주화 유공자’가 되어 국민 세금으로 보상받고 그 자식들은 가산점 받아 쉽게 공무원 자리를 꿰차게 되었다.
다레이오스는 국가에 나쁜 일을 꾸미는 악인들은 서로에 대한 적대감이 아니라 ‘유대감’으로 결탁하여 나라를 망친다고 지적했다. 딱 지금의 대한민국 현실을 지적하는 것 같다.
지금 한국에서 ‘민주화운동’은 새로운 신분(caste)을 만드는 주술로 작동한다. ‘인륜’과 ‘도덕’을 주술로 내세워 백성의 절반 이상을 노비로 부린 이씨 조선의 신분 착취 체제와 다를 게 없다. 신분 착취 체제 봉건왕조를 타도하는 것이 인류 자유 역사의 큰 진보이었듯이 ‘민주화운동’ 신분 착취 체제를 타도하는 것 역시 자유 대한민국 역사의 큰 진보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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