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우석칼럼] 고지가 바로 저긴데 예서 말 순 없잖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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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우석 필진페이지 + 입력 2024-10-01 06:30:40

얼마 전 SBS TV에서 흥미로운 뉴스를 봤다. 사격훈련 중인 북한 인민군 특수부대의 훈련을 참관하는 평양돼지 김정은 주변을 완전무장한 경호원들이 겹겹이 에워싼 모습이었다. 헬멧을 뒤집어 쓴 경호원 일부는 방아쇠에 손가락까지 걸고 있었다. 돌발사태가 벌어지면 바로 쏴 버리겠다는 뜻이지 무엇이겠는가. “김정은이 군대마저 믿지 못한다”고 그 뉴스는 결론을 지었다. 맞는 소리다.

사실 우린 바로 내일 북한이 붕괴됐다는 뉴스를 접한다 해도 놀라지 않을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러나 그게 전부는 아니다. 그 직후 북한 정찰총국 출신 김국성의 인터뷰를 읽었다. “북한은 우리 몸에 달린 암덩어리, 시한폭탄과 같다”면서도 그는 북한을 제대로 봐야 한다고 경고했다. 대한민국이 물질만능주의에 빠져 북한을 거지 나라로만 보는 건 큰 과오란 지적이다.

일테면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다시 당선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김정은이 “평양으로 들어오라”고 할 것이다. 그럼 트럼프는 십중팔구 평양으로 갈 것이고, 환호의 폭포가 그의 머리 위로 쏟아진다. 그게 미·북 수교로 가는 첫발자국일 수 있다. 게다가 지금 일본은 총리 교체와 함께 북한과 접촉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 곧 일본 총리는 정상회담 제안부터 할 것이다.

그렇다. 그런 뜻밖의 고약한 상황에서 한국은 완전히 닭 쫓던 개 신세가 되고 만다는 게 또 다른 시나리오의 하나다. 정말 흥미로운 건 북한 붕괴론에 대한 김국성의 평가다. 북한이 무너진다고 한 것이 1994년 김일성 사망 때부터 무려 30년째다. 이런 와중에 한국과 미국이 북한을 비핵화시킨다고 설쳤지만 오늘날 북한은 외려 핵무력 국가로 일어섰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이 무너진다는 한가한 전망은 마치 감나무 밑에서 입만 벌리고 있는 상황과도 같다. 새삼 놀라운 건 북한이 현존 공산국 중에서 베트남에 이어 최장수(最長壽) 나라 제2위란 점이다. 1945년에 건국한 베트남은 올해로 건국 79년이고, 1948년에 건국한 북한은 76년째다. 그건 세계사적으로도 대단한 기록임을 일단 인정해야 한다.

즉 공산주의 종주국 옛소련은 1917년 러시아혁명 이후 1991년에 소멸하면서 74년 만에 몰락했다. 그렇다면 현재의 북한은 옛소련보다 2년 앞선다는 뜻이다. 참고로 1949년 건국한 중국은 북한에 비해 늘 1년씩 뒤진다. 중요한 건 따로 있다. 뭐로 보나 북한, 저들은 사상 최악의 반 인류·반 문명 체제인데도 최강 미국을 상대로,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성공한 나라 대한민국과의 대치 속에서 저렇게 버티고 서 있다. 그게 내내 미스터리다.

더욱이 몇 해 전 이미 미 본토를 때리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까지 보유했다. 해킹했건 뭘 했건 극초음속 미사일 등 최강 무기 라인업까지 완성 단계에 있으니 거듭 섬뜩하다. 대한민국 국력의 70분의 1에 불과한 그 거지 나라가 현재 대한민국을 쥐고 흔드는 것도 현실은 현실이다. 정말로 자신을 ‘남쪽 대통령’이라고 낮췄던 문재인을 무슨 공깃돌처럼 갖고 놀지 않던가.

실은 당시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다. 북한의 남한 접수는 9부 능선에 올랐다고 하는 경고를 무시 못 한다. 북한이 곧 무너질 것이라는 낙관론을 떠들다가 된통 당할 수도 있다는 소리다. 그렇다면 세상이 애써 외면하는 진실을 말할 때가 지금이다. 즉 지금 대한민국은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단군 이래로 국세가 최고조에 달했다는 강성대국의 얼굴이다. 우리의 세계적 영향력은 한류에서도 거듭 확인된다. 정치학자 박명림은 지금의 우리를 두고 준(準)제국이라고 말한다. 그런 대한민국은 사실상 북한의 인질 국가라는 또 다른 얼굴을 가지고 있다.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다 아시듯 북한이 아직 숨 쉬는 건 주사파의 도움 때문이다. 1995년을 전후한 고난의 행군 때 저들을 버티게 해 준 건 남한 내 좌익세력이었다.

예전 김여정, 그 못생긴 계집애가 그렇게 대한민국을 향해 막말을 퍼붓는 배경에도 그런 곡절이 있다. 그건 피아(彼我)를 채 구분 못 하는 천치바보 대한민국에 대한 노골적 경멸이었다. 어쨌거나 이 곤혹스러운 대한민국의 이중성을 대체 어떻게 극복할까가 우리의 과제다. 대한민국, 참 어렵다. 전에 없이 위대한 나라로 성장했으면서도, 내부 모순에 휘청대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북한이란 폭압체제 해방을 도와야 하는 역사적 의무도 있다.

요즘도 생각나는 게 노산 이은상의 1956년 명시 ‘고지가 바로 저긴데’이다. “고난의 운명을 지고 역사의 능선을 타고/ 이 밤도 허위적거리며 가야만 하는 겨레가 있다./ 고지가 바로 저긴데 예서 말 수는 없다.// 넘어지고 깨어지고라도 한 조각 심장만 남거들랑/ 부둥켜안고 가야만 하는 겨레가 있다./ 새는 날 핏속에 웃는 모습 다시 한 번 보고 싶다”(전문)

결기를 새삼 다질 때가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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