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路 동서고금 <34> 사생아·서얼·혼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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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명신 필진페이지 + 입력 2024-12-06 06:30:04

사생아란 공동체의 인정을 받지 못한 채 출생한 존재를 말한다. 혼인을 자유로운 남녀의 결합, 더구나 연애의 결과로 인식하기 시작한 게 인류사 통틀어 150~200년 전의 일이며 우리나라의 경우 100년 미만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종족 보존·유지가 최우선 과제였던 시절 임신·출산은 개인사가 아니었다. 그래서 ‘私生’이란 ‘(공인 없이) 자식을 낳다’를 뜻했다. 한·중·일 현대어에 살아 있지만 법률 등 공식 용어에선 ‘혼외자’로 대체된다. 영어 등에서 사생아(bastard)가 욕설인 것은 기독교 문명의 일부일처제 영향이 크다.

‘사생(私生)’이란 말을 조선왕조실록에서 찾아 보니 광해군 때부터 등장한다. ‘서얼(庶孼)’은 이와 엄연히 다른 개념으로 축첩제·노비제 하의 불가피한 ‘불편한 진실’이었다. 양반 태생이라도 모계가 양인이면 ‘서(庶)’, 천민이면 ‘얼(孼)’로 구분됐다. 소설 속 홍길동처럼 아버지와 형을 호칭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상공업이 천시된 주자학적 질서 아래 농경술마저 발달하지 못해 누릴 만한 재화와 특권이 더욱 한정된 조선에서 이들은 잠재적 모순이었다.

서얼이 사라질 수 없는 구조였음에도 이들에겐 과거 응시자격조차 부여되지 않았다. 대다수 선비가 과거급제하면 중앙이든 파견지든 타향에서 근무하게 되며 고향에서 제사를 받들어야 할 부인은 동행하기 어려웠다. 임지에서 함께 할 이른바 ‘소실’이 필요했고 여기서 태어난 자녀들은 적출(嫡出)들과 다른 대접을 받았다. 중세 중화세계 황실(왕실)·고관대작 모두 단 한 명의 정실이 있었으며 그 외엔 모두 후궁 내지 소실이었고 위상·혜택은 크게 달랐다.

최근 한 유명 배우의 사생활로 결혼·가족과 무관한 출산이 화제가 됐다. 혼외자 문제를 넘어 아예 비혼 출산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개인적·사회적 고민이 필요해진 느낌이다. 여권(女權)의 우위가 임신·출산을 대폭 줄이더니 근년 남성의 결혼기피 현상마저 감지된다. 연애·결혼·출산·육아를 통한 ‘스위트 홈’이야말로 핵가족의 상징이자 산업국가의 근간이었으나 위태로워진 지 오래다. 다만 더 나은 대안이 보이지 않는다.

문명사의 토대가 가족제도였다. 동북아시아에서 ‘가족’이란 최소 8촌 이내 친족을 의미했고, 산업혁명을 거치는 가운데 부모와 직계자녀로만 구성된 핵가족이 국가·사회의 기본 단위가 됐다. 우리나라에서 가족 및 가정의 정의를 바꾸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는 것도 이미 이십 수년째다. 동성결혼을 사실상 가능하게 할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안과 차별금지법안은 전통적 의미의 가족·가정을 합법적으로 무너뜨리는 쪽으로 이 사회를 몰아갈 것이다.

임명신 필진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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