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문형의 만사만감(萬事萬感)] 어떤 이는 왜 자신을 희생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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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문형 필진페이지 + 입력 2024-12-06 00:02:50

인류 역사는 이타성과 함께 진행되었다. 문명사회에 사는 우리는 그 이타성이 매우 계획적이며 목적을 지닌 것이었다고 착각하기 쉽다. 하지만 답은 ‘아니오’이다. 진화의 시간 중 대부분은 수렵·채집사회가 점령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역사의 지배적 기간 동안의 사회 단위는 가족 및 가까운 친족들로 이루어진 관계망이었다.

혼인을 거쳐 세대가 내려가도 친족임을 상기시키는 것이 바로 친족 호칭이다. 작은 다이어리에도 어김없이 부록 자리를 차지하는 이 복잡한 호칭은 인류가 얼마나 친족 관계를 중시하는가를 보여 주는 지표이다. 특히 한국인은 더 그렇다. 얼마 전만 해도 보편적으로 사용되었던 아저씨·아주머니라는 칭호는 원래는 친족 용어이다. 지금은 그 호칭을 잘 쓰지 않지만 개인적으로 가까이 지내는 사람을 여전히 이모·삼촌이라고 부르는 것을 보면 친족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알 수 있다.

유학(儒學)은 관계의 근원을 친족에 두었다. 타인을 향한 이타성에도 딱히 자신의 이익을 챙기려는 목적성은 들어 있지 않다. 그저 확장만이 있을 뿐이다. 나의 부모를 아끼는 마음을 이웃 어르신에게 넓히고 내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 또래 아이를 품는다.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어르신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청년은 조부모가 살아 계실 확률이 높고 어린아이에게 유독 친절한 사람은 그만한 손자나 조카가 있을 개연성이 있다. 친족 관계에 기반한 이런 이타성은 아주 심플하고 뒤탈이 없다.

하지만 이타성에 관한 서구의 이론은 우리와는 전혀 다르다. 친족이 아닌 타인을 배려하는 일은 철저히 계산적이라는 것이다. 이것을 목적성 이타주의라고 부르는데 이 이타성에는 궁극적으로 자신을 위하는 마음이 깔려 있다. 목적성 이타 행위는 고도의 계산을 통해 의도적으로 이루어지며 자연스레 상대의 보답을 바란다. 심지어 거짓말·위선·사기 등도 횡행한다. 대놓고 상대를 기만하기도 하지만 상대가 느끼기 힘든 선에서 살짝 이용해 먹고 튀기도 한다. 상대에게 받은 것이 10이면 자신은 3정도만 해주고 시치미를 뗀다.

그렇다면 친족 관계가 아닌 사이에서 순수한 이타성은 없는 것일까. 서구 학자들도 순수이타성, 즉 진정한 이타주의를 인정하기는 한다. 전쟁에서 자기 목숨을 기꺼이 바치는 행위, 위험에 빠진 사람을 돕는 행위 같은 것이다. 후자의 경우는 ‘아무 생각 없이’ 행동이 나가므로 반대급부로 자기 목숨을 잃기도 한다. 헌혈을 하는 것과 크리스마스실을 사는 것도 이 범주에 속한다.

우리는 전쟁에서 목숨을 바친 사람을 영웅이라 부르고 타인을 위해 희생한 사람은 의인이라고 한다. 영웅과 의인의 마음은 어떤 것일까. 특히 전쟁 중에 나타나는 이타주의적인 자살은 용기의 궁극적 행위이고 국가 최고의 영예를 받을 가치가 있는 감동적 행위이다. 그런데 그 순간 영웅의 마음속 그 무엇이 그런 행위를 가능하게 했을까.

제임스 존스는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런 상황에서는 언제나 개인의 자존심과 긍지가 중요한 요소가 된다. 전투의 순수한 흥분 상태는 종종 사람을 기꺼이 죽음으로 이끌 수 있다. 그러나 절대적이고 궁극적인 목적을 생각할 때 열렬한 기쁨, 더 이상 그 어느 것도 개의치 않는 궁극적인 쾌락이 그 안에 있다.”

살펴보면 동물들도 그런 행위를 한다. 꿀벌 중 일벌이 침입자를 공격하면 침이 피부에 박힌다. 공격한 벌은 곧 죽지만 침은 박힌 채로 남아서 독액샘에서 독이 계속 흘러 나온다. 무리의 관점에서 보면 개체의 공격 자살은 손해가 아니다. 일벌 군대는 2만에서 8만 정도이고 그들 모두는 한 여왕벌이 낳은 자매이다. 벌의 수명은 약 50일이고 이후 자연사한다. 자살하는 개체 입장에서는 자신과 동일한 유전자를 가진 자매들을 지킬 수 있기 때문에 자살은 그리 큰일이 아닐 수 있다. 꿀벌의 자기희생은 친족을 위한 것이므로 순수한 이타성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타인에게 베푸는 선행 또는 자기희생의 행위 중에서 순수 이타성을 가늠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영웅은 의(義)를 위해 죽고 의인은 생명을 살리려다 죽는다. 유학에서 가장 중시하는 두 가지 덕목을 실현한 인물이 바로 의인과 영웅이다. 그들의 순수한 사랑에는 인의(仁義)가 내재되어 있다. 헌혈과 크리스마스실 구입은 누군지 모를 병자를 위한 무조건적 사랑이다. 얼굴도 알 수 없는 아픈 이를 위해,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위해 우리는 피를 뽑고 지갑을 연다. 세상의 정의를 위해, 불의에 희생당하는 사람이 없기를 바라며 목숨을 아끼지 않는 사람도 있다.

곧 다가오는 성탄절의 주인공 예수 그리스도는 인의의 화신(化身)이다. 그는 무너진 공의를 세우려 이 땅에 왔고 자신을 버림으로써 순수이타성·생명·사랑을 구현했다. 종교와 관계없이 지구인들이 그를 기리며 그의 탄생을 흥겨워하는 것은 순수 이타성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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