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민주 "트럼프 취임 전 사법부에 우리 편 더 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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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종신직 연방판사 증원 위한 '판사법'에 거부권
'법원 정치적 중립' 옛말… 지난 4년간 신뢰도 24%p 하락

임명신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24-12-25 17:00:56

▲ 미국 워싱턴DC의 연방 대법원 청사 모습. 22일(현지시간) 임기 막판의 조 바이든 대통령이 연방판사 신설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증원될 판사 중 22명이 내년 1월 취임할 도널드 트럼프에게 임명될 상황이기 때문이다. 양당 모두 한 명이라도 '우리 편' 성향 판사를 늘리고자 필사적이다. 연합뉴스

▲ 2024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 후보로 승리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11월13일(현지시간) 약 4년 만에 백악관을 찾아 조 바이든 대통령을 만났다. 순조로운 정권 인수인계를 위한 관례적 방문이었다. 로이터=연합뉴스

미국 민주당·공화당이 사법부에 자기 편을 한 사람이라도 더 꽂아 넣으려 다투고 있다. 특히 임기 막판의 민주당 측 행보가 분주해졌다. 선거로 뽑히는 각 주(州) 소속 판·검사와 달리 대통령이 임명하는 연방 판사들마저 지난 20~30년간 점차 특정 정치 성향으로 갈리면서 사회 변화의 향방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 결과 세상은 왼쪽으로 크게 기울어졌고, 그에 대한 반발이 2016년 및 2024년 공화당 후보 도널드 트럼프의 대선 승리로 이어졌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첨예해진 세계관·가치관 충돌 속에 ‘사법부의 정치적 중립’이라는 상식이 상당히 퇴색했다. 최근 몇 년 낙태권·동성혼 등 쟁점 현안들을 둘러싸고 미 의회가 교착 상태에 빠져 최종 판단이 사법부로 넘어가는 일이 잦아졌다. 일반 미국인 삶에 미치는 법원의 힘이 증대했다는 뜻이라고 24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가 짚었다. 보도에 따르면 민주당 행정부에서 지명된 연방 판사 3인은 상원이 후임을 인준하면 은퇴하겠다고 밝힌 터였으나 트럼프의 대선 승리 이후 돌연 계속 재직하겠다며 말을 바꿨다.

이들의 은퇴로 공석이 생기면 트럼프가 취임 후 공화당 성향 판사들을 지명할 전망이었으나 차질이 생겼다. 미 연방 판사는 종신직이라 중대한 과오를 저질러 탄핵 당하거나 건강 등 개인적 사유를 들어 스스로 물러나지 않는 한 교체할 수 없다. 1789년 미 헌법 제정으로 연방 법원이 설립된 이래 소속 판사가 탄핵 소추 당한 예는 1804년 딱 한 번뿐이다. 민주공화당(1792~1824 현 민주당·공화당 전신)이 사법부 내 연방당 세력을 약화시키려는 당파적 목표 아래 추진된 탄핵이었으며 2년 후 상원에서 기각됐다.

현재 미국의 연방 판사로 대법원 9명, 항소법원 179명, 지방법원(해외 미국령 법원 포함) 677명, 연방 청구법원 16명, 국제무역법원 9명 등이 있으며 이들 연방 판사 총 숫자는 시대 흐름에 따라 변동이 있을 수 있으나 제헌의회가 정한 종신직 원칙은 흔들림 없이 유지됐다. 권력이나 여론에 휘둘리지 말고 오로지 법과 양심에 따라 재판하라는 취지였다.

이번에 은퇴 입장을 번복한 판사들을 공화당이 비판하며 이런 사례에 향후 윤리문제가 제기될 가능성을 경고한 가운데, 바이든 대통령은 23일(현지시간) 미 전역에 연방 판사직 신설을 위한 이른바 ‘판사법’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민주당 우위 상원을 지난 여름 만장일치로 통과한 법안을 대통령이 거부한 이례적 상황이 벌어진 셈이다. 판사 부족에 따른 재판 지연 등의 문제를 해소하고자 2035년까지 전국에 연방판사직 66개를 순차 신설하는 내용의 법안이었다. 그대로 발효됐다면 66명 중 최소 25명이 트럼프 지명에 의해 상원 심의에 올라갔을 것이다.

이 문제를 둘러싼 양당 처지가 트럼프 대선 승리 후 드라마틱하게 뒤바뀌었다. 대선 투표일인 11월5일 이전엔 하원에서 공화당이 법안 처리를 반대한 바 있다. 당시 공화당은 바이든정부 하에서 새로 판사가 지명·임명되지 못하도록 하려 한 것이다. 하지만 2024 대선을 통해 공화당이 백악관 탈환은 물론 상원·하원 다수당 확보와 주지사 수도 늘리자 이번엔 민주당이 판사 인준에 속도를 냈다. 바이든에게 이미 지명된 인사를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이 임명시키기 위해서다.

지금은 인준 권한을 보유한 상원의 다수당이 민주당이지만 내년 1월초 시작될 새 임기에선 이번 대선과 함께 치뤄진 연방의원 선거 결과에 따라 공화당 쪽으로 다수당 지위가 넘어간다. 공화당은 바이든에게 지명된 판사들 인준에 제동을 걸 게 뻔하다. ‘제동 걸기’ 수준을 넘아 사실상 ‘필사 저지’가 될 수 있다. 상원은 20일 판사 두 명의 인준을 마쳤고 이에 따라 바이든 재임 기간 중 판사 235명이 임명됐다. 트럼프 첫 임기 때 임명한 숫자보다 한 명 많다고 WP가 지적했다.

판사 지명 시점에서부터 해당 정권의 경향이 강하게 반영되며, 임명 후엔 판사 역시 자신을 임명한 행정부 입맛에 부합한 판결을 내는 추세가 늘었다. 그럴수록 집권 중에, 다수당 위치일 때, 판사를 한 사람이라도 늘리고자 양당 모두 적극 움직이게 된 것이다. 지난달 공개된 갤럽 여론조사에서 연방 사법 체계에 대한 미국인의 신뢰도는 지난 4년간 59%에서 35%로 24%p나 하락했다. 미얀마·베네수엘라·시리아 등과 비슷한 수준이다.

임명신 기자 imms@skyedaily.com 기자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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