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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과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지난 15일 각각 광복절 경축사와 패전일 전몰자 추도사를 통해 “미래”와 “반성”을 키워드로 내세우면서 오는 23~24일 도쿄 정상회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양국 정상이 수교 60주년을 맞아 협력 의지를 드러내자 일각에선 ‘제2의 김대중–오부치 선언’ 가능성까지 거론된다.
18일정치권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광복 80주년 경축사에서 “일본은 경제 발전에 있어 떼려야 뗄 수 없는 동반자”라며 징용·위안부 등 민감한 사안은 직접 거론하지 않았다. 대신 미래지향적 협력을 강조하며 셔틀외교 복원을 공언했다.
같은 날 일본 패전 80주년 추도사에서 이시바 총리는 “전쟁의 참화를 결단코 되풀이하지 않겠다”며 “전쟁의 반성과 교훈을 다시 가슴 깊이 새겨야 한다”고 밝혔다. 2012년 이후 끊겼던 ‘반성’ 표현을 되살린 것이다. 온건파로 평가받는 이시바 총리가 자민당 내 강경 보수의 반발을 무릅쓰고 발언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이 같은 메시지에 대해 17일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언론에 “이시바 총리가 13년 만에 ‘반성’을 언급했다”며 “이 대통령이 과거사 문제를 직접 거론하지 않은 것도 상호 배려 차원”이라고 해석했다.
1998년 김대중–오부치 선언은 일본의 ‘사죄’와 한국의 ‘미래지향’ 메시지를 맞교환하며 한일관계의 새로운 전기를 열었다. 올해 한일수교 60주년을 계기로 유사한 선언이 나올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지만, 일본 내부 정치 지형은 여전히 불안하다.
특히 지난 7월 참의원 선거 참패로 퇴진 압박을 받고 있는 이시바 총리가 조기 중도 하차할 경우, 차기 자민당 총재·총리 후보로는 고이즈미 신지로 농림수산상과 다카이치 사나에 전 경제안보상이 거론된다.
고이즈미 신지로 장관은 전 총리 고이즈미 준이치로의 아들로, 자민당 내에서 높은 대중적 인기를 바탕으로 차세대 리더로 주목받고 있다. 그는 올해 8월 15일에도 도쿄 지요다구 야스쿠니신사를 직접 찾아 참배했다. 이는 ‘아베파’ 등 보수층의 지지를 의식한 행보로 풀이된다. 고이즈미 장관은 지난해에도 같은 날 신사를 찾아 고개를 숙였으며, 일본 언론은 이를 두고 “젊은 개혁 이미지와 달리 전통 보수층의 입장을 철저히 대변했다”고 평가했다.
다카이치 사나에 전 경제안보상은 자민당 내 대표적인 극우 보수 정치인으로 ‘여자 아베’라는 별칭으로 불린다. 그는 일본회의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며 아베 신조 전 총리와 마찬가지로 야스쿠니 참배를 매년 이어왔다. 올해도 패전일에 직접 참배했으며, 기자들에게 “전몰자의 영령에 경의를 표하기 위해 매년 참배해 왔다”고 밝혔다. 다카이치는 헌법 개정, 자위대 위상 강화, 역사 교과서 수정 등 강경한 안보·역사관을 공공연히 주장해 왔다.
이처럼 고이즈미와 다카이치 모두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공개적으로 이어온 전력이 있어, 만약 이들이 이시바 총리의 후임으로 집권한다면 한일관계는 다시 경색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에 대해 한국 외교부는 15일 공식 성명을 내고 “일본의 책임 있는 지도급 인사들이 또다시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거나 공물을 봉납한 데 대해 깊은 실망과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강창일 전 주일대사는 이날 KBS와의 인터뷰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실용주의 외교를 지향하는 인물”이라며 “이시바 총리도 과거사를 정확히 이해하는 드문 파트너”라고 평가했다. 그는 “투트랙이 아니라 멀티트랙 접근이 필요하다”며 경제·안보·정치·과거사를 병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회담을 계기로 양국 외교·국방 장관이 동시에 참석하는 ‘2+2 장관급 협의체’ 신설 또는 기존 협의체의 격상 논의가 주목된다. 현재 한국과 일본 사이에는 1997년 출범한 ‘한일 안보정책협의회’가 존재하지만, 이는 외교부와 방위성의 국장급 실무자 선에서 열려 왔다. 이 협의체는 양국 관계가 악화되면 쉽게 중단되고, 개선되면 재개되는 식으로 불안정하게 운영돼 왔다. 실제로 2018년 강제징용 판결 이후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가 이어지자 협의체는 수년간 열리지 못했고, 2023년 4월 한일 정상회담 후 5년 만에 재개된 바 있다.
외교가 안팎에서는 북한의 미사일 위협과 미군이 한반도와 일본에 동시에 주둔하고 있다는 공통 안보 현실을 감안할 때, 단순 국장급 협의로는 전략적 조율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현재 한국은 미국·호주와 각각 장관급 2+2 협의체를 운영 중인데, 정작 가장 가까운 이웃 일본과는 국장급에 머물러 있는 점이 “비정상적”이라는 평가다.
전문가들은 장관급 2+2가 신설될 경우 △주한미군과 주일미군의 역할 조율 △미국의 확장억제 전략과 연계한 한일 공조 △자위대 능력 강화에 따른 협력 범위 설정 △사이버·우주 등 신안보 영역 협력 논의 등 고위급 차원에서만 다룰 수 있는 의제들을 논의할 수 있다고 본다.
다만 국내에서는 여전히 역사 문제와 군사협력에 대한 거부감이 강해, 장관급 협의체 격상이 ‘한미일 군사동맹’으로 비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그럼에도 한 안보 전문가는 “중국 견제를 위한 틀로만 비치지 않도록 관리한다면, 오히려 장관급 2+2는 한일 간 소통의 부족을 메우고 오해를 줄이는 창구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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