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기의 시사&이슈] ‘공화주의 사상’ 바로 세우는 것이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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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진로는 ‘최고 권력자’ 지시 아니라 국민 뜻으로 결정
국민 마음에 공화주의 사상·덕성 심는 것이 개헌보다 중요

최재기 필진페이지 + 입력 2024-05-30 06:31:40

최근 대한민국에는 호떡집에 불난 것처럼 지식계급의 무책임한 주장들이 난무한다. 제7공화국을 세워야 한다느니 87년 정치체제가 붕괴했다느니 헌법을 개정해야 한다느니 하는 통에 지켜보는 국민은 어지럽다.

“국가 진로를 결정하는 최고 권력이 어디 있는지 애매모호한 나라는 위험하다. 위기가 닥쳐도 극복할 주체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까딱하다간 등쳐 먹기 좋은 나라 신세가 된다. 26~27일 한국·일본·중국 3국 정상회담이 서울에서 열린다. 일본·중국 수뇌의 눈에 한국 정정(政情)이 어떻게 비칠까.

(…) 한국은 정치 때문에 경제가 주저앉고 무너진 경제 때문에 정치 혼란이 되풀이되는 남미행 악순환 열차표를 끊었다. 87년에 만든 헌법 위에서 한국 정치는 이미 붕괴했다. 여야가 개헌 문제를 ‘국가도 살고 너도 살고 나도 사는 차원(次元)’에서 접근해 볼 때가 됐다. 두 손 놓고 함께 죽기만을 기다릴 수는 없는 것 아닌가.”(강천석 칼럼 조선일보 2024.5.25.)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최고 권력은 국민에게 있다고 헌법에 규정돼 있다. 민주공화국은 봉건 왕정이나 전체주의 국가처럼 국가 진로를 결정하는 ‘최고 권력자’가 따로 없다. 모든 공직자는 헌정주의와 법의 지배·권력분립 원리의 공화주의 정신에 충실하게 각자 맡은 바 직무를 수행하면 된다. 입법부는 국민의 요구를 살펴 법을 만들고, 행정부는 법에 근거하여 공정하고 효율적으로 업무를 집행하고, 사법부는 이 과정들에서 헌법 정신에 어긋나는 것이 없는지 법과 양심에 따라 심판하면 된다.

국가는 외적을 방어하고 구성원들 간 부정과 억압을 막고 공공사업과 공공시설 등으로 국민의 경제활동을 도우면 국민은 각자의 위치에서 성실히 생산하고 거래하여 나라를 발전시킨다. 국가 전체의 진로는 ‘최고 권력자’의 지시에 의해서가 아니라 국민의 뜻에 따라 구성된 국가기관 간 견제와 균형의 원리에 맞춰 조절하면 된다.

인간 문명의 발전은 그에 걸맞은 인간 정신의 발전과 함께해 왔다. 봉건 신분 질서에서 해방된 자유로운 개인을 바탕으로 성립된 근대 공화국은 근대 공화주의 정신을 바탕으로 산업 문명을 발전시킨 것이다.

공화국의 국민은 전제정 아래 인민처럼 힘 있는 자의 자의적 권력에 복종하며 생활하는 게 아니라 제도화되어 공포된 법규범에 따라 생활한다는 점에서 훨씬 큰 규모의 사회적 신뢰를 전제로 한다. 사회 내 믿음의 범위와 정도가 큰 사회일수록 고급 사회다. 전제정이나 전체주의는 저급한 정신 수준의 인민을 대상으로 구축된 정치·경제 체제이고, 공화정과 시장경제 체제는 고급 정신 수준을 가진 인민이 선택한 고급 정치·경제 체제이다.

이런 고급 정치·경제 체제를 지키려면 나라의 구성원 모두가 민주공화정과 시장경제 체제에 대한 교양과 지식을 갖춰야 한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독립한 우리 민족은 미처 공화주의 정신을 함양하지 못했음에도 다행히 이승만과 박정희라는 걸출한 지도자를 만나 자유민주주의를 정립하고 산업화에 성공하여 근대 민주공화국을 발전시켰다.

21세기는 지식경제 시대다. 노동이 가치의 원천이던 19·20세기와 달리 지식이 경제적 가치의 원천이 되는 시대라는 뜻이다. 노동가치설과 프롤레타리아독재 이론에 근거한 공산 전체주의 정치·경제 체제는 원천 지식과 기술을 생산하기 어려워 도태될 것이다.

낡은 전체주의 국가의 지배 세력이 권력을 지키기 위해서는 공화주의 국가들로부터 원천 지식과 기술을 훔치거나 탈취해야 한다. 바로 이것이 신 냉전의 배경이다. 산업화에 성공한 한국이 지식경제 시대에도 발전하려면 공화정과 시장경제 체제를 확고히 정립하고 같은 가치를 추구하는 선진 지식경제 동맹국들과 연대하는 길밖에 없다.

우리 사회가 혼란스러운 것은 국민이 공화주의 사상을 바르게 정립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시장경제를 부정하고 대한민국을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나라라고 가르치는 일부 교과서부터 당장 바로잡아야 한다. 주체사상이나 숭중(崇中) 사회주의에 경도된 언론기관 종사자나 교수 등 일부 반역적 지식계급의 선동을 깨부수는 정치사상 투쟁을 광범위하게 전개해야 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자유에는 책임이, 선택에는 대가가 따른다. 이번 총선의 선택으로 자산이 없는 서민과 영세 자영업자들의 경제적 어려움은 더욱 가중될 것이다. 경제뿐 아니라 법치가 실종되고 사회 도덕률·국민 의식도 추락했다.” (윤증현 인터뷰 조선일보 2024.5.27.)

국민의 의식과 정신은 그대로인데 개헌한다고 고급 공화주의 국가나 국민이 되는 것은 아니다. 국민의 마음에 공화주의 사상과 덕성을 바르게 세우는 것이 개헌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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