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경 연재소설 ‘위선의 시대’ [60] 그해 가을, 일감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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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경 필진페이지 + 입력 2025-03-11 06:30:27

총학생회에서 오더가 떨어졌다. 농반·탈반·산악회·연극반 할 것 없이 동아리 소속 학우들은 10월 마지막 주 화요일에 있을 건국대 애국학생투쟁연합 결성식에 참여할 준비를 마쳤다. 시위·집회 등은 동아리를 통해 조직적으로 동원되기 때문에 일반 학생들은 어디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없었다.

여러 갈래로 분열되어 있던 학생운동권은 분열과 반목을 멈추고 투쟁 방향을 반미 자주화·반파쇼 민주화·조국통일투쟁으로 재설정했다. 애학투련 발족식을 거행하는 것은 대규모 연대 투쟁을 전개할 목적에서였다. 기순이 승연에게 동지로서 함께하자고 했다. 승연이 기순에게 동지라고는 했지만 문제 속으로 같이 들어가자는 의미는 아니었다. 승연에게 동지란 어려움에 처한 친구 곁을 지킨다는 뜻이었다.

태주는 정문 앞에 있었다. 그는 제1조 전투 선봉대장이었다. 백골단이 들어오는 걸 막는 임무였다. 잘 훈련된 백골단과 싸우려면 태주 같은 선수가 나서야 했다. 주로 외부에서 활동하고 있었던 태주는 애학투련 결성식 전날 밤 오산에 갔다가 건국대 백골단 제1조 전선대를 진두지휘하라는 택을 받았다. 화염병은 세종대학교·경희·건국·한양대가 만들었다.

그는 오산 캠퍼스에서 100여 명을 이끌고 정문 앞 50m 지점에서 동향을 살피고 있었다. 건대 주변엔 수많은 경찰 병력이 학교를 에워싸고 있었다. 경찰은 시위 정보를 알고 있었지만 출입을 통제하진 않았다. 제16회 가을 국화전 관람객들도 학교 안팎을 오갔다. 그는 상황이 시위대에 좋지 않게 전개되고 있다고 판단했다.

경찰은 토끼몰이로 시위대를 건물 안으로 몬 다음 체포할 계획이었다. 태주는 학교에서 시위 전력이 있거나 구류를 받거나 전과가 있는 동지들은 빼자고 했다. 만약 이번에 대거 달리면 캠퍼스에 남아 있는 학생이 거의 없을 거라 생각했다. 정부 방침은 전원 구속이었다. 특히 전과 있는 선수들이 잡히면 구속은 피할 수 없었다. 운동권이 무너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본관 앞에 2000여 명이 모여 있었고 태주는 정문 쪽에서 한참 떨어진 곳을 지키고 있었다.

대규모 경찰이 학교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하자 태주는 막으면서 물러나는 상황이 됐다. 집회하던 시위대는 사회과학관이나 학생회관 건물로 흩어졌다.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경찰은 학생들에게 최루탄과 사과탄을 쏘며 서서히 진격했고 학생들은 저항했다. 일부는 일감호로 뛰어들었다. 건대 외부까지 경찰로 둘러싸인 마당에 시위대가 도망갈 곳은 없었다.

독 안에 든 쥐 형상이었다. 태주는 민중병원 쪽 탈출로를 생각했다. 병원에 최루탄을 쏘진 않을 것이고 환자들이 드나드는 곳이라 그쪽은 틈이 있을 게 분명했다. 일단 퇴로를 확보하고 지대가 높은 건대역으로 가서 상황을 봐야 했다.

본관 쪽으로 도망치던 전투선봉대 일부는 동부경찰서에서 민중병원 방향으로 경찰이 넘어오는 걸 보았다. 전선대에서 낙오된 3·40명을 데리고 경찰과 싸우며 밖으로 나갈 기회를 엿봤다.

[글 박선경 일러스트 임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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