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대장동 배임 사건 재판에 증인으로 다섯 번이나 불출석했지만, 법원은 끝내 이 대표의 증인 신문을 포기했다. 법정 출석을 거부해도, 과태료 부과에 이의 제기만 하면 되는 세상이다. 형사소송법상 강제구인과 감치도 가능하지만, 재판부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이유를 들어 손을 들었다. 유력 정치인의 권세 앞에 대한민국 사법부는 구차하다 못해 안쓰럽게 보일 지경이다.
법원이 언급한 ‘현실적인 어려움’은 불체포특권, 과태료 확정 전 이의 제기 등이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법적 절차일 뿐이다. 그 절차를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사법부의 진정한 책무다. 불출석 5회에 과태료 부과 두 번, 그것도 300만 원, 500만 원이라는 ‘벌점’ 수준의 처벌로 끝난 상황에서 “기다릴 수 없다”며 손을 놓아버리는 법원. 국민 누구라도 상상해보라. 증인으로 채택되고도 법정에 다섯 차례 불출석했다면, 일반 시민에게도 똑같은 인내심과 관용이 적용됐을까.
더구나 이재명 대표는 “법정에서 모두 밝히겠다”고 말한 당사자다. 수사에서 진술을 거부하고, 법정에서 해명하겠다던 인물이 정작 법정 출석은 거부하고 있다. 이는 명백한 절차 지연이자 법원 권위에 대한 정면 도전이다. 그런데도 사법부는 “재판이 길어지고 있어 기다릴 수 없다”며 사실상 항복을 선언했다. 이쯤 되면 법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사법부가 누구의 눈치를 보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검찰은 강하게 반발했다. “헌법과 법률을 무시하는 증인 앞에서 사법부가 법 적용을 포기했다”고 했다. 적어도 검찰은 최소한의 원칙을 지키려 했다. 법원은 그 원칙조차 지킬 의지가 없어 보였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사법부가 이 대표가 유력 대선 주자라는 점을 고려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설령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 해도, 그렇게 보일 정도로 사법부는 스스로의 존엄을 포기한 것이다.
법원은 정치적으로 민감한 인물 앞에서 자주 ‘현실론’을 들먹인다. 그러나 그 현실론은 일반 시민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권력자 앞에서는 몸을 사리고, 평범한 사람 앞에서는 냉정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 이중적 태도는 사법부의 존립 근거 자체를 허물고 있다.
이 대표는 자신의 재판에서는 요리조리 피해 다니면서, 공공연히 “내란 종식”을 말하며 정적들에 대한 수사 드라이브를 선포하고 있다. 정치적 반대편을 향해 특검을 운운하면서도 정작 본인은 법정에조차 얼굴을 비추지 않는다. 그런데 사법부가 이런 행태에 면죄부를 주고 있는 셈이다.
무너지는 것은 단지 법정의 질서만이 아니다. 국민의 법 감정, 사법 정의에 대한 신뢰,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최소한의 믿음마저 사라지고 있다. 법원이 현실을 핑계로 침묵과 포기를 선택할수록, 법정은 권력을 향한 비굴함의 상징으로 남게 될 것이다.
지금 사법부는 그 어느 때보다도 존재 이유를 증명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그 존재 이유는 ‘대선 주자 눈치 보기’도, ‘정치적 파장 회피’도 아니다. 바로 법 앞의 평등과 절차적 정의다. 이것마저 지키지 못한다면, 법원의 판결은 더 이상 정의가 아니라 변명에 불과하다. “기다릴 수 없다”는 재판부의 말은 곧, 이 시대 사법의 패배 선언이다. 그리고 그 패배는 모든 국민의 권리와 자유의 퇴각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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