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여대생 성폭행 사망사건 추적한 아빠의 집념… 신간 ‘아빠의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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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부실 수사로 27년 고통… 아빠는 오늘도 재수사 촉구

임유이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25-08-02 17:55:22

“무려 27년이 흘렀지만 살인자는 검거되지 않았고 그 누구도 처벌받지 않았다. 그때 그 사건은 단순한 미제 사건이 아니다. 조작과 은폐를 묵인한 국가의 직무 유기 사건이다.”

‘대구 여대생 성폭행 사망 사건’ 피해자 고 정은희 씨 아버지 정현조 씨가 ‘아빠의 전쟁’(위트)을 출간했다.

전교 1~2등을 놓치지 않았던 딸은 학교에 다녀온다고 나갔다가 다음 날 싸늘한 주검이 돼 돌아왔다. 성폭행 흔적이 있었고 시신은 훼손된 상태였다. 고인의 아빠는 경찰을 믿었다. 그러나 경찰은 딸의 죽음을 단순 교통사고로 몰아갔다.

아빠는 끝까지 사인을 밝히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동분서주했으나 사건은 해결되지 않았다. 딸의 죽음으로부터 27년이 흘렀고 아빠는 70대 중반의 노인이 됐다. 그러나 그는 아직 포기하지 않고 있다.

정씨는 책에서 지금이라도 다시 재수사가 시작되고 다시 재판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은희의 한을 풀어주는 것은 물론이고 앞으로도 있을 또 다른 은희, 또 다른 나와 같은 아빠가 있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책은 사건 발생부터 현재까지의 이야기를 상세하게 전한다.

딸 정은희는 1998년 10월16일 학교 축제에 갔다가 이튿날, 구마고속도로(현 중부내륙고속도로)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은희 씨가 23t 덤프트럭에 치여 숨졌다고 전했다. 사고 현장에서 30여ｍ 떨어진 곳에서 고인의 속옷이 발견됐지만 경찰은 단순 교통사고로 결론지었다.

아빠는 항의했다. 차가 급정거하면 반드시 스키드마크(skid mark)가 남아야 하는데, 현장엔 전혀 그런 흔적이 없었다는 점, 덤프트럭에 부딪혀 사망했는데도 내부 장기 파열이 없었다는 점, 애초 발견된 시신에 속옷이 없었고, 추후 사고 현장 주변에서 발견됐다는 점 등을 근거로 교통사고가 아닌 강간 살인 사건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결정적 증거인 범인의 DNA가 담긴 속옷이 경찰 수사 과정에서 훼손됐다는 점도 지적했다.

“교통사고가 있기 전에 이미 은희는 사망했고, 그 사망을 은폐하기 위해 교통사고로 위장, 조작했다. 그런데 나중에 경찰이 국과수에 넘긴 은희의 속옷이 불에 탄 것처럼 검게 훼손되어 있었다. 내가 처음 찾아낸 속옷의 상태와는 완전히 달랐다.”

경찰의 부실 수사 속에 사건은 흐지부지됐다. 유족들은 끈질기게 문제를 제기했다. 검찰이 2013년 재수사에 나서 스리랑카인 K를 기소했으나 증거 부족 등의 이유로 1심과 2심에서 잇달아 패소했다.

“검찰이 지목한 스리랑카인 K는 다른 성폭행 사건에 연루된 적이 있지만 이번 사건의 진범은 아니다.”

▲ 정은희 양의 아버지 정현조가 신간 ‘아빠의 전쟁’을 출간했다. 연합뉴스

딸의 죽음 후 20년 가까운 세월이 흘러도 진척이 없자 정씨는 2017년 6월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1심에서 유족에게 5500만 원을, 2심에선 위자료를 상향해 7500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시했다.

서울고법 민사15부는 “경찰이 단순 교통사고로 성급히 판단해 현장 조사와 증거 수집을 하지 않고 증거물 감정을 지연해 극히 부실하게 초동수사를 한 것은 위법이다”고 판단했다.

승소했지만, 변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범인은 여전히 잡히지 않았고 유족의 고통은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씨는 제3의 범인이 있다고 추정하면서 재수사를 촉구하고 있다.

임유이 기자 lye@skyedaily.com 기자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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