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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이 18일(현지시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동부전선 내 미군 병력을 줄이지 않겠다는 미국 측 확답을 받았다고 밝혔다. 자국에 주둔 중인 미군 8000명(유럽 전체 8만 명)을 안보 및 번영의 전제 조건으로 삼아 온 폴란드로선 중대 사안이 아닐 수 없다. AP·AFP통신에 따르면 두다 대통령은 이날 바르샤바를 방문한 키스 켈로그 미 대통령 특사를 만난 뒤 취재진에게 “미국이 우리 지역(동유럽)에서 안보 분야 활동을 축소하거나 미군을 감축할 의도가 전혀 없다”며 이렇게 말했다.
우크라이나 정전협상을 위해 미국과 러시아가 직접 대화를 개시하자 유럽연합(EU) 주요국들이 한층 긴장한 채 동유럽 미군 감축 논의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피트 헤그세스 미 국방장관이 14일 폴란드 방문 시 “(유럽)대륙 내 미군 주둔은 견고하다. 단 이곳의 미국 존재가 영원할 것으로 가정할 순 없다”고 언급한 상태다.
그간 우크라전쟁을 둘러싼 시나리오 중 주류 언론이 언급을 꺼려 온 쪽에도 관심을 가져야 할 시점이다. 우크라의 소멸 가능성에 관한 것이다. 이미 러시아 지배 하이거나 조만간 그렇게 될 우크라 동남부 4개 주가 러시아 땅으로 인정되면 우크라는 분할의 길목에 들어설 수밖에 없다. 분할 정도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해체될 여지도 배제할 수 없다고 보는 전문가들이 있다.
이런 가운데 미국으로선 친미 성향이 강한 폴란드의 몸집을 키울 이유가 충분하다.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이후 EU 내 존재감 3위국으로 부상한 폴란드를 잘 관리하면 러시아 견제뿐만 아니라 미국에 고분고분하지 않은 독일·프랑스까지 일정 수준 제어할 수 있다. 독일과 역사적 원한이 깊은 폴란드를 유럽 통제에 유용한 지렛대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 다수의 전문가들이 공감한다. 무엇보다 우크라 분할이 러시아를 중국 품으로부터 분리해 대(對)중국 봉쇄 전선의 일원으로 끌어들일 묘수가 될 수 있다는 시각이 눈길을 끈다.
폴란드는 18세기 후반 러시아·프로이센·오스트리아에 세 차례(1772·1793·1795) 분할돼 총 123년간 지도에서 사라진 적이 있다. 그런 폴란드가 우크라 소멸의 결정적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최측근 드미트리 메드베데프(통합러시아당 대표, 국가안보회의 부의장)가 재작년 3월 언론 인터뷰에서 “전쟁이 끝날 때쯤 우크라는 사라질지 모른다”고 한 게 허황된 호언이라고만 볼 수 없는 게 국제정치의 비정함이자 삼엄함이다.
러시아 전문가 홍완석 한국외대 교수는 전쟁 발발 1주년인 2023년 3월 한 강연에서 “러시아·폴란드가 불구대천 관계긴 하지만 우크라전쟁이 양국의 타협을 요구하는 방향으로 전개돼 여기에 주변 강대국 이해관계를 담은 거래가 성사되면 갈리치아(우크라 서부와 폴란드 남부 통칭)가 폴란드 영토로, 나머지는 러시아로 들어갈 가능성”을 짚은 바 있다. “러·폴이 실리를 위해 우크라를 분점·병합 후 상호불가침 약속을 하면 전쟁 종식과 우크라 소멸”이라고 본 것이다.
옛 소비에트연방(소련) 출신국들 중 조지아(옛 그루지아)의 경우 비록 국명을 아예 영어풍으로 바꿔버릴 만큼 친서방이지만, 그 내부의 압하지야·남오세티야, 몰도바의 트란스니스트리아 등 친러 성향 자치공화국들을 크림반도 합병 때처럼 러시아연방 일원으로 하나씩 되찾아 나갈 꿈이 러시아에겐 상존한다. 러시아가 역사적·안보적·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미콜라이우·오데사 공략의 유혹을 뿌리치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그런 배경 때문이다.
우크라 서부에 대한 폴란드의 야망을 고려할수록 ‘우크라 분할’ 시나리오는 현실성을 가진다. 이 지역에 역사적 연고가 있는 루마니아·헝가리까지 표정 관리를 하며 우크라 전황을 예의주시해 왔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전승국 소련은 폴란드로부터 동갈리치아, 루마니아에서 부코비나 북부와 남베사라비아, 헝가리로부터 자카르파티아를 얻었다. 특히 자카르파티아는 이때 처음 러시아 지배권에 들어갔다. 이들 지역이 현 우크라 서부다
우크라 서부에 연고를 가진 세 나라 중 폴란드는 대국 열망이 가장 강한 나라로 꼽힌다. 우크라 서부 5개 주가 과거 폴란드 영토였기에 폴란드계 주민이 많으며 언어적 친연성도 상당하다. 우크라이나어가 어휘적으론 러시아어보다 폴란드어에 가깝다고 한다. 전쟁 발발 직후 폴란드는 우크라 서부 국경을 개방해 인적 왕래를 자유화했다. 유럽연합(EU) 회원국 가운데 난민 수용을 가장 강력하게 거부해 온 폴란드가 우크라 난민을 적극 받아들인 것이다.
재작년 기준 폴란드 내 우크라인이 약 220만 명이다. 이들에게 영주권·일자리·교육 및 병원 이용 등 각종 편의와 지원을 제공하면서 갈리치아 지역이 폴란드로 편입되는 정서가 강해졌다고 지적된다. 반면 우크라는 소련 해체 이래 지난 30여 년 외엔 현대적 의미의 주권국가(네이션스테이트)를 가져 본 적이 없다. 그래서 러시아가 그렇듯 폴란드 역시 우크라를 국가로 진지하게 여기지 않는 편이다. 우크라전 참전 국제의용군 중 폴란드 국적자가 가장 많으며 폴란드의 국방비 증액 또한 예사롭지 않다. 나토 평균 국방예산이 국내총생산(GDP)의 2%를 밑돌던 시절 폴란드만 2.42%였고 2023년 4%를 기록했다.
폴란드는 2025년 5%까지 확대할 방침을 밝혔으며 이후 25만 명 정예병과 예비군 5만 명 육성 계획도 발표됐다. 이게 실현되면 폴란드는 나토 동맹국 중 경제규모 대비 국방예산 최대치이자 EU 최강 군사력으로 발돋움한다. 트럼프의 기대와 맞아 떨어진다. 한국 방위산업이 국제 무기시장 메이저 리그에 진입하게 만든 고객 명단 제일 위쪽에 폴란드가 있다. 두다 대통령은 2022년 12월 K무기 첫 물량 도착 당시 항구까지 마중나와 국방력 강화의 진심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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