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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국어원은 자아분열 하고 있다. 이들은 X(구 트위터)에서 계란과 달걀의 차이점을 묻는 질문에 “계란(鷄卵)은 순우리말인 ‘달걀’로 다듬어 쓰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힌 적이 있다.
만약 한자어를 순우리말로 바꾸는 것이 ‘바람직’하다면 본인들 이름부터 ‘나라말 다스림터’ 정도로 바꿔 쓰는 것이 옳다. 스스로의 이름도 ‘바람직’하지 못한 국립국어원이 한자어를 순우리말로 바꿔 버리는 것은 ‘메타인지’ 부족 증세로 보인다.
이와 같이 앞뒤 안 맞는 ‘언어 순화’는 우리 일상에서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다. 일례로 얼마 전 ‘바디 프로필(Body Profile)’을 ‘몸매 인증 사진’으로 ‘순화’한 사실이 알려져 ‘누리꾼’들의 비웃음을 산 바 있다. ‘혈당 스파이크(spike)’를 ‘혈당 급상승’이라는 말로 바꿔 좋은 평가를 얻었다며 자화자찬하는 모습엔 헛웃음까지 나온다. ‘spike’라는 영어 단어의 ‘못처럼 뾰족하게 튀어나오는’ 어감을 파괴하고는 우리말로 훌륭히 ‘순화’했다고 자축하는 건 분명 황당하다.
특히 일본어에 대한 국립국어원의 ‘순화’는 집착에 가깝다. 멀쩡한 ‘스시’를 ‘초밥’으로, ‘우동’을 ‘가락국수’로, ‘오뎅’을 ‘어묵’으로 바꿔 버렸다. 이 강박증은 ‘와사비’를 전혀 다른 식물인 ‘고추냉이’로 바꿔 버리는 데에 이른다.
심지어 언어 순화의 칼날을 마구 휘두르던 국립국어원은 ‘닭도리탕’을 ‘닭볶음탕’으로 바꿔 버렸다. 왜냐하면 ‘올바른’ 우리말을 규정하는 국립국어원에서 ‘도리’가 일본어 ‘鳥(토리·닭)’에서 유래했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엔 명확한 근거가 없다.
지금까지 살펴봤듯이 이들의 ‘순화’에는 명확한 기준조차 없다. 한자어 계란을 달걀로 바꿔 버리더니, 일본어 스시는 ‘초(醋)’밥으로 바꾼다. 한마디로 ‘제멋대로’다.
이와 같은 행위들은 ‘검열’이라고 불러야 한다. 언어 순화의 근거가 있고 없고가 중요한 게 아니다. 문제는 국립국어원이 ‘옳은’ ‘바람직한’ ‘순수한’ 표현을 정하고 있다고 스스로 믿는다는 것이다. 기관에서 발행한 한 보고서에는 “국민의 언어 생활의 모범이 되어야 할 신문 기사가 부적절한 낱말과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국민의 언어 생활을 혼탁하게” 하고 있으며, 이에 언어 길잡이를 제공해 “신문 기사가 지금보다 훨씬 바르고 쉽고 품위 있게 변할 수 있도록 유도하겠다”고 한다.
아무리 국립국어원의 규범들이 의무 사항이 아니라고는 해도, 매체들은 이를 쉽게 무시할 수 없다. 정부 기관이 법적 근거와 권위를 가지고 ‘올바른’ 가이드라인을 정해 두는데 누가 감히 그 지침을 어겨 ‘바르지 못하고 어렵고 품위없는 기사로 국민의 언어 생활을 혼탁하게’ 하려 들 수 있을까.
이러한 국립국어원의 언어 통제에 익숙해진 탓인지, 한국인들은 외국에서 한국식 표현이 정확히 쓰이지 않을 때 이중 잣대를 들이댄다. 수많은 일본식 외래어를 억지 ‘순화’하면서도 정작 일본인이 한국의 ‘김치’를 ‘기무치(キムチ)’로 부르는 것에 대해서는 민감하게 반응하며 비판한다. 일본어의 발음기호와 일본인의 구강 구조 특성상 ‘김치’를 정확히 표현하지 못할 뿐인데도 말이다. 아마 ‘파오차이’를 먹던 중국인들이 이 모습을 본다면 비웃음을 감출 수 없을 터이다.
모 국립국어원 연구관은 한 인터뷰에서 “언어는 인격이기 때문에, 자기의 언어를 갈고닦으면서 바르게 쓰려고 하는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언어의 ‘올바름’은 누구도 정의할 수 없다. 언어는 변화한다. 여기에는 옳고 그름이 없다. 그 변화에 옳고 그름의 잣대를 들이대며 올바른 언어를 규정하려는 시도에는 ‘표현 검열’의 씨앗이 자라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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