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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부산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은 협력의 순풍을 예고했다. 이재명 대통령과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는 지난달 30일 만난 자리에서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구축 의지를 재확인하고, 저출산·고령화 등 사회문제 대응 협력에도 뜻을 모았다. 그러나 워싱턴에서는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압박이 거세지며 대미 통상 협상이 난항을 겪고 있어, 이른바 ‘국익 중심 외교’를 내세운 이재명 정부가 순풍과 역풍을 동시에 맞는 형국이다.
2일 외교안보가에 따르면 지난달 30일 한·일 정상회담 당시 무엇보다 일본 총리가 처음으로 고(故)이수현 씨 묘역을 참배한 것은 화해와 협력의 상징적 장면으로 기록됐다. 이 대통령은 “과거를 직시하되 미래지향적 협력을 계속해야 한다”며 이시바 총리의 행보를 높이 평가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회담이 “셔틀외교의 복원”을 넘어 “국익의 접점을 실질적으로 확인한 계기”라고 분석했다.
이번 회담의 특징은 과거사 갈등을 정면으로 다루기보다, 양국이 함께 풀어야 할 현실적 과제를 전면에 내세운 것이다. 한·일 정부는 공동발표문에서 “양국의 공통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긴밀히 협력하겠다”고 밝히며, 2009년 이후 중단됐던 ‘한·일 과학기술 협력 위원회’도 16년 만에 재가동하기로 했다.
일본 자민당의 나가시마 아키히사 의원은 최근 한국 취재진과 만나 “한·일 관계를 묶어주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공통 과제에 공통 작업을 확대해 나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안보·통상 현안을 둘러싼 갈등을 완화하면서 협력의 동력을 키우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반면 워싱턴에서는 먹구름이 짙게 깔렸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공개 발언에서 “한국산 철강과 배터리, 반도체가 미국 산업에 불공정한 피해를 준다”며 기존 25% 철강 관세를 넘어서는 추가 고율 관세 가능성을 언급했다. 특히 전기차 배터리와 반도체는 미국 내 제조업 부흥 전략과 직결된 분야라, 바이든 정부 때보다 훨씬 더 직접적인 압박이 가해지고 있다.
이재명 정부는 통상 협상에서 ‘패키지 딜’ 방식을 제안해 관세·투자·에너지 안보 이슈를 한 번에 묶어 해결하려 했지만, 미 행정부는 “사안별 접근이 필요하다”며 뚜렷한 반응을 내놓지 않고 있다. 워싱턴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미 측은 한국의 반도체 대미 수출 확대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관련 보조금 문제를 분리해 다루겠다는 입장이라 협상 속도 자체가 지연되는 상황이다.
경제적 파급 효과는 결코 가볍지 않다. 원달러 환율이 이미 1400원을 돌파한 가운데, 추가 관세가 현실화되면 한국의 수출 경쟁력은 급격히 약화될 수밖에 없다. 한국무역협회 추산으로는 철강·배터리·반도체 3대 품목에 20%대 추가 관세가 부과될 경우 연간 최대 300억 달러의 수출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 여기에 글로벌 투자자 신뢰 하락이 겹치면 외환시장 불안정과 제조업 경기 침체가 동시에 밀려올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결국 한국 정부는 “단순히 한·미 간의 통상 현안이 아니라, 글로벌 공급망 안정과 미국의 대중 견제 전략에도 부합한다”는 논리로 미국을 설득해야 하는 난제를 안게 됐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는 이날 “국민은 바나나 가격 통제보다 원화 가치를 지키고 경제 원칙을 존중하는 대통령을 원한다”며 이 대통령의 국무회의 발언을 직격했다. 그는 “한·미 통상 협상에서 성과가 나지 않으니 자꾸 지엽적인 문제로 시선을 돌리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여권 일각에서도 “대일 외교가 순항하는 것과 달리 대미 협상에서는 국익을 지키기 위한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이 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외교 원칙으로 ‘국익 중심 실용외교’를 천명해 왔다. 이번 한·일 정상회담은 그 원칙이 실질적 성과로 이어진 사례지만, 미국과의 통상·안보 협상이 난항을 겪으면서 외교 기조의 신뢰성은 시험대에 오른셈이다.
부산 회담에서 이 대통령은 “양국 간 의미 있는 협력 성과가 축적되면 현안 대화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선순환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워싱턴에서는 트럼프 행정부의 보호무역주의적 압박이 거세지며 ‘순환’은커녕 ‘역풍’이 불고 있다.
이 때문에 내달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는 이 정부 외교의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잇따라 방한해 연쇄 정상회담이 예정돼 있기 때문이다. 한·일 협력의 순풍과 미중 경쟁의 난기류 속에서, 한국 외교가 어떻게 ‘국익 중심’의 실리외교를 입증할지가 국제사회의 이목을 끌고 있다.
외교가는 “한·일 협력은 일정 부분 성과를 확보했지만, 미국과의 협상에서 성과가 없으면 국민 체감은 ‘외교 실패’로 귀결될 수 있다”고 본다. 특히 트럼프의 관세 정책은 단순한 통상 압박을 넘어 ‘한·미·일 공조 균열’로 비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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