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나 연재소설 ‘최초의 당신’ [223] 창자 빠진 멸치볶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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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한다면 자유로워야 한다

김규나 필진페이지 + 입력 2024-11-29 06:30:39

- 남편이 돌아오기를, 영분은 한 땀 한 땀 수놓으며 기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뭐 이런 한심한 여자가 다 있을까, 참을 수 없이 화가 나는 건 왜였을까요.

저녁이 다 되어서야 그녀는 비를 쫄딱 맞은 강아지 같은 모습으로 별장에 도착했습니다. 대관령에 산사태가 나서 몇 시간이나 길 위에 묶여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러고도 저녁 늦게 터미널에 내려서는 시장에 들러 찬거리를 사 온 것입니다. 저녁이 되어 더욱 거세진 비바람을 맞으며 진창이 된 산비탈을 걸어 올라왔으니, 우산은 쓰나 마나였을 겁니다. 몇 번이나 미끄러졌는지 두부는 뭉개지고 달걀은 깨졌더군요. 영분의 팔다리가 부러지지 않았다는 게 다행스러워 가슴을 쓸어내렸으면서도 나는 왜 이렇게 늦게 왔느냐고 지청구만 늘어놓았습니다. 대신 영분이 십자수를 놓아 만들어 준 외눈 안대를 처음으로 쓰고 식탁에 마주 앉아 그녀와 함께 저녁을 먹었습니다.

“사랑한다면 놓아 줘야 하잖아.”

나는 그녀가 만든 마른 멸치볶음을 씹으며 살쾡이처럼 쏘아붙였습니다. 영분이 젓가락을 손에 든 채로 순하게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래, 사랑한다면 놓아 줘야 하지.”

메아리처럼, 영분은 깊이 생각하는 눈빛을 하고는 멍하니 혼잣말처럼, 자기 손으로 머리를 떼고 창자를 모두 빼낸 멸치볶음을 쳐다보며, 내가 한 말을 그대로 따라 했습니다. 내게 한 말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지만 그녀의 말은 부메랑처럼 날아와 내 심장에 깊숙이 꽂혔습니다. 내가 당신을 떠나야겠다고 결심한 건 아마도 그때였을 것입니다. 당신은 그 액자가 왜 2층 침실 옆에 걸려 있는지 몰랐을 테지만, 나는 그녀의 마음을 한참이나 쓰다듬었습니다. 그리고 약속했습니다.

‘며칠만, 며칠만 기다려 줘요. 당신께 돌려보내 드릴게요.’

내가 미하엘의 사랑을 신뢰했듯 당신이 영분을 사랑하고 신뢰한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당신이 떠난 그곳, 영분이 기다리고 있었겠지요. 이 이야기는 그녀에게서 직접 들으시라고, 아니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당신이 헤아려 그녀의 마음을 꼭 안아 주시라고, 이렇게 뒤늦게 노트에 글을 남깁니다.

에바의 일기는 이제 마지막 한 장만을 남겨 두고 있었다. 나는 읽기를 멈추었다. 내가 일으킨 사건으로 인해 트러스트 미가 발칵 뒤집히는 바람에 에바는, 서울에 도착한 후 건강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휴식하고 월요일에 주결을 만나기로 했던 계획을 하루 더 늦추어야 했다. 결과적으로 그들이 함께할 수 있는 날 중 하루를 내가 빼앗은 셈이었다. 사흘간의 해후. 그리고 영원한 이별. 40여 년, 배우자를 배신하지 않고서도 간직할 수 있었던 서로에 대한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에바는 거짓을 사랑한 적 없어요.’

하운의 말이 떠올랐다. 정수리에 송곳이 박히는 기분이었다. 그제야 나는 노트의 앞장을 펼쳐 에바의 문장을 확인했다.

-신은 고통을 만들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

그다음 페이지를 열었다.

-인간은 가면을 만들었다.

우리가 고통조차 사랑한다는 것을 신에게 증명하기 위해

[글 김규나 일러스트 임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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