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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전 기자는 한 공기업에서 일했다. ‘경영기획처’ 라는 이름의 부서 산하에 5개 팀이 속해 있었는데 각 팀의 팀장은 요일별로 처장의 점심을 챙겼다. ‘당번’ 같은 개념이었다.
한번은 식사를 마치고 온 팀장과 화장실에서 마주쳤는데 발이 저리다고 했다. 이유인즉슨 치마를 즐겨 입던 팀장이 하필 당번 날 처장과 좌식 테이블 석에 앉아 식사하고 온 것이다. 치마를 입고 바닥에 앉을 때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는 사정을 남성인 처장은 번번이 알아차리지 못했다고 했다. 족히 한 시간은 그 자세로 있었을 텐데 생각해 보면 내 발이 다 저리다.
이렇게 내 입장은 고려되지 않고 의무적으로 상사를 ‘모셔야’ 하는 상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내 쪽에서 원해서 자발적으로 ‘선배’와 밥 한 끼 함께하는 경우는 또 어떤가.
일명 ‘간부 모시는 날’은 공직사회에서 오랜 관행으로 이어져 왔다. 하급자들이 순번을 정하고 상급자에게 음식을 대접하는 날로, 주로 상급자가 메뉴를 정하면 같이 식사한 뒤 비용은 하급자들이 부담하는 식이다. 훨씬 적은 임금을 받는 처지에 밥을 사는 것도 부당하다 싶지만 ‘라떼’ 앞세우는 상사를 상대해야 하는 날엔 가시방석에서 돌덩이를 삼키듯 불편한 식사가 될 수밖에 없다. ‘제발 밥이라도 좀 편하게 먹자’ 싶다.
정부가 지난해 11월 처음으로 관련 실태 조사를 벌였는데, 최근 1년 내 간부 모시는 날을 경험한 공무원이 5명 중 1명꼴(18.1%)로 나타났다. 중앙부처·지방자치단체 공무원 15만여 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중앙부처 공무원은 10.1%, 지자체는 두 배가 넘는 23.9%가 간부 모시는 날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또 응답자들은 간부 모시는 날이 지속되는 요인을 ‘관행이기 때문’(37.8%), ‘간부가 인사 및 성과 평가 등의 주체이기 때문’(26.2%) 등으로 꼽았다. 유경험자가 상대적으로 많은 지자체에서는 상당수(40.7%)가 ‘관행’을 이유로 들었고, 중앙부처에서는 후자를 꼽는 경우(37.7%)가 많았다.
행정안전부는 최근 이런 결과를 전국 17개 시·도와 40여 개 중앙행정기관에 공유하고 이 같은 관행이 근절될 수 있도록 협조를 요청하는 공문을 발송했다. 공문에는 MZ세대 공무원들로 구성된 ‘조직문화 새로고침(F5)’이 제안한 ‘조직문화 혁신 10대 권고사항’을 이행해 달라는 내용도 담겼다. 권고 사항에는 △근무 시간 외 무분별한 연락 자제 △상대방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언행 △눈치 야근하지 않기 △의사결정 시 하급자 의견 경청 등도 포함됐다.
이에 더해 국민권익위원회는 5~7월을 간부 모시는 날 ‘집중 신고’ 기간으로 정하고 해당 공직자는 ‘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청탁금지법)’과 공무원 행동강령 등에 따라 처벌한다는 방침이다.
정부가 이렇게 엄중히 칼을 빼든 것은 MZ 공무원의 잇단 퇴직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임용 5년 내 조기 퇴직한 MZ 공무원이 2019년 6600여 명에서 2023년 1만3000여 명으로 증가한 것으로 파악됐다. 낮은 보수에 실망한 신입 공무원이 직장 내 갑질로 인식되는 관행이나 세대 간의 갈등을 겪고 공직을 떠나는 일을 정부가 더 이상 수수방관하지 않고 악습부터 철폐하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다만 ‘밥 정’으로 쌓이는 인정은 계속 살아 있으면 좋겠다. 그것은 이른바 ‘높은 분’들의 인식 개선이 선행될 때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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