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실용주의… “과거사 부각 원치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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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개방40년 신흥공업국… 외교정상화 30여년 韓, 최대FDI국
“미래지향적 효과적 전방위 협력 통해 과거 적대국들과 화해”

임명신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25-04-29 09:10:16

▲ 주한 베트남 대사(2020∼2024년)를 지낸 응우옌 부 뚱 베트남 외교아카데미 교수(왼쪽)와 베트남 전문가 이한우 단국대 아시아중동학부 초빙교수가 26일 연합뉴스와 인터뷰를 가졌다. 연합뉴스

1975년 4월30일 전쟁 종식을 거쳐 베트남은 19세기 중후반 프랑스 식민지배 시작 이래 약 100년 만에 독립 통일국가의 위상을 회복했다. 캄보디아(1978)·중국(1979)과의 전쟁, 사회주의 계획경제 부작용 등으로 경제난을 겪으며 빈곤 상태에 머물다 1986년 ‘도이머이’(쇄신) 구호를 내건 개혁·개방 정책이 시작됐고, 1990년대 이래 연 5∼9%의 고도성장을 이룩하면서 이제 가장 주목받는 신흥공업국이다.

50년 전 1인당 국내총생산(GDP) 100달러 미만의 최빈국이 4600달러 수준의 중진국으로 발전한 것이다. 한 발 앞서 개혁개방에 나선 중국에 비해 1인당 국민소득이 3분의1 정도에 불과하지만 성장 잠재력과 전도 유망함에선 단연 최고의 평가를 받고 있다. 또한 중국의 패권 도전을 견제해야 할 미국 등 서방세계로선 한국과 함께 가장 중요한 동반자로 꼽힌다.

베트남은 개혁개방 이래 미국·한국과 화해하면서 외국기업 유치 등을 통해 급성장 중이다. 한때 불가능할 것처럼 보였던 한국과 일본의 다양한 격차가 줄거나 역전됐듯 한국과 베트남 사이에 비슷한 현상이 언젠가 일어날 수 있기에 한국이 긴장해야 할 존재로 인식되기도 한다. 1992년 노태우정부 북방정책의 일환으로 베트남과 외교관계를 재개한 이후 양국은 급속히 가까워졌다. 다수의 한국 기업이 중국을 대체할 생산기지로 베트남을 선택해 진출했다.

그 결과 한국은 작년 기준 베트남 누적 투자 규모 약 874억 달러(약 126조 원)로 현지 최대 외국인 직접투자(FDI) 국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 휴대전화·가전 등 생산공장을 지은 삼성전자의 경우 한때 베트남 전체 수출의 4분의1 가까이 차지하는 등 베트남 최대 FDI 기업으로서 현지 경제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한국·베트남 수교 30주년인 2022년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를 수립한 것 역시 중요한 사건이었다.

26일(현지시간)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2020~2024 주한 베트남 대사를 지낸 응우옌부뚱 베트남 외교아카데미 교수가 ‘승전국’ 베트남이 미국·한국 등 과거 적대 국가와 미래지향적으로 화해하고 실용주의를 바탕으로 개혁·개방 정책을 추진한 게 베트남의 오늘날을 있게 했다며 “미래지향적 접근, 효과적인 전방위 협력을 통해 과거 적대 국가들과 화해 과정을 진행해 왔다”고 자부심을 드러냈다. 모두와 우호관계를 맺어 신뢰를 구축하려는 베트남의 전반적인 외교 정책에서 ‘화해’가 중요한 요소”라고 강조했다.

국내 대표적 베트남 전문가인 이한우 단국대 아시아중동학부 초빙교수는 “베트남이 통일 이후 남부 사회주의화와 개혁(경제발전)이라는 이중 과제를 안았다. 따라서 초기엔 베트남의 속도가 중국 개혁보다 느렸다”고 짚었다. 이어 “통일 이후 경제침체 상황에서 베트남 지도자들이 교조적 사회주의에서 벗어나 사고를 전환한 게 개혁의 기반이 됐다”면서 “베트남의 실용주의”를 높이 평가했다.

응우옌 교수는 한국과의 관계에도 베트남 정부의 화해 추구 기조가 적용됐다며 “포괄적 전략동반자 관계가 30년 이상 지속한 양국 간 효과적인 협력의 산물로서 전쟁 잔재 문제 극복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그것이 “과거사를 둘러싼 건설적 대화, 객관적 연구를 하기에 유리한 조건 조성”임을 지적하며 응우옌 교수는. “화해란 일방적인 과정이 아니다. 베트남과 함께할 상대국도 미래지향적인 화해의 자세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1월 중순 서울중앙지법은 1968년 민간인 70여명이 죽은 ‘퐁니 사건’ 유가족 응우옌 티 타인(64)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 항소심에서 1심과 마찬가지로 한국 정부의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이런 가운데 이 교수는 “양국 정부가 경제협력 등을 저해할 가능성을 우려해 민간인 학살 쟁점화를 바라지 않는 분위기”라면서 한국 정부 측이 이 사안을 공식 인정하고 사과하기 쉽지 않을 것으로 관측했다.

다만 “피해자의 견해는 양국 정부와 다를 수 있다”면서 인도적 차원에서 지금까지 시민사회가 했던 것처럼 화해 노력을 지속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김대중정부 시절 전쟁 피해 지역인 다낭 등 베트남 중부 지역에 한국국제협력단(KOICA·코이카)을 통해 학교·종합병원을 지어준 사업을 예로 들며 “이런 노력이 이어지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이른바 베트남전쟁(제2차 인도차이나전쟁)에서 북베트남군·베트콩 80만 명 이상, 미군 5만8000여명, 남베트남군 30만 명 이상, 베트남 민간인 수십만 명이 각각 숨졌다. 미군을 돕기 위해 파병된 1964∼1973년 군인 총 32만여 명을 파병한 한국도 5099명의 사망·실종자를 냈으나 외화 수입 총 10억 달러와 약 10억 달러 규모의 미 차관을 도입이 한국 경제 성장의 마중물이 됐다.

2차대전 승리 이후 황금기를 누리면서 미국 사회에 넘치던 풍요로움과 낙관주의가 베트남전쟁의 패배로 상당 부분 무너진 게 사실이다. 최근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1·2차 세계대전에서 미국이 거둔 성과는 미국이 스스로를 자애롭고 ‘적수가 없다’고 생각하게 해줬으나 베트남이 그 신화를 잠재웠다”고 지적했다.

임명신 기자 imms@skyedaily.com 기자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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