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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 충돌로 세계적 충격을 안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백악관 회담 이후 유럽이 뒷수습을 위한 총력전에 나섰다. 영국과 프랑스가 우크라이나 안전보장 구축의 중심 역할을 다짐하면서도 미국이 군사 지원에서 완전히 손을 떼면 안된다고 강조해 유럽의 현실을 엿보게 한다. 2일(현지시간)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의 주재로 런던에서 비공식 정상회의가 열린 가운데 여러 나라가 방위비 증액 계획을 내놓았다.
이날 스타머는 “우리 모두 역사의 갈림길에 섰다”며 프랑스와 함께 “(우크라에서) 싸움을 멈출” 방안을 짜 미국에 제시할 뜻을 밝혔다. 유럽의 관점을 담은 합의를 만들어내겠다는 의미이며, 그리 되면 미국이 우크라와 유럽을 배제한 채 러시아와 추진 중인 협상에 균형을 잡아줄 수 있는 것이라고 일간 가디언이 풀이했다. 당장 안보 자립을 이루겠다는 각오라기보단 트럼프 행정부에 내밀 ‘카드 마련’이 다급한 모습이라는 시각 속에 미국에선 아직 무반응이다.
스타머가 우크라에 ‘공정하며 지속 가능한’ 평화를 가져올 협상이 타결되면 영국·프랑스 주도로 이를 수호할 ‘의지의 연합’ 결성 구상을 제시할 것이고 ‘여러 나라’가 참여 의사를 내비쳤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이어 “나라마다 기여할 역량이 다르지만 가만히 있을 수 없다. 영국은 지상군과 공군기로 이를 뒷받침하겠다. 유럽 스스로 무거운 짐을 져야 한다”고 목소리 높였다. 미국에 대해 “수십 년간 영국의 믿음직한 동맹국이었으며 지금도 그렇다”면서 “미국와의 협력 계획에 바탕을 둔 ‘의지의 연합’이 미국 지지를 얻을 것이다. 이게 목적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의지의 연합’이라는 이름 자체가 미국의 리더십에 호감을 드러낸 표현이다. 2003년 조지 부시 미 행정부가 이라크 침공 때 쓴 표현으로, 당시 ‘의지의 연합’에 참여한 영국은 미국 외 최다 병력인 4만5000명을 파병했다. 31개국이 부시 행정부에 지지를 표명해 합세했으며 침공 개시 후엔 38개국으로 늘어났다. 가디언이 “미국 측엔 ‘여러분을 도왔으니 호의를 되돌려달라’ 상기시키려는 의도가 있을 수 있다”며 “스타머 총리는 부시 정부의 이라크전 때처럼 38개국 확보까지 못하겠지만 ‘트럼프의 미국’이 ‘의지를 가진 국가’에 포함되길 절실히 바랄 것”이라고 짚었다.
스타머는 우크라가 영국의 수출 금융 16억 파운드(2조9000억 원)를 활용해 방공 미사일 5000기를 구매할 수 있도록 할 계획도 발표했다. 이날 회의 때 스타머 바로 옆자리를 지킨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르피가로 인터뷰에서 프랑스·영국 이름으로 한 달간의 우크라 휴전 제의, 유럽 국가들의 국내총생산(GDP) 3~3.5% 방위비 증액을 제안했다. 지난 수십년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방위력의 25%를 부담해 온 미국에 트럼프가 등장해 유럽의 사실상 안보 무임승차를 비판해 왔으며, 2기 행정부 들어 유럽을 향해 GDP 5% 수준의 방위비 증액을 요구하고 있다.
스타머는 러시아와 이웃한 발트해 국가(에스토니아·리투아니아·라트비아) 정상들과 공동 전화 회의도 가졌다. 라트비아가 최근 2028년까지 국방비를 국내총생산(GDP) 대비 5%, 리투아니아는 지난달 2030년까지 GDP의 5∼6%를 약속했다. 에스토니아에선 내년 국방비를 GDP의 4% 이상으로 늘린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 도날트 투스크 폴란드 총리,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 메테 프레데릭센 덴마크 총리, 페트르 피알라 체코 총리 등 유럽 주요국 정상과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 하칸 피단 튀르키예 외무장관, 젤렌스키와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 안토니우 코스타 EU 정상회의 상임의장, 뤼터 나토 사무총장이 함께했으며 스타머·마크롱·젤렌스키 별도 회동도 이뤄졌다.
유럽은 이렇게 분주하지만 미국에선 일체 긍정적 반응이 없다. 심지어 마이크 왈츠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이날 CNN 인터뷰에서 “미국·러시아와 협상할 수 있는 지도자가 필요하다”며 정권교체 가능성까지 언급해 눈길을 끌었다. 공화당 소속인 마이크 존슨 연방 하원의장 역시 NBC 인터뷰에서 “그(젤렌스키)가 정신 차리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협상 테이블로 돌아오거나 다른 누군가가 우크라를 이끌어야 한다”고 꼬집었다. 미국의 이런 발언이 우크라 내 젤렌스키 제거 움직임을 이끌어낼 가능성마저 지적된다. 스콧 베센트 미 재무장관은 CBS 인터뷰에서 “그(젤렌스키)가 싸움을 계속하길 원한다면 무의미해질 경제협정이 무슨 소용 있겠느냐”며 “이 경제협정에 서명해 우크라이나와 미국 국민 간에 이견 없음을 보여줬어야 하는데 그 기회를 날려버렸다”고 꼬집었다.
영국·프랑스 주도의 평화 구상에서 ‘유럽 내 복병’이 지적되기도 한다. ‘의지의 연합’ 합류 표명이 없는 나라들로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가 독일·스페인·폴란드를 꼽았다. 좌파 정권이 이미 무너졌거나 위험한 상태인 독일·스페인에선 여기 참여할 경황이 없고, 폴란드는 우크라이나 위기를 통해 ‘고토 수복’과 ‘유럽연합(EU) 내 3강’을 향해 맹렬히 군사력을 증강 중인 나라다. 유럽 입장이 반영된 협상안을 미국이 받아들인다 해도 러시아가 받아들일지 미지수다. 이날 기자회견에서도 러시아 수용 여부 관련 질문이 나오자 스타머는 “협상 마지막엔 러시아가 관여할 수밖에 없다”고 답했으나 뚜렷한 근거는 제시되지 못했다.
한편 런던 긴급 안보회담 직전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가 트럼프와 통화를 했다는 소식이 나와 이번 회의 때의 역할이 주목됐었다. 미 최대 보수행사 보수정치행동회의(CPAC)에 초청돼 연설하기도 하는 유럽 정상이 멜로니와 오르반 빅토르 헝가리 총리다. 서유럽의 피씨주의에 거부감을 표출해 온 트럼프는 EU 주류와 일정 부분 선을 긋고 있는 이들 우파 정치인들을 가까이 해 왔다. 멜로니는 서방 주요국들로부터의 배제가 오르반보다 덜한 편이다. 회의에 앞서 스타머가 멜로니를 총리 관저에서 따로 만났다.
또한 젤렌스키는 이날 런던에서 만난 외신들에게 “광물협정 서명 준비가 돼 있다. 미국도 그럴 것”이라며 “미국과의 관계는 계속된다”고 호소했다. 백악관 정상회담의 설전이 전 세계로 생중계된 것에 “그런 논의가 완전히 공개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그는 28일 백악관에서 ‘나토 가입’ ‘미군 파병’ 등 안전보장을 요구하면서 시종일관 블라이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공격했고 전임 미국 정부들이 그를 막지 못한 것을 비판하다 트럼프와 JD 밴스 부통령으로부터 반박 당한 후 쫓겨나듯 그 자리를 떠나야 했다. 트럼프가 젤렌스키 면전에서 “3차 세계대전을 놓고 도박을 벌이는 꼴이다. 합의 못한다면 우린 빠지겠다. 당신 홀로 끝까지 싸우게 될 것”이라며 원조 전면 중단까지 시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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