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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다닐 학교에 정붙이라는 기순이의 설득은 효과가 있었다. 개강하자마자 제일 먼저 달려간 곳이 아름식당이었으니까. 학교 앞 식당이 생각나면 학교에 적응하고 있다는 의미라고 알려 준 게 기순이었다. 기순의 말은 반만 맞고 반은 틀렸다. 아름식당이 생각났지만, 적응하려고 노력하겠지만 4년 동안은 아니었다. 승연은 또다시 기순을 꼬드겼다.
“기순아, 우리 사물놀이 동아리에 가입하자. 사물놀이 배워서 내년에 나랑 농활 가는 거, 어때?”
기순은 영어학원도 농반 활동도 승연과 함께라면 좋았다. 농악반 동아리 회장은 체구가 컸다. 농반 회장과 대비되는 작고 마른 체구의 여학생 둘이 청바지에 흰 티셔츠 차림으로 앉아 있었다. 여학생들이 입은 티셔츠에 빨간 글씨로 ‘민주농반’이 새겨져 있었다. 농악반도 민주하자는 얘긴지, 민주하려는 농반이란 얘긴지. 대학가 슬로건에 민주가 안 들어간 문구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민주라는 단어가 지겹긴 했다. 회장은 비지땀 흘리며 자신을 농반 3년 차라 소개했다.
옆에 앉아 있는 여학생은 기교과 3학년이고 농반 2년 차였다. 2학기 신입회원은 국문과 학생 한 명과 영문과 승연과 기순 둘을 더해 총 세 명이었다. 농반 멤버라 했던 김태주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이제 사물놀이 중에서 여러분이 오늘부터 배울 장구에 대한 역사·소재·구성 등을 설명할 건데 모두 후배들이니 존댓말 안 하고 편하게 반말할게. 반말이 불쾌하면 얘기해 줘. 그리고 내가 설명 다 하고 나면 질문하기 바래. 시험 볼 거 아니니 그냥 편하게 들어 주면 좋겠어. 장구 설명이니까 각자 앞에 놓인 장구를 보면서 설명 들어. 장구는 북편·채편·구철-깍쇠-갈구리쇠·원철-벳쇠·진홍사-홍사-축승-죔줄·축수-조임새-부전·졸목·울림통·복판·변죽·궁-궁구리채·열채 등으로 되어 있어.”
회장은 상대방이 집중하든 말든 발음하기 어려운 격음·경음을 연달아 발음하면서 지루한 설명을 이어 갔다. 전문용어가 귀에 들어올 리 없었다. 윙윙거리는 모기떼처럼 귓가에 맴돌 뿐이었다.
“왼쪽 가죽은 왼손바닥이나 궁구리채(궁채)로 치고 오른편 가죽은 열채로 치지. 또 북편은 소가죽을, 채편은 말가죽을 주로 사용하지만 예전엔 개 가죽을 많이 썼나 봐. 나무 울림통은 오동나무가 가장 좋다고 하는데 오동나무 울림이 맑다고 하네. 음, 그리고 장고라는 명칭에 대해 여러 의견이 있는데, 한자로 지팡이 장과 북 고를 쓰면 장고가 맞는 거고, 노루 장과 개 구 자를 쓰면 장구도 맞아. 왼쪽은 말가죽이나 소가죽·노루가죽을 대어 가죽이 좀 두껍고 소리가 낮으며, 오른쪽은 보통 말가죽이나 개가죽을 대서 가죽이 얇고 높은 소리를 내. 가죽으론 개가죽이 소리도 크고 제일 좋다네. 왼쪽은 음(陰)으로 두께가 두꺼워 소리가 낮고, 오른쪽은 양(陽)으로 얇고 소리가 높은 음가(音價)의 것을 고르는 게 좋아. 아, 초보자는 이거 구분할 줄 모르니 그냥 여기서 제공되는 거 쓰면 되고”
[글 박선경 일러스트 임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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