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경 연재소설 ‘위선의 시대’ [44] 음흉한 유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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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경 필진페이지 + 입력 2025-02-14 06:30:33

희숙은 같은 나이지만 두 살이나 어리게 서류를 위조해서 영미한테 꼬박 존댓말을 했다. 희숙은 말을 이었다.

“게다가, 신정 연휴에 휴가 달랑 이틀 주고 그나마 결근하는 사람은 연휴도 무급 처리하는데 작업장 환경이 좋아지고 있다고 하면 안 되지요. 물론 영미 언니 말대로 일월이 다른 곳보다 심하지는 않아요.”

“그건 맞지만….”

영미는 희숙을 잠시 노려봤다. 자기 말에 대꾸해서 기분 나쁜 게 아니라 맞는 얘기여서 무안했다. 영미 자신이 연휴 전 하루 결근해 무급 처리당한 게 떠올랐다.

그래도 영미는 자신이 억울하게 노동의 대가를 누리지 못했던 사실보다는 권리를 주장하는 과정에서 당할 일이 두려웠다. 영미는 다른 공장에서 노동조합을 만들려 했다는 이유로 쫓겨난 노동자들이 출근하려다 회사 직원들에게 두들겨 맞은 얘기며 경찰에 끌려간 여공들이 당한 폭력·성적 모욕 같은 얘기를 꺼냈다. 그런 걸 당하느니 가만히 있는 게 낫다고 했다. 여성 근로자들에게 성폭력·성희롱과 같은 단어가 주는 공포는 상상 이상이었다. 생살여탈권을 쥔 자들의 손버릇과 언어 희롱은 예고편이나 마찬가지였다.

영미도 알았다. 예쁘다는 칭찬과 이것저것 챙기는 특혜 뒤의 엉큼하고 저속한 욕정의 속내를. 특히 대머리 양 부장이 누런 이를 드러내며 개구리처럼 튀어나온 눈으로 추파를 던질 때는 오장육부가 뒤틀리곤 했다. 영미가 양 부장에게 시달린 지는 오래됐다. 양 부장은 탕비실에 영미가 혼자 있거나 회의실이 비어 있을 때를 노렸다. 탕비실에 있을 때는 재빨리 들어와 가슴과 엉덩이를 주무르며 거친 숨을 몰아쉬며 귀엣말을 했다. “오늘 밤 11시10분까지 와.”

회의실에선 더 노골적이었다. 사무실 창문 블라인드를 내리고 방문을 잠갔다. 문밖에는 ‘회의 중’이란 팻말을 걸어 두었다. 대개 ‘회의 중’ 팻말이 걸리면 직원들은 들어오지 않았다. 양 부장의 꼼수는 길어 봐야 5분이었다. 영미의 회색 작업복 단추를 서둘러 풀고 브래지어를 올린 후 젖가슴을 두 손으로 모아 쪽쪽 빨았다. 영미는 양 부장이 젖가슴에 침을 묻히며 빨아댈 때마다 송충이가 기어 올라오는 느낌이 들었다.

양 부장이 영미 가슴에 머리를 박고 집중하는 모습을 위에서 보면 웃음이 나왔다. 귀 옆 주변 몇 개 안 남은 회색 머리칼 하며 파리가 앉았다가 미끄러질 정도로 맨질거리는 대머리가 애처로울 정도였다. 5분 정도 영미의 젖가슴을 빨고 나면 양 부장의 아랫도리가 불룩해졌다. 흥분할 때 흘러나온 쿠퍼액이 사타구니 쪽을 적셨다. 그러면 양 부장은 손수건에 물을 묻혀 얼룩을 지우곤 했는데 물 흔적이 더 번져 마치 바지에 오줌을 싼 일곱 살짜리 남아 같았다. 아무리 흥분해도, 양 부장은 5분을 넘기거나 다른 걸 요구하진 않았다. 어차피 양 부장의 욕정은 야근 이후 해결해도 충분했으니까.

영미는 양 부장이 신호를 보내면 야근 후 양 부장이 지시한 곳으로 갔다. 영미를 태운 양 부장은 차를 몰고 10분쯤 지나 비교적 한적한 골목길 담벼락에 주차했다. 양 부장은 영미에게 줄 선물부터 꺼냈다.

[글 박선경 일러스트 임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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