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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지충의 만화로 보는 동양철학’이 8권 세트로 출간됐다. 동양철학의 심원한 깊이를 놓치지 않으면서 손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채지충이 만화로 재창작한 이 시리즈는 중화권에서만 4000만 부 이상을 팔아 치우며 큰 인기를 얻었다.
채지충(1948~ )은 대만 출신의 세계적인 만화가다. 그는 8권의 시리즈를 통해 우리에게 익숙한 공자부터 약간은 낯선 열자까지 각각의 사상을 자세하게 짚어 나간다.
책을 읽어나가다 보면 각각의 사상들이 큰 그림 안에서 어떻게 관계 맺고 있는지, 다른 학파를 어떻게 비판하고 있는지 쉽게 비교할 수 있다.
공자의 정치 철학이 담긴 ‘논어’
첫 번째 책은 동아시아 전반은 물론 우리나라의 역사에도 역시 실질적인 영향을 끼친 ‘논어’다. 워낙 유명한 책이다 보니 ‘불멸의 가르침’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논어의 저자는 공자(BC551~479)의 제자들로 알려져 있다. 소크라테스나 라캉의 경우처럼 제자들이 스승의 강연을 책으로 남긴 것이다.
공자는 젊은 시절 창고지기로 일했는데 목장을 관리하는 일에도 종사했다. 그는 목장 관리 분야에 매우 유능해 그가 근무하는 동안 가축의 수가 증가했다고 한다.
여기서 인류의 4대 성인으로 꼽히는 예수가 떠오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도 양을 치는 목자였다. 그들이 공통적으로 가축 돌보는 일을 한 것이 우연일까. 생명을 돌보고 관리하는 데는 지혜와 책임이 따른다. 인간사 지혜와 책임 이 두 가지보다 중요한 게 있으랴. 성인은 궁극의 지혜를 지닌 사람들이다.
춘추시대 제나라 제경공(?~BC490)이 정치의 원칙을 물었을 때 공자는 “왕은 왕 같아야 하고 신하는 신하 같아야 하고 아들은 아들 같아야 한다”고 대답했다. 그의 가르침은 직업에 대한 본분과 위치에 대한 책임을 강조한다. 유가에서 ‘예’를 중요시하는 것은 형식에 내재된 본분을 잊지 말라는 뜻이리라.
공자가 정치에서 또 하나 강조한 게 인재의 등용이다. 그는 “작은 사람도 잘 알아보고 인재로 등용해야 한다”고 했으며 “멀리 있는 자 오게 하고 가까이 있는 자 기쁘게 한다”고 했다. 인재를 얻고 싶다면 천하다고 무시하지 말고, 멀리 있다고 제외시키지 말며. 가깝다고 소홀하지 말 일이다.
공자의 일생을 소개하는 데 약간의 지면을 할애한 저자는 학이·위정·팔일·이인·공야장·옹야·술이·태백·자한·향당·선진·안연·자로·헌문·위령공·계씨·양화·미자·자장의 19편을 다룬다.
논어의 핵심은 지혜·어짊·용기를 하나로 묶는 인(仁)이다. 이는 정치의 핵심이기도 해서 공자는 인을 바탕으로 사람이 중심이 되는 이상사회를 건설하려는 원대한 계획을 품고 있었다.
그런가 하면 공자는 7편 술이 8장에서 가르침과 관련해 단호한 면모를 보인다. 그는 분발하지 않거나 구하지 않으면 가르치지 말고, 한 모서리를 가르쳤는데 세 모서리를 모르면 더 가르치지 말라고 했다. 게으르고 아둔한 사람 한 명을 가르칠 노력이면 성실하고 영특한 이 3명을 가르칠 수 있다는 뜻이다. 공자는 무조건 어질기만 한 게 아니라 시간과 자원을 효과적으로 사용할 줄 하는 효율성의 철학자였다.
활을 잊어야 궁수가 된다 ‘열자’
채지충의 동양철학 시리즈에는 유가와는 다른 길을 걸으며 유가를 비판한 도가도 여러 권 포함되어 있다.
특히 여섯 번째 책인 ‘열자’는 ‘노자’ ‘장자’에 비해 비교적으로 덜 알려졌지만 ‘우공이산’ ‘남존여비’ ‘조삼모사’ ‘기우’와 같은 우화를 통해 도가 사상을 널리 전파한 인물로 알려졌다. 그는 바람을 타고 날아다녔다는 전설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 열자는 죽음을 현실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지혜임을 강조한다. 그는 “태어나서 살아가고 있으니 천복이요, 죽어서 소멸할 수 있으니 이 또한 천복이다. 살아서 살지 못하는 것도 천벌을 받는 것이고 죽어서 죽지 못하면 천벌을 받는 것이다”고 했다.
“살 때는 열심히 살아야 한다. 휴식은 무덤에 들어가서 해도 늦지 않는다”는 열자의 전언은 무위자연을 노래한 장자·노자와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열자’ 편에는 장자만큼 재밌고 유익한 이야기가 많이 등장한다. 특히 활쏘기 고수 ‘기창’의 이야기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전국시대 사람 기창은 세계 제일의 궁수가 되고 싶어 비위를 찾아갔다. 비위는 백 보 밖에서 버들잎을 맞춘다는 신궁이다. 비위는 기창에게 활쏘기에 앞서 눈을 깜빡이지 않는 연습을 먼저 시켰다. 2년의 수련 끝은 기창은 칼끝이 속눈썹에 닿아도 눈을 깜빡이지 않게 되었다.
그 다음에는 작은 것을 크게 보는 훈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기창은 4년3개월 만에 말이 산처럼 웅장하게 보이는 순간을 마주하게 되었다. 그가 화살 100개를 연달아 쏘면 첫 화살은 과녁 중심에 맞고 두 번째 화살은 앞 화살의 꽁무니에 박히는 식으로 순식간에 100개의 화살이 한 줄로 연결되었다.
세계 최고의 궁수가 된 기창은 마지막으로 ‘도에 가까운 활 솜씨’를 배우기 위해 감승을 찾아갔다. 감승은 진짜 궁도란 활을 쓰지 않는 것이라며 9년에 걸쳐 그에게 비법을 전수했다.
마침내 고향으로 돌아온 기창은 완전히 변하여 옛날의 오만불손한 태도를 찾아볼 수 없었다. 심지어 활도 잡지 않았다. 사람들이 활 솜씨를 보여 달라고 하면 “지극한 움직임은 움직임이 없고, 지극한 말은 말이 없으며, 지극한 활 솜씨는 활을 쏘지 않는 것”이라며 거절했다. 그는 고향에서 40년 동안 편안히 살다가 죽었다.
불가에는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여라,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여라’는 말이 있다. 불자가 부처에 매달리면 불도를 깨칠 수 없다. 마찬가지로 궁수가 활과 화살에 매달리면 진짜 쏘아야 할 것을 놓칠 수 있다. 열자는 돈과 명예가 탐난다면 돈과 명예를 잊는 것이 성공의 지름길임을 말하고 있다.
만화책이지만 원문에 충실하다 보니 어린이가 읽기에는 지루할 수 있다. 한편 원문에 충실하되 한자 풀이를 따로 삽입하지 않아 공부를 강요받는 느낌도 들지 않는다. 가볍게 읽기 좋은 어른용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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