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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열심히 산 어르신들이 연세 들어 하는 몇 가지 일이 있다. 취미 활동·회고록(자서전) 집필·봉사활동이 그것이다.
나는 밥벌이를 위해 어르신들의 자서전 정리하는 일을 몇 차례 진행했는데 가끔 그 책들을 꺼내서 읽어 보곤 한다.
나이가 들면 과거 일이 더 잘 떠오르는 것인지 그분들 두뇌가 유달리 좋은 것인지는 모르겠다. 어떻게 지난 일을 그토록 똑똑히 기억하고 생동감 있게 기록할 수 있는지 보면 볼수록 감탄사가 튀어나온다. 재미도 재미거니와 한국의 현대사를 온몸으로 관통한 분들인지라 사료적 가치도 뛰어나다.
미 중앙정보국(CIA) 등 미국 연방정부 공무원으로 40년 가까이 근무하며 한국사의 굵직한 사건 현장을 온몸으로 체험한 재미교포 요원 마이클 이(91·Michael P. Yi) 박사가 최근 회고록을 펴냈다.
그가 이번에 펴낸 ‘CIA와 대한민국: 美연방정부 공무원 40년 마이클 이 박사 생생 증언(도서출판 스카이)’에는 그동안 한국에 공개되지 않았던 북한 관련 사안이 다수 포함돼 있다. 5·18사건의 진실 같은 경우는 꽤나 흥미진진히다. 그러나 내 시선을 잡아끈 것은 책 출간에 즈음해 개인적인 술회를 적어 내려간 프롤로그다.
“재미있는 영화를 보다가 상영이 끝난 후에 느끼는 허탈감 같은 그런 느낌으로 나는 요즘 무언가를 도둑맞은 듯한 상실감을 느끼기도 한다. 먼바다에서 출렁이며 흘러온 파도가 해안에 부딪히듯 나의 삶의 파도가 얼마 안 있어 피안에 닿으리라는 초조감 때문이리라.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나의 인생이 곧 끝난다는 생각보다는 그 미지의 출구를 통과한 후에 새로운 미지의 현장으로 이동한다는, 야릇한 기대감으로 마음을 달래기도 한다.”
그러면서 그는 “내 인생이 녹슬어서 못 쓰게 되기보다는 닳아서 없어지기를 원한다”고 고백했다. 이 문장은 바람직한 노년의 삶에 대해 생각하게 해 준다. 사람들은 돈을 많이 벌어 노후에 편안하게 지내고 싶어 한다.
그래 봤자 삶은 소멸된다. 어차피 소멸될 인생이라면 서서히 못 쓰게 되기보다 적극적으로 닳아 없어지게 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자신이 가진 재능과 지식을 남김 없이 세상에 쏟아 놓고 가는 것이다.
세상의 소금이 된다는 게 이런 뜻인지도 모르겠다. 뼈 하나 살점 하나 남김없이 소용된다면 이보다 잘살고 가는 일이 또 있을까.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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